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vs 도서관
#글 쓰러 어디로 갈까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15년간 일하고 살고 사유했던 걸 책으로 엮고 싶었습니다. 몇 년간 생각만 해오다가, 올봄부터 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노트북은 있고, 머릿속은 정리돼 있고. 문제는 글 쓸 공간이었습니다. 책상 하나, 의자 하나만 있으면 될 거 같은데, 집은 집중이 안 됐습니다. 아내가 재택근무 중이어서, 작은 방 하나를 같이 쓰기도 불편했습니다. 일단 가방에 노트북을 넣고, 가방을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가장 쉬운 곳이 스타벅스입니다. 동네에서 걸어서 10분만 나가면 큰 스타벅스가 있습니다. 좀 더 가면 또 있습니다. 지하철역 하나에 한 개씩은 꼭 있습니다. 겨울엔 따뜻한, 여름엔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하나 사서 앉으면 널찍하고 좋습니다. 저는 원목으로 된 긴 책상을 좋아합니다. 노트북 놓기도 편하고 전원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난한' 작가지망생에게는 4천5백 원도 '큰돈'입니다. 아껴야지요.
일단 텀블러는 필수입니다. 텀블러에 커피를 담으면 무려 4백 원을 할인해 줍니다. 고마워요 스타벅스. 하지만, 이것도 며칠이지요, 20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온다면, 8만 2천 원이 필요합니다. 적은 금액일 수 있지만, 아끼면 좋잖아요.
5월에는 호기롭게 공유오피스를 계약하기도 했습니다. 한 평 되는 혼자 쓰는 방이었는데, 조용하고 좋았습니다. 내 사무실이 생기는 건가, 묘한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한 달에 23만 원이었습니다. 그것도 찾고 찾아서, 동네 한 귀퉁이 지하에 건축가가 마련한 작은 공유오피스였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공유오피스, 잘 썼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저는 '가난한' 작가지망생입니다. 23만 원은 제게 큰돈입니다. 한 달만 쓰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한번 가보자 마음먹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 있잖아요. 서울 기준으로, 구별로 한 개씩은 있습니다. 다행히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공공도서관이 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처음 가보는 도서관은 어색하긴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몇 번 가보고, 동네 도서관에 가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스타벅스는 몇천 원 돈이 듭니다. 아침 일찍이거나 오후 늦게는 조용한데, 붐빌 때는 시끄럽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좀 시끄러운 것도 글 쓰는 데 크게 방해되는 건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 속닥이는 사람, 연인인 듯 사랑스럽게 대화하는 소리, 직장동료인 듯 기분 좋게 하하호호 떠드는 소리. 사람이 사는 모습이지요. 다만, 스타벅스는 물도 잘 없고 커피를 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잖아요. 화장실도 좀 좁고, 때에 따라서는 사용하기 불편하고요. 왔다 갔다 지나는 사람 눈치도 은근 보이고요.
도서관은요, 제가 한 달 정도 와보니까 스타벅스보다 더 좋은 거 같아요. 일단 1층에 서가가 있습니다. 저는 보통 글 쓰고 일하는 걸 5시 반정도까지 하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1층 서가에 잠시 들러 책을 읽습니다. 최근엔 <손자병법>에 빠져서 반 정도 읽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 읽기, 나름 낭만 있습니다. 서가에 들어서면 오래된 책 냄새가 나름 맡기 좋습니다.
2층에는 디지털 공간과 어린이 전용 서가가 있고, 3층에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이 있습니다. 칸막이 공간도 있고 저처럼 노트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과 책상이 넓게 마련돼 있습니다. 도서관은 대체로 조용합니다. 모두 조심스럽게 다니고 공부합니다. 저는 노트북 자판소리도 최대한 작게 내려고 노력합니다. 지나는 사람도 많이 없어서, 눈치도 잘 안 보입니다.
심지어 정수기가 층마다 구비돼 있습니다. 텀블러와 카누를 꼭 챙겨 옵니다. 카누 2개를 텀블러에 털어 넣고, 정수기 물을 받아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시작하지요. 커피 없이는 글도, 일도 잘 안 되는 커피 중독쟁이입니다. 화장실도 넓어요. 꼭대기 층에는 밖에 나가서 바깥공기 쐴 수 있는 열린 공간도 있습니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도 있는데, 밖에서 보니 너무 작고 사람도 없어서 들어가기 눈치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거긴 안 가봤습니다.
스타벅스 vs 도서관. 저는 도서관이 훨씬 편하고 좋은 거 같아요. 다만,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스타벅스로 가서 글을 씁니다. 너무 같은 공간에 자주 와도 지루하잖아요. 하루쯤은 사서 마시는 진한 커피도 향기롭습니다.
8월초 1인 출판으로 에세이 한 권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내게 자리를 내준 우리동네 공공도서관,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