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창민 Jul 08. 2024

시끌벅적 다가구

내 삶에서 아파트는 #9

“야 인마, 뭐라고? 이씨 덤벼봐”


고함 소리에 번뜩 깼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검은 어둠이 회색빛으로 바뀌어갈 즈음, 새벽녘이었다. 또 저러네,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맡 휴대폰을 보니 새벽 5시였다. 술 마시고 왜 저렇게 싸우는지.


서울 두 번째 집은 먹자골목 뒤편에 있는 낡은 다가구였다. 4층짜리 작은 건물 맨 위층에는 주인 할머니가 살았다. 1층부터 2층까지 층별로는 두 가구씩 배치돼 있었다. 나는 2층 한쪽 집에서 살았다. 옆집에는 누가 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주인 할머니는 아마도 88서울올림픽이 있던 그즈음, 예전에 살던 집을 부수고 다가구 건물을 지었을 것이다. 1층이었던 집이 4층이 됐고, 주인 할머니는 4층으로 가고 1층부터 3층까지 총 여섯 가구에 세를 놓고, 전세 또는 월세를 연금처럼 받았던 듯싶다. 서울에 집 하나, 땅 하나 가진 많은 사람이 이렇게 가구를 늘렸고 소득을 올렸다. 늘어난 가구 중 하나에 서울로 이주한 내가 깃들었다.


서울에 흔한 다가구, 넉넉지 않은 서민의 안식처가 돼줬다.


다가구 우리 집이 있던 H동은 큰 대학 근처였고 지하철도 엇갈려 지나는 곳이어서 젊은이들이 많았다. 사람이 모이니 술집과 밥집, 놀거리가 붐볐다. 집은 지하철에서 내려 먹자골목을 지나 한 골목 더 들어가면 있었다. 골목마다 사람이 밤새 풍류를 즐겼다. 내일 아침 학교에 가야 하는 나는 자다가, 싸우고 고함치고 웃고 떠드는 소리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새벽에 깨야만 했다. 남의 잠을 깨우는 소리에 짜증도 났지만, 그 또한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일부인 것을. 몸도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에어컨 없는 여름날 저녁, 창문을 열어놓고 바람을 기다리고 있을 때면 치킨 튀기는 냄새나 꼬치 굽는 연기, 갈비 굽는 고기 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어떨 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전깃줄이 어지럽게 매달려 있는 전봇대며 길가는 사람, 식당 밖에 앉아서 술 마시는 취객을 보며 혼자 웃음 짓기도 했다.




평일 저녁이었다. 퉁퉁퉁, 누가 현관문을 손가락 마디뼈로 두드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망설이자, 한번 더 퉁퉁퉁퉁 소리가 났다.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더니, 경찰이었다. 경찰이 우리 집에 오다니.


제복을 입은 경찰은 나에 대해 물었다. 몇 살인지, 지금 뭐 하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언제부터 여기 살았는지. 다짜고짜 뭔 일인가, 기분이 언짢았지만 일단 답했다. 경찰에게서 들으니,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다. 뭐가 없어졌고 조사 중이라고 하며, 신분증을 보여달라 요구했다. 나는 도둑이 아니므로, 자신 있었다. 안 보여줄 필요 없었다. 그래 신분증보다는 학생증을 보여주자. 주민등록증보다는 대학생이라는 걸 알리면, 좀 더 명백하지 않을까.


경찰에게 나는 어린 대학생이고 대학생 신분이므로 도둑일 수 없다고 심리적으로 호소했던 것이다. 다행히, 경찰은 나를 의심하지 않는 거 같았다. 나는 경찰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도, 도둑의 침입 경로를 추측하고 설명하고 보여줬다.


우리 집과 옆집은 공통으로 연결된 창고 공간이 사이에 있었다. 여기에는 이사하고 안 쓰는 잡동사니 일부를 쌓아 두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는 부엌의 작은 창문이 창고로 나 있었고, 옆집도 작은 창문이 창고를 보고 있었다. 창고문은 ‘공유지의 비극’처럼 잠겨있지 못했다. 나는 학생증을 보여주고는 현관 밖으로 몸소 나가, 창고문을 열어 보였다.      

“이 문을 열면 창고가 있고요, 저 창문을 열면 집으로 연결돼요. 도둑이 이 창문으로 집으로 들어갔을 거 같아요.”


묻지도 않은 경찰에게 내 의견을 크게 얘기했다. 경찰은 빼꼼히 고개를 넣어 훑어봤다. 어린 대학생의 말을 참고하는 듯, 하지 않는 듯 보였다. 경찰은 내 연락처를 받아 적고는 퇴장했다. 연락처를 알려주는 게 싫었지만, 고분고분 알려줬다. 의심에서 벗어났으니 됐지.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열쇠를 우편함 구석에 숨겨두고 다니는 일을 그만뒀다. 


창고문을 잠그고 다닌다고 해도 도둑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들 수 있었다. 2층 집에 도시가스 배관을 손잡이 삼아 벽을 타고, 나무틀로 된 창문을 깨면 금세 침입 가능하다. 창살도 없었다. 창살이 있다 한들, 부수거나 떼어내고 들어오면 그만이다. 다행히 낡은 다가구 2층 집에는 도둑이 들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제일 아까운 게 택시비였다. 


지하철 막차에 맞춰 술자리를 파하면 좋을 것을, 흥에 취해 종종 사리분별하지 못했다. 여흥 한 시간 때문에 만 원 넘게 써야 한다니, 안 될 일이다. 어쩔 수 없다, 걸어가자. 학교에서 집까지 걸으면 3시간 반 정도 걸렸다. 금요일 밤이거나 다음날 늦은 수업일 때,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야밤에 걸었다.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씻을 생각도 안 든다. 대충 이와 발만 닦고 누우면 꿀잠이다. 주말 아침 무겁게 눈을 뜨면, 종종 누나는 순두부찌개를 끓여줬다. 누나는 녹색인지 시퍼런지 구분하기 애매한 찬장 앞에 서서, 노랗고 꺼먼 기름때가 은박지에 묻은 모서리 아래에 놓인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찌개에 긴 순두부를 풍덩 빠트렸다.


식당에서 먹는 순두부찌개는 아니었다. 멀건 국물에 기둥 모양의 순두부가 누워있는 간단한 음식이었는데, 먹으면 맛났다. 맵지도 싱겁지도 않은 뻘건 국물에,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는 순두부 건더기까지. 누나 표 순두부찌개에 밥 말아먹으며 동생은 속을 달랬다. 고마워 누나.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작은 주방 하나 있는 열 평 남짓 낡은 다가구 집에서 남매는 6년을 살았다.

이전 08화 반지하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