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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민 Jul 05. 2024

빌딩숲, 아파트숲

내 삶에서 아파트는 #7

"여기가 영화에서 보던 그 종로?"


그러면서 나는 손으로 코를 가리는 시늉을 했다.


"눈감으면 코 베간다는 그 종로?"


서울에서 처음 만난 대학 친구는 나를 종로로 이끌었다. 친구 J는 서울태생에 고등학교도 서울에서 나온 예쁜 서울말씨를 쓰는 얼굴이 흰 사내였다. 말로만 듣던 서울깍쟁이는 아니었다. 나에게 항상 고운 말로 물었다.


"너, 여기 와봤어?"


나는 경상도 시골 출신답게 '니, 여기 와봤나?'라고 말했을 텐데, J는 서울사람답게 각진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사투리를 안 쓰는 남자 말투, 적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뭔 일로 종로3가역에서 종각역까지 길을 걸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가까이에 멀리에 우뚝 솟은 키 높은 건물을 보기 위해 고개를 연신 들었던 일과 많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가방 멘 몸을 칼날처럼 옆으로 비틀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골에서 함께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을 만날 때면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걸을 때 높은 건물 보려고 고개 들지 말라. 촌놈 티 다.”


이다지도 서울의 빌딩숲은 신기하고 낯설었다.


서울에는 참 높은 건물이 많다. 몇 층인지 아래에서부터 눈대중으로 숫자를 세어보지만, 이내 몇 층인지 까먹고 만다. 족히 50층은 넘어 보인다. 와, 이렇게 높은 건물이 하나도 아니고 수백 채, 아니 수천 채나 되다니. 논과 밭, 산, 높은 건물이라고는 몇 층 언저리만 봐왔던 나는 서울에서 고개를 들 때면 어질어질했다.


2000년 봄쯤이었다. J의 안내로 영화에서처럼 종로 바닥을 처음 걸어봤다. 나에게 처음 서울은 종로였다.




하루는 그 유명한 압구정에 가보고 싶었다. 압구정에 어떻게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3호선 압구정역에 일단 내렸다. 압구정. TV로 봤던, 멋진 옷을 입고 빛나는 액세서리를 찬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압구정.


출구로 나왔는데 길을 잃었다. ‘어디든 가보면 가까이 있겠지. 그러니 압구정역이겠지.’ 촌놈의 객기로 무작정 걸었다. 건물과 건물, 각진 도로들 사이에서 길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건물에 막혀 들판 보듯 시야를 멀리 할 수 없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도, 지도 앱도 없었다.


도로와 건물 사이를 걷고 헤매다가,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보기. 드디어 패션의 거리 압구정 거리에 도착했다. 거리를 따라 쭉 걸었다. 저녁이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지, 지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여기가 듣던 대로 압구정 거리인가. 휘황찬란한 옷을 걸어놓은 유치창 뒤 마네킹과 옷가게, 커피숍, 술집들이 즐비했다. 전시된 옷을 보고 나의 옷을 아래로 봤다.


‘내가 압구정에도 와보는구나.’ 호기심 많은 촌놈의 서울 도심 탐험은 그 이후로도 속됐다.




대학에 입학하고 S를 만났다. S도 서울 태생에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나온 서울 여성이었는데, 깍쟁이처럼 보였다. 서울말을 쓰는 여성을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사투리 쓰는 사람밖에 없었다.


S 학교에서 자주 만났다. 같은 학부여서 수업도 같이 듣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 저녁을 먹거나 학교 모임이 끝나면, 종종 S의 집 근처까지 데려다줬다.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1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어느 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면 S가 사는 동네 S동이다.


서울 어느 곳, 아파트 대단지


S는 대단지 아파트에 살았다. 대단지, 몇천 세대는 족히 돼 보였다. 아파트가 몇 개가 아니라, 아파트 건물이 수도 없이 네모 모양새로 서 있었다. 아파트가 줄을 맞춰 동서로 쭉, 남북으로 쭉 있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는 공원이며 놀이터며 벤치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큰 아파트 단지였다.


위로 올려다보면, 도대체 몇 층인가. 20층이 넘었나 안 넘었나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무튼 높았다. 서울의 아파트도 처음 보는데, 아파트와 아파트가 모여서 큰 단지를 이루고 있는 도시 아파트 단지는 난생처음 본다. 이런 곳에, 서울 사람은 사는구나.


S의 집이 아파트 기준으로 몇 층, 몇 열에 존재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는 좌표를 잃었다. S를 집에 바래다주고는, 벤치에 앉아 잠시 휴, 쉬었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곤 했다. 버스 창밖으로 불 켜진 높고 네모난 아파트가 보였다. 두런두런, 가족은 집에서 쉬거나 TV를 보고 있겠지. 가까이에 있는 아파트, 멀리 보이는 아파트를 눈에 담았다.




아파트, 대단지 아파트.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높은 곳에서 살까. 안 무너질까. 복도를 따라 집으로 가네. 밑에 보면 안 무섭나. 단독주택이 아닌데, 집 앞에 공원이며 놀이터, 운동기구, 산책로가 있네. 이 단지에만 몇 명이 살까. 아마도 내가 태어난 시골 소도시 인구의 절반만큼은 되겠구나, 추측해 본다. 인구를 가늠해 보다가 와,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했다. 내 경험치를 넘어가는 숫자였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서울 사람의 신식 주거공간이라고 느껴졌다.


그 해가 가기 전, S를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자연히 서울 S동 그 대단지에는 갈 일이 없어졌지만, 서울 어느 곳에서나 큰 아파트는 이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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