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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ther time 자축인묘 Sep 28. 2024

회상

그대는 어디에!!!

회상  

그대는 어디에!!!    

 

 성도는 정말 미스터리한 친구였다.

성도 집안에 대해 물어보는 친구도 아무도 없었고 성도가 직접 집안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웃고만 다녀 성도의 어두운 면을 아는 친구는 , 경철이를 비롯한 몇몇 친구를 제하고는 아무도 아는 친구가 없었다. 경철이는 성도 앞에선 절대 엄마의 엄 자도 꺼내질 않았다.


 성도는 지금까지 참고서를 산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험을 보면 성도는 항상 앞쪽에 이름이 붙어져 있었다.    

오직 수업시간에 들은 것과 시험기간에  경철이 집에서 경철이 참고서를 같이 보며 시험 공부를 해왔었다.

그래서 경철이 엄마는 성도를 무척 좋아했다. 덕분에 경철이도 같이 공부를 해서 성적이 나름 오른 것은 사실이었다. 거의 매일  경철이와 같이 지내 왔다.

    

경철이 아버지는 성도 아버지와 친구여서 나름 더 배려를 해주셨다.   

성도는 참고서를 사고 싶어도 아버지가 타지에서 돈을 벌어 집에 오는 날이 일정치 않아 항상  경철이네 신세를 지곤 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성도는 갈매산 큰 미루나무를 보며 예전의 도의 눈에서 멀어져 간 미루나무 가로수를 그려 보았다.

그리고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70년대 시골 버스 ( 네이버 )

“엄마 갔다 언제 오는데? ”

여섯 살인 성도는 앞이 터진 빨간 내의 같은 바지에 오른손에  갈색 하드(아이스크림)를 들고

엄마가 타는 버스 앞에서 물어보았다.

     

" 어 성도야 엄마 세 밤만 자고 오니까

누나 말 잘 듣고 있어 알았지"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성도는 엄마가 왜 울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름 성도 엄마는 당시 시골에선 중학교 졸업이 별로 없었지만 중학교를 졸업 한 당시엔 나름 인정받는 분이었다.

.     

성도의 어릴 때 기억은 장(장날) 이서는 한 복판에 디귿자 모양의 한옥이 나름 멋지게 서있고

또 다른 일자 모양의 사랑채는 돌산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에게 세를 주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생각났다.

    

또 다른 기억은  김일이 나오는 레슬링을 할라치면 동네사람들 모두가 성도네 마루에서 보았던 기억이 생각났다.

     

김일 선수의 박치기가 있을 때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어렴 풋이 기억났다.
     

다리가 달려있고 문닫이가 있는 진갈색  **흑백 텔레비전은  시청을 안 할 때면 열쇠로 잠가 놓은 그런  기억도 있었다.     

             


엄마가 버스에 올라 타자

성도는 하드를 빨며 “ 엄마 빨리 와~~~” 

그 소릴 듣고 성도 엄마는 울면서 뒷자리로 향했다.     


그때가 성도 기억 속에 다정했고 포근했던  엄마의 마지막이었다.    

엄마가 탄 차는 누런 흙먼지를 피우며 미루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 서서히 사라졌다.


어린 마음에도 성도는 왠지 모를 쓸쓸함에 흙먼지 묻어 다 녹아 버린 하드를 빨며 집으로 돌아간 것이 도 마음속의 진정한 엄마의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성도의 머리에선 엄마라는 단어 자체는 삭제가 돼 복구 불능인 단어가 돼 버렸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 삶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한 번은 지금은 전학을 간 동석이네 집에 잔치가 있어 동네 친구들과 성도는 국수를 먹으러 갔었다.  

그때 동네 엄마들이 다 모여 잔치를 거들고 있었고 엄마들은 자식들을 챙겨준다고 이것저것 맛난 음식은 따로 챙겨 놓는 것이 동네 불문율이었다.

     

마침 그때 성도도 동네 아이들과

잔칫집에 갔을 때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식탁을 따로 배치하고 엄마들이 나와

한 상을 차리면서 따로 국수와 함께 맛 난 음식을 종이에 말아 자식들에게 챙겨 주었다.     

성도는 국수가 나오자 허겁지겁 먼저 국수를 집어  자리에 놓고 한 입 크게 뜨는 순간...

잔치국수 (네이버)

민성이 엄마가     

“ 야 성도 너 왜 그거 먹어!!!”

민성이 건데 왜 먼저 손을 대냐며 타박을 주는 거였다.

     

성도는 크게 뜨던 국수 젓가락을 내려놓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눈물이 흘러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향하는데...

“ 어이구 엄마 없는 애는 저렇게 티를 내요 티를 내~~ 민성아 어서 국수 먹어 응~~”

하며 민성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도는 인생에서 제일 치욕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성도는 깜깜한 빈 방에서 정말 서럽게 울었다.

     

엄마 없는 하늘이 너무도 싫었고

엄마도 미워지고 아빠도 미워지고

미운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몇 시간을 그렇게 울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깜깜한 방이 더 어두워질 뿐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나 할 정도였다.

    

그 이후부터 도는 동네 잔칫집이나 환갑 집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고

웬만하면 집을 보여주기 싫어 창문을 항상 닫고 살았다.

     

가끔씩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꼬물꼬물 한 자식들을 보며 매일 같이 눈물을 흘리셨고

맨 정신엔 그 상황을 참지 못해 매번 술을 드셨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성도는 '아버지가 어느 식당에 술 취해서 쓰러 지셨대' 하면

성도는 아버지를 모시러 항상 그곳에 가곤 했다.

     

식당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아버지를 업고 집에 오는 것은 백이면 백  성도의 몫이었다.    

도는 매일 .'나는 왜 이런 삶을 살아야 되나' 하며 혼자서 운 적이 정말로 많았다.

     

그래도 성도는 선생님을 잘 만나 초등 (국민) 학교 때도 그렇고 지금 중학교 때도

겉으로는 너무 잘 자란 학생으로 인정을 받곤 했었다.     


겉으로 보는 성도의 모습과 감추고 숨겨왔던 내면의 모습은 마치  겉모습만 같고 속은 타들어가는 거울에 비치는 상(像) 과도 같았다.     


성도는 미루나무를 볼 때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이 교차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무침을 느끼곤 했다.  
   

오늘도 갈매산 정상의 큰 미루나무를 보며

성도는 또 웃음을 보이려 학교로 출발했다.  


    


성도의 마음을 담아 1982년 산울림 (작사:김창훈)이 노래한 회상을 낭송해 봅니다. 눈을 감고 성도의 마음을 따라가 보시기를 기대합니다.

회상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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