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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민 Jul 09. 2024

송도 어느 아파트

내 삶에서 아파트는 #10

대학을 졸업하기 전, 그러니까 미국에서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칠 때였다. 뉴스에서는 연신 자본주의의 위기 같은 말들이 넘쳐났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H동 다가구 2층집에서 여러 해를 산 후에, S동으로 이사 갈 때쯤이었던 거 같다. 알고 있기로는 집이 전셋집이고, 전세금이 수천만 원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보증금은 절반으로 줄어있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영문을 몰랐다.


“누나야, 어떻게 된 거야?”


물었지만, 누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누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누나는 조금씩 말을 떼기 시작했다.


회사 상사가 신도시 어느 곳의 아파트를 사면서 투자를 권유했고, 전세금 절반을 그 아파트 사는 데 투자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물가도 오르고 전셋값도 많이 올라 수천만 원이 큰돈처럼 생각 들지 않지만, 일해서 돈 벌어보지 못한 취업준비생인 대학 4학년생의 눈에는 엄청 큰돈이었다.


“그 사람을 어떻게 믿고? 그 사람도 어이없네, 아랫사람을 꼬드겼네? 돌려받을 수는 있어? 계약서는 있는 거야? 제대로 투자한 거 맞아? 지금 경제도 어려운데..”


두서없이 되물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나도 잘 몰랐다. 투자가 뭔지, 신도시의 아파트가 뭔지, 돈 보낸다는 건 또 뭔지. 내가 알 수 없는 영역들이다.


더 들어보니, 누나는 당시에 한창 바다를 메워 신도시로 개발하고 있는 송도 어느 아파트를 사는 데 돈을 보탠 것이다. 처음 보탤 때보다 값은 떨어져 있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이십 대 후반 누나가 투자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전세금의 일부를 가족 모르게 모처에 투자한 것에 화났다.


송도신도시 전경, 바다 바로 옆에 송도가 있다. 예전 선배 아기 돌잔치에 가기 위해 한 번 가봤다. (사진출처: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우리 돈도 아니잖아. 누나는 가족을 속인 거야!”      


누나에게 화를 냈다. 누나에게 속았다는 분노가 일었다. 정확히는 누나에게 실망했다. 누나는 말하지 못했다.


“당장 돌려받아.” 


해결책이 뭔지도 잘 모른 채, 누나를 닦달했다. 혹시 내가 모르고 누나가 아는 그 사람에게 사기당하는 건 아닌지, 돈을 날리는 건 아닌지 몹시도 불안했다. 누나는 내일 회사 가서 물어본다 답하고 누워버렸다.


며칠 뒤, 누나는 다시 묻는 나에게 송도 아파트를 지금 팔 수 없고, 돈을 당장 받을 수 없다고 작게 말했다.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로 아파트값이 떨어졌고 지금 팔면 손해기도 하지만, 팔리기도 어렵다고 한다. 뭔 말인지. 여하튼, 투자한 돈을 당장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책임질게.”


누나도 흔들리는 눈동자를 부여잡고 있는 듯했다. 누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경솔하게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을까. 그 사람을 어떻게 믿고 개인적으로 돈을 부쳤을까. 돈이 없어지면 어떡하려고. 질문과 질문이, 궁금증과 궁금증이 머릿속 꼬리를 물었다. 질문과 궁금증의 답은 찾지 못했다.




여러 날, 여러 달이 지났을까. 누나에게 화냈던 걸 조금씩 후회했다. 누나가 가족을 속인 건 맞지만, 수억 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쁜 의도로 그리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누나를 째려보고 화내고 소리친 건 좀 심했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으로서 좀 심했다. 누나도 생각이 있었을 텐데.


“누나, 그 돈 잘 받았어?”

“아직 못 받았어. 근데 챙겨서 준다고 했으니, 넘 걱정하지 마.”

“그 돈 잘 받아서, 누나 결혼할 때 보태서 써. 엄밀히 내 돈도 아닌데 누나한테 너무 뭐라고 한 거 같아.”


H동에서 S동으로 갔다가 다시 M동으로 이사 갈 때, 누나는 빼서 쓴 전세금을 벌충했다. 송도에 투자한 돈을 제대로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다시 묻지 않았다. 얼마를 벌었는지 얼마큼 손해를 봤는지 잘 알지 못한다. 잘 돌려받았다고 느낌으로만 알고 있다. 큰 손해가 아니었으면 됐다. 


누나도 누나의 선택으로 스트레스를 한껏 받았을 거다. 누나가 투자한 돈만큼의 월세를 누나의 월급으로 부담했다. 누나도 나름 노력했고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스물 후반을 열심히 살다 보니 발생한 삶의 한 조각이다.


송도 아파트값은 그렇게 맥없이 떨어지다가 수년이 지나고 무섭게 올랐다. 최근에는 다시 떨어졌다는 뉴스를 봤다. 송도 아파트값을 알리는 뉴스나 동영상을 볼 때면, 누나의 송도가 종종 떠오른다. 혼자 생각하며 혼자 엷은 미소를 띤다. 나쁜 일도 지난 일이 됐을 땐 추억이 된다.


시간은 흘렀고 남매는 화해했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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