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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민 Jul 03. 2024

친구네

내 삶에서 아파트는 #5

열여덟 살 때의 일이다. 시내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나는 읍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고, 고등학교는 시내로 갔다. 지금은 인구 10만 정도 되는 지방 소도시이지만, 어린 나에게는 버스 타고 한참 가야 하는 큰 도시였다.


친구네는 시내에서도 가장 비싼 아파트였다. 1층 출입구에도 유리문이 있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집에 엘리베이터라니. 몇 층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10층 이상이었다. 집은 대궐 같았다. 40평 정도 됐던 거 같다. 왜, 일일연속극에 나오는 회장님과 사모님이 사는 그런 집 같은 곳 말이다.    


어느 저택 거실 이미지, 열여덟 내가 본 친구네 거실은 이만큼 넓고 좋았다.


태어나서 대궐 같은 집에는 처음 가봤다. 방과 거실, 방과 방이 한 시야로 들어오지 않고, 방에는 걸어서 한참 가야 하는 집. 거실에 나무 원목으로 구불구불 문양이 박인 품격 있는 소파가 있는 그런 집.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눈은 휘둥그레. 친구네는 말 그대로 부자였다.


친구 방에 들어갔다.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라니. 잠은 원래 맨바닥에 솜이불 깔고 자는 거 아니었나. 엄마는 겨울이 오기 전에, 솜이불의 이불잇을 벗기고 빨아서 새로 씌웠다. 바느질로 솜과 이불잇을 잘도 이었다. 솜이불은 무거웠지만 엄마품처럼 따듯했다.


그런데 침대라니. 잠을 침대에서 자기도 하는구나. 방에 침대가 놓여있는 광경을 처음 마주했다. 침대에서 자면 안 굴러 떨어지나, 차마 친구에게 묻지 못했다.     




품격 소파에 앉아 친구 아버지의 장광설을 들었다. 마침 친구 아버지의 친구도 와서, 말은 길어졌다. 말이 귀에 닿기도 전에, 내 눈은 거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멀리 부엌에서 친구 어머니가 과일을 깎는다. 맞은편에는 큰 텔레비전이 있다. 소파는 원목으로 만들어졌는데도 폭신하다. 친구 아버지는 회장님처럼 앞에 앉아 있고, 나 같은 손님은 일자로 두 줄로 놓여 있는 소파에 다소곳 앉아 있다. 소파가 있는 거실에서.

     

방은 몇 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4개 정도 됐던 거 같다. 방이 이렇게 많은 40평이 넘는 아파트라니. 거실 창문 밖으로는 멀리 냇가와 산, 시내가 어렴풋이 보인다. 이런 풍광을 보면서 사는구나. 도대체 몇 층이야.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오금이 저려서 창문 가까이 가기도 무섭다.    

  

강렬한 경험이었다. 이런 집도 있구나.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 도시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좋은 집에 산다는 것, 좋은 소파와 침대, TV를 갖고 넓은 집에 산다는 것,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올라간다는 것. 모두 하나같이 처음 겪어보는 광경이었지만, 알 수 없는 시무룩함을 겪었다. 부러움과 주눅듦이 뒤섞인 어떤 감정이었다. 우리 집은 그렇지 않은데.

     

친구네는 어떻게 이런 집에 살 수 있었을까. 이런 집은 얼마쯤 할까. 친구 집은 좋았다. 멋졌고 대단했다.


사춘기 소년은 새로운 집을 처음 경험하고는, 어른이 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이런저런 궁금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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