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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민 Jul 07. 2024

반지하방

내 삶에서 아파트는 #8

장판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았다.


장판이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봤다. 분명 장판이 흐늘흐늘 춤을 추고 있었다. 바닥에 붙어 있어야 할 장판이.


장판 밑으로 물이 한가득이었다. 언제부터 물이 스며들었는지는 몰라도, 물이 장판 밑으로 흘러들어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 선후배들과 새내기가 으레 그렇듯이 왁자지껄 술 마시고 집에 오던 참이었다. 비가 오니까 물이 역류했다. 물이 흘러 나가야 하는 화장실 바닥 구멍에서, 물이 거꾸로 올라왔다.


장판 위를 밟으니 발 크기만큼만 장판이 바닥에 닿았다. 한 발을 내디디면 장판은 다시 하늘로 떠오르듯 떠올랐다. 가방을 내던지고 화장실 앞 장판을 걷었다. 어디에서 바가지를 가져와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화장실 바닥으로, 현관문 밖으로 연신 물을 퍼냈다. 하수구 냄새가 은근히 코로 스며들었다. 코끝을 찌를듯한 냄새라기보다는 은근하고 쿰쿰한 냄새였다.


바가지로 물을 퍼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장판도 흐늘거리지 않고 제자리를 잡았다. 거실 끝에서 걸레를 길게 잡고 장판을 누르면서 네 발로 달렸다. 남은 물을 화장실 앞까지 밀었고, 남은 물을 퍼냈다. 걸레를 동원해 장판을 걷어내며 한 번 더 닦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거 같다. 보일러를 틀고 남은 수분을 허공으로 날려버리자 시도했다. 한 여름날, 쿰쿰한 수분과 보일러 열기가 피부에 닿았다.


사진출처: <국민일보> 2019.06.10. [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반지하 집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206166


서울 첫 집은 반지하 집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급히 서울에 집을 알아봤다. 엄마는 서울에 살고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서울 모처의 작은 집을 계약했다. 지하방이었다. 시골 농부는 넉넉하지 못했다.


지하방의 주인은 듣기로는 큰 회사 높은 사람이었는데, 지하방은 서재로 쓰던 공간이었다. 서울 남부의 집값이 비싼 B동이었고, 위층에는 주인 부부가 살고 지하방에 내가 세 들었다. 창문이 땅의 높이와 같았다. 창밖에는 잔디와 잘 가꿔진 나무 밑동이 보였다. 나는 지하방에 살면서 잔디가 있는 마당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


주인의 부인은 - 아니, 부인이 주인이었을 수도 있다 – 집 앞에서 종종 마주칠 때마다, 나에게 “언제 주말에 마당에서 같이 밥을 먹자”라고 곱게 말했다. 하지만 밥을 같이 먹은 적은 없다. 다행이다.




지하방의 출입구는 차가 드나드는 지하주차장의 옆구리였다.


주차장 옆문을 통해 다녔는데, 학교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떠들다가 집에 오면 주차장 문은 닫혀있었다. 그러면 관리실 창문을 똑똑 두드리고, 문을 열어달라 부탁했다. 그때마다 미안했다. 크지 않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반 층 계단을 올라가면 집이었다. 집은 언제나 어두컴컴했다. 잠자기는 좋았다.


주말이었는지 낮잠을 잤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깬 거 같은데 몸이 안 움직였다. 팔도 다리도 몸도 옴짝달싹 못 했다. 귀신인가. 귀신이 나의 온몸을 누고 있나. 가위눌림이다.


어릴 적 가위눌림을 당하면, ‘이건 귀신이 그런 거다’ 누나가 겁을 줬다. 겁이 많았던 나는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깨어있는데 몸이 안 움직이는 건, 분명 귀신의 짓이다. 유독 서울 지하방에서 낮잠을 잘 때면, 자주 가위눌림을 당했다. 몸을 못 움직일 때, 처녀귀신인지 무당귀신이진 그런 형상도 종종 본 거 같기도 하다. 화들짝 놀라고, 식은땀이 났다. 습기가 많고 햇볕이 잘 안 드는 곳이어서 그런지.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귀신은 습한 응달을 좋아한다고.


과학적으로 가위눌림은 뇌는 깼는데 몸이 안 깬 상태를 말한다고는 하지만, 스무 살 첫 먼 서울살이와 지하방 살이가 심리적으로 외로웠던 것 같다.


하수가 넘치는 거 말고는 살만했다. 물이 장판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일 년에 한두 번이어서 그땐 참을 만했다. 지하방이었지만 나의 첫 서울살이의 안식처였다. 학교에 가고 오고 씻고 밥 먹었다. 서재로 쓰이던 공간이라 꽤 넓었다. 가구와 짐을 놓을 자리가 많았지만, 나의 세간살이는 많지 않았다. 오래 살 곳도 아닌데 세간살이를 많이 놓을 이유도 없었다.


난생처음 지하철을 타고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경험도 좋았다. 지하철은 신기했다. 땅밑으로 기차가 가다니. 돈을 아끼려고 주황색 정기권을 끊고 다녔다.




2년을 살았을까, B동 지하방에 더 살지 않고 이사 갔다. 누나는 누나와 내가 살 작은 집을 구했다. 강 건너 북쪽 H동이다. 이사 당일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누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 나왔다. 새로운 집 계약은 누나가 맡았다. 스물한 살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누나가 하는 대로 따랐다. 누나도 나도 상식이 부족했다. 이사를 왔는데 누나가 말했다.


“거기서 아직 보증금을 못 받았어. 전화를 했는데도 돌려줄 돈이 없다네.”

“이런.. 어떡해? 내가 전화해 볼게.”


지친 누나를 대신해 이사 온 집 옆 골목 구석으로 갔다. 무작정 전화했다. 잔디마당에서 같이 밥을 먹자고 권했던, 옛 지하방의 주인이 받았다.


“아직 돌려줄 돈이 없다. 내가 누구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아직 못 받았다. 아직 못 받았는데 어떻게 돌려주나.”


돌려받길 원하는 이사 나간 세입자에게 그녀는 말했다. 고운 말은 아니었다. 답답한 노릇이다.


“어쨌든 빨리 돌려주세요. 저희가 이미 이사를 와서, 저희도 여기 돈을 줘야 해요.”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잘 사는 집이 몇천만 원 보증금이 없어서 못 돌려주나.’ 아마도 주인이 보증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한 모양이다. 부탁하는 방법 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날 저녁이었는지, 다음날이었는지 다행히 누나는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돌이켜 보면, 보증금을 받지 않고서 이사를 나온 누나와 나의 무모함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운이 좋았다.


H동 두 번째 셋집은 2층이었다. 반지하에서 나온 것이다. 서울 두 번째 집은 시끌벅적 먹자골목 안쪽에 있는 허름하고 작은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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