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달랐던, 난 달랐던
8356 할머니와 만난 후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 없이 등교하던 때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움직이는 공간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했다.
정해진 시간에 노동을 하러 가야 하는 어른들의 발걸음의 모습과
시티 사람들을 감시하는 듯 한 공무원들의 눈빛과 서있는 자세,
강력 범죄자라고 분류되어 늘 인상을 쓰고 다니는 중범죄자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출근을 하지만 강제노동 중 하나인 선생이라는 직업 안에서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학습 목차와 목표가 존재했다.
그렇다.
아무리 범죄자만 모여있는 무법지대라고 해도,
늘 이곳에선 더 엄격한 규칙과 순서가 존재했다.
이런 깨달음을 얻자 시티는 나에게 무섭거나 위험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한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 번 재사용된 듯한 종이를 재활용해서 만들어진 신문 쪼가리와
도시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전광판에 올라오는 시티 소식을 알기 위해서였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 작은 시티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이해하고,
사건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한글을 공부하면 할수록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은 나 자신이 발전했다고 느끼며 9살이 되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늘 숨겨오던 붙박이장을 오랜만에 열었다.
내 이름이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열어보는 장롱 문,
괜스레 손이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끼익‘
작은 소리이지만 더욱더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소리…
내가 이곳에서 태어난 이유.
우리 부모님이 이 시티에 오게 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 시티에서도 우리는 눈치를 보며 하층민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는 날이 다가오자 무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이런 생각과 궁금함을 가지고 살지 못한 나의 무지함에 화가 나기도 했다.
‘딸칵’
색이 바랜 검정 수첩을 열고, 안에 들어있는 빳빳한 종이를 꺼내어 들었다.
이전에 본 법원 판결문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성명 박지승. 피고 박지승은 원고 측(주 대성 주식회사)의 사원으로 재직을 하였지만, 회사 내 주가 조작과 관련 주동자로서 회사의 막대한 재정손실 및 원고 측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원고 측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많은 주주들의 재정손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주가조작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사기 및 혼란을…이러한 이유에서 피고 박지승은 크라임시티 구형 27년을 선고한다. “
처음 알았다.
선한 아빠의 모습에 이런 모습이 있을 줄 몰랐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도 있기는 했지만 아는 단어의 뜻으로 이해해 볼 때, 아빠의 행동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이 막대한 일의 주동자 이기에는 아이러니한 포인트들도 존재했다.
‘엄마의 호통에도 놀라는 아빠가 이렇게 간 큰 일에 가담을 한 것도 모자라 주도를 했다?’
께름칙한 냄새가 났다.
8개월간 시티 생활을 열심히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리고 깨달은 건 이 정도 사건이면 시티 전광판에 빨간 글씨로 이송자 명단이 떴을 테고,
이 시티 사람들에게 아빠의 일은 전설처럼 전해지며 오르내렸을 거다.
하지만 우리 집의 실상은?
아무도 아빠를 우러러 보거나, 이 동네에서 머리를 좀 써서 사기 치며 다니던 전과자 아저씨, 아줌마들도 우리 아빠를 본 척도 하지 않는다.
“알아봐야겠어. “
아빠의 판결문을 읽고 난 후 엄마의 판결문을 읽었다.
엄마는 비교적 아빠에 비해서 형량이 적었다.
하지만 아빠와 같이 사기 전과가 있었고, 엄마의 잘못은 아빠랑 다르게 수긍이 되었다.
어쩌면 엄마의 사기수법도 나의 지능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이 되기도 했다.
셈이 빠른 것과 언변이 좋은 건 엄마의 유전자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가 미우면서도 감사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겨울 방학은 엄마, 아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법을 공부하기 위하여 집에서는 조금 먼 도서관을 뻔질 드나들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3월.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아빠의 판결문을 읽고 난 후,
도서관 컴퓨터로 아빠의 일과 관련한 뉴스나 가십거리를 조사했다.
그리고 알아낸 건 당시에 아빠의 재판 판결을 내린 판사분이 학교에 창체활동 시간에 온다는 것을 알았다.
범죄자 부모를 둔 자녀들의 범죄 예방을 위한 수업으로 매년 한 달에 한 번씩 판사나 변호사가 비범죄자 도시에서 파견되어 오는 수업이다.
오게 되면 실제 범죄 사건을 살펴보고, 잘못한 점을 짚어주며
“부모님이 그랬다고 너네는 그러면 안 된다.”
이런 말로 이미 우리의 마음을 짓밟는 수업이다.
이런 구역질 나고 위선적인 수업에 증오가 가득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빠를 판결한 ‘오인석‘이라는 판사가 온다.
이름이 존재하는 사람.
당신이 우리 아빠를 기억하는지, 당신의 실제 모습이 궁금했다.
“자, 얘들아 앉아. 다 같이 인사.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비범죄자 도시에서 온 사람이라는 티가 팍팍 났다.
때깔 좋은 양복에 반질거리는 얼굴.
잘 지내며 살아왔음이 보이는 행색에 기가 죽은 아이들도 있고,
혹은 반감을 숨기지 않고 째려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여러분 반가워요. 제 이름은 오인석이고요, 직업은 판사예요. 여러분 판사라는 직업이 뭔지 알아요? “
-조용
“죄송해요. 저희 아이들이 비범죄자 도시랑 다르게 좀 무지하고, 수업에 관심이 잘 없어요.”
눈치를 보며 쩔쩔 거리며 대놓고 우리를 비교하며 험담하는 선생의 태도가 역겨웠다.
‘번쩍‘
“저 알아요. 원고가 소장을 제출하여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법정에서 피고의 법적인 문제를 판결하여 죄의 형량이나 죄를 심판하는 사람이요.”
무시하던 선생을 비웃으며.
그리고 사람 좋은 척하며 입꼬리를 비틀고 있던 판사의 눈을 똑똑히 마주 보며 답을 했다.
“오~ 꽤나 잘 설명했네. 네 이름은 뭐니?”
“아, 저 친구는 구공이..”
“지우요.”
내 이름을 번호로 말하던 선생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기세로 빠르게 답을 하였다.
“뭐?”
“지우요. 박지우.”
“구공아, 그게 무슨 말이니?”
“제 이름 물어보셨잖아요. 전 박지승의 외동딸 박지우예요. “
”하하, 재밌는 아이구나. 이름이 있다니. “
“판사님도 이름이 있잖아요. 오인석.”
“그래, 나처럼 이름이 있는 아이가 이곳에 있다니. 이름이라는 게 존재했나요 여기가?”
굉장히 재미있다는 목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가 내뱉자 굉장히 차가운 목소리로 선생을 쳐다보는 눈.
그래, 그게 저 사람의 본모습일 것이다.
“이름은 누구나 존재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 부를 용건이 있을 때 부를 수 있죠. “
내 말이 틀리지 않자 반박할 말이 없었는 듯하다.
5초간의 정적.
그리고 나를 보며, 위선적인 태도와 가식적인 미소가 어우러져서 비로소 판사의 입이 벌어졌다.
“그래. 원래 이름은.. 공일삼구공. 그리고 예명인가? 박지우 학생? 참으로 재밌네. 남다른 학생인 것 같네.”
“이름이 있는 게 남다르겠나요. 반가워요. 오인석 판사님.”
그렇게 우리 아빠를 판결한 판사와 얼굴을 마주하자 더 베알이 꼴렸다.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지금까지의 그 수많은 위선자들과 다르지 않은 그의 태도.
우리를 무시하며, 특강을 목적으로 큰돈을 받아먹는 판사도 나에게는 사기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판사님. 혹시 10년 전에 박지승이라는 사람 재판 기억나세요? 대성 주식회사 투자사기랑 주가조작 사건이요. “
“구공아!!! “”
“괜찮아요. 그래. 기억하지. 그런데 꽤나 깊은 이야기, 그걸 네가 이해를 하는 사건이니?”
“네. 오신다는 말 듣고 판사님의 이력을 좀 봤거든요.”
“정말. 영특한 아이구나. 참 재미있어. 그래, 오늘은 네가 이야기 한 사건이…궁금하다면 같이 이야기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