공상에서 피어난 영화
"사람이 때로는 자신이 가진 그릇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어.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넘보며 태어난 것을 거스르다 체하기도 하지."
판사는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지만, 막상 사건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네 부모는 가질 수 없는 것을 탐냈다는 것.'
나에게 하는 말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준법이 존재하고, 그 법을 어기면 여기로 온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 하지만 종종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인정을 받는다고 느끼면, 자신이 가진 것보다 자신을 더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그런 실수를 짚어주고, 약자를 보호해 주는 게 법 아닌가요?"
"굉장히 순수한 생각을 하고 있군. 구공학생."
"네?"
"이래서 너네들이 나 같은 사람에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거야.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니야. 법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지를 생각해 봐."
다들 고민에 잠겼다. 그러다 평소에는 사회에 관심도 없던 내 뒤에 녀석이 손을 들고 이야기를 했다.
"시민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다면, 여기서부터 우리의 격차가 생기는 거지."
우리를 한번 쓱 훑어보고는 판사는 말을 이어갔다.
"법은 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거야. 그 법을 통치할 수 있는 사람. 바로 저기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지. 그리고 그 법은 자신을 지키는 목적에서 시작한다는 거지. 자신을 지킬 수 없는 법은 법서에 자리만 잡고 있을 뿐이니 말이야. 그런 법을 인지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은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처벌을 가져올지 모르는 채로 자신만의 쥐덫에 걸리지. 그리고 그걸 조종하는 사람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낸다는 거야. 그럼 여기서 문제는 무엇일까?"
아빠의 일이라고 생각되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한 마디씩 그의 입에서 당시 상황을 전달받는 듯한 생각에 그때의 아빠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빠의 뒤에서 아빠를 조종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확신과 그런 아빠는 자신이 하는 일을 인지하지 못한 채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노력한 사원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낸 사람은 결국 필요가 없어지면, 자신을 위해 일한 사람을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거야. 지금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얼마큼 이해할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한 설명을 한 것 같은데. 혹시 지금 한 이야기를 요약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질문을 하며 살살 사람 속을 긁어놓는 행동에 울컥하기도 했지만 저 잘난 놈을 어떻게든 밟고 올라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차올랐다.
"그럼 판사님은 자신이 가진 그릇을 깨고 더 큰 그릇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 신는 건가요?"
"잘 이해한 것 같구나?"
"그럼 판사님의 그릇은 얼만했던가요? 지금 우리 앞에 설만큼 대단한 그릇을 가지고 태어나셨던 거예요?"
내 질문이 무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잘났다는 직업을 가진 저 사람 뒤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지 궁금했다.
"맞아요. 판사님 집은 좋아요? 한 만평은 가지고 태어났으려나? 얼마나 잘났는지 궁금해요. 알려주세요~"
너무 유치해서 하지 못했던 질문.
하지만 그를 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유치한 내 마음을 알아주듯 내 뒤에서 질문이 터져 나왔다.
"팔사공구..."
"판사님! 그릇은 수백억이에요? 공이 몇개려나.."
울그락 불그락 해지는 판사의 얼굴에 담임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면서도 감히 함부로 껴들면 안 된다고 느꼈는지 맞잡은 손의 손가락만 달싹거릴 뿐이었다.
"아이들이 참 활발하네요? 이 반은 좀 특별한 것 같은데... 그 특별함이 쓸모 있기를 바라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괜히 눈에 띄었다가는 종종 밟혀 죽을 때가 있거든. 그럼, 이만."
위협적인 말로 우리를 협박하는 말을 마치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수업 종이 쳤다.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니야...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니야... 법은...'
판사가 한 말이 계속 되풀이되었다.
법을 만든 사람. 그리고 아빠의 일과 관련한 배후가 궁금했다.
'오인석.'
분명히 아빠의 일의 배후자와 책임자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알면서도 아빠에게 형을 내린 죄.
"도둑놈."
배부른 놈들의 돈을 뜯어먹기 위해서, 본인이 살기 위해 부적절한 일을 한 그가 진정한 도둑놈이라고 생각된다.
"야"
생각에 잠겨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처음으로 팔사공구가 말을 걸었다.
"응? 왜?"
"너네 아빠는 여기 왜 왔냐?"
"응? 갑자기?"
"응. 갑자기."
"몰라."
"알잖아. 너 아까 머리까지 부들거리는 거 다 봤어."
"그럼 너네 부모님은 여기 왜 왔는데?"
"나? 나는 부모님 없는데. 나는 할머니랑 살아."
"응? 아 미안."
"뭐가 미안하냐. 아 맞아. 우리 처음 대화하지?"
"어어.. 그러네."
"너 이름이 뭐라고?"
"나.. 나는 구공... 아니, 박지우."
"나는 김민찬."
"어??? 뭐야???? 너도 이름이 있어???"
이름이 튀어나오자 순식간에 목소리가 커져버렸다.
"조용히 좀 말해."
"어어.. 미안."
"되게 자주 미안하다고 하네. 여하튼 난 김민찬이야."
"너는 어떻게 이름이 있어?"
"난 원래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으니깐."
"응? 그럼 저기서 온 거야?"
"어. 나는 원래 비범죄 도시에 살았어."
"그럼 어쩌다가 여기에 온 거야?"
"우리 부모님이 부동산 투자 사기를 저질렀거든. 그리고 검거되니깐 여기에 오기는 무섭고. 결국 옥상에서 딱."
그 말과 함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듯 한 제스처를 보였다.
"그럼, 왜 할머니랑 여기에 사는데?"
"엄마, 아빠가 형을 못 받으니깐. 대리 부모인 우리 할머니한테 형량이 떨어진 거고. 나는 당연히 보호자가 없으니깐 할머니랑 여기에 온 거고."
"헐... 몰랐어."
"그럼 지금부터 알아. 그래서 너네 부모님은 여기 왜 온 건데?"
"어... 너 오늘 온 저 판사 알아?"
"오인석."
"어어.. 지금부터 속상임 모드. 귀 좀 가까이 와봐."
-쓱
"아까 오인석이 말한 대로 아빠가 투자사기랑 주가조작을 주도했다고 하더라고. 근데 우리 아빠는 분명히 그럴 사람은 아닌데... 근데 그때 판결을 한 사람이 오늘 온 그 놈이라는 거야."
"역시."
"응? 뭐가?"
"역시. 구린내가 난다고 했어."
"뭐? 나한테? 뭐가?"
"아니. 그 판사 놈. 우리 부모님도 그랬거든."
"너네 부모님도?"
"어. 우리 집 그래도 꽤나 잘 살았거든. 아빠는 국회의원, 엄마는 미술관 관장."
"우와... 근데 미술관 관장이 모야?"
"아... 미술관 대표라고만 생각해. 여하튼 우리 집도 그렇게 부족하진 않았는데. 갑자기 부모님이 부동산 투자 사기라니깐 믿기지는 않았거든."
"근데 너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화나지 않아?"
"화내봤자 달라지는 건 없거든. 그냥 나는 여기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벗어난다고? 형량 다 채워서?"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뭔데? 자꾸 네가 말을 길게 안 해주잖아."
"똑똑한지 알았는데, 순 바보네."
"아씨!!! 답답해. 그러니깐 뭔데?"
"19살 시험. 너 대학은 알지? 거기에 가기 위해서 수능을 봐. 그때는 비범죄 도시에 갈 수 있어."
"오... 그럼 넌 대학에 가고 싶은 거야?"
"대학에 가야지. 그래야 알 수 있으니깐. 너네 부모님도 여기에 온 게 억울하다면 가봐야지 알 수 있지 않겠어?"
내가 처음 안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김민찬은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여기서 공부하는 것도 평등을 주장한 건데, 여기에도 허점이 있다는 거야. 누구나 평등할 권리 그게 인간의 기본 권리라는 명목에서 우리도 평등하게 대학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비범죄 도시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해."
"우와..."
"그니깐 너도 공부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데?"
"법."
"법?"
"너 진짜 이해 못 했구나. 아까 그랬잖아. 법을 만드는 건 법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야. 그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학과를 가야지 가능한 거고. 그러니깐 지금부터 공부해."
"그럼 넌 공부해?"
"어. 정말 오인석 그 사람 말대로 우리는 눈에 튀었으니깐. 밟히고 싶지 않으면 미친 듯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거야. 지금부터."
지금까지 많이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직까지 모르는 게 많았다.
팔사공구, 김민찬의 말을 듣고 또 깨닫는 게 생겼다.
"야, 김민찬. 나랑 같이 공부해 줘."
"뭐?"
"내가 이 동네 소개해줄게. 넌 나한테 공부를 알려줘."
"유치해."
"야. 원래 초딩은 유치한 거라고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어."
"치... 재미없어."
그래도 내 제안이 나쁘지 않은지 김민찬은 그날 대화 이후로 가방에 아빠가 사용했다던 법전을 들고 우리 집에 오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지만, 학교 공부와 더불어 법전을 가지고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