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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Nov 09. 2024

촛불 하나 켜 놓고 들어도 좋은

[밤 9시 글쓰기 32] 24.11.09. 드보르작 둠키 둠카 빌에반스

조용한 공간이 좋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골방을 즐겨 찼던 때가 있었다.

집중이 잘 되어서다. 

잡음 한 톨이 섞이면 곧 정신이 산만해졌다.

사람이 단순해서 동시에 두 가지를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취향도 바뀌었다.


골방에서 나와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거운 책을 읽을 때는 여전히 골방이 더 나았지만,

그 외는 더 좋았다.

책 한 권 들거나 노트북 챙겨,

적당한 소음이 있는 카페를 찾기도 한다. 

     

글을 쓸 때는 음악이 있으면 더 잘 써졌다.

그렇다고 장르 불문하고 다 좋다는 건 아니다.

시끄럽지 않고, 

연주만 있으면 좋고,

가사가 있더라도 해석 불가라면 괜찮다.

나도 모르게 노랫말에 따라가 버려서다.   

  

음악에 소양이 얕은 편이다.

아니 일천하다, 특히 서양음악에.

중학교 마칠 때까지 춘향가 적벽가만 듣고 살아서다.

아버지께서 임방울 명창 광팬이셨다.

다른 음악은 소음이라고 일체를 거부하셨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판소리에서 해방되었지만

고기도 먹어 봐야 맛을 아는데,

그런 쪽은 들어본 적도 없어 어색했다.

자연스럽게 모든 음악에서 멀어졌다. 

    

사회생활 하면서 트로트와 먼저 친해졌다.

어르신들 노는데 분위기 깨지 않으려면 몇 곡을 기본기로 갖추어야 했다.

많이 접하다 보니 가까운 이웃이 되어 갔다. 

    

마님을 만나고 바뀌었다. 

클래식 취향이었고 조예가 깊었다.

정치 취향이 달라도 함께 있을 수 있지만,

음악 취향이 다른 사람과는 잠깐도 함께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맞았다.

클래식에 관심을 주었다.

하지만 이게 몇 곡 듣는다고 경지에 오를 수는 없는 일,

열심히 노력한다고 모두 다 서울대학교 가는 건 아니잖은가. 

그래도 귀동냥하는 세월이 쌓이다 보니 겨우 낮과 밤을 구별하는 수준이 되었다. 

    

야금야금 영역 확장을 해서 재즈도 슬쩍 넘보았다. 

얼마 전까지 글을 쓸 때는 빌 에반스를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었다. 

비 오는 날 커피 마시며 듣기 좋다고 해서 몇 번 들었는데,

모니터가 만주벌판처럼 막막하다가도 이걸 틀면 희한하게 잘 써졌다.  

   

요즘엔 귀가 많이 밝아졌다.

페이스북 친구 덕택이다.

사연과 함께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

좋은 친구 하나가 어설픈 열 선생 부럽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얼마 전에는 둠카를 소개받았다.

체코슬라비키아 국민 작곡가로 불리는

드보르작 (Antonin Dvrak)의

<피아노 트리오 4번 둠키>였다    

 

둠카(dumka)는 슬라브 민요의 일종으로,

3세기 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내려오던 애수 짙은 발라드다.

느리고 슬픈 부분과 빠르고 열정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둠카가 여러 개 모인 복수형이 둠키(dumky)다. 

    

정확히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딱 좋았다.

글쓰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때론 촛불 하나 켜 놓고 들어도 분위기 만점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미안하다.

그간 신세 진 바가 적지 않았는데.   

  

지금 모니터 옆에 촛불이 흔들리고, 

스피커엔 둠카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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