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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ther time 자축인묘 Sep 24. 2024

8.15 체육대회

Goal in? or No Goal?

8.15 체육대회 

    

 매년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 면민 체육대회는 초등학교 사정상 올해는

중학교에서 열리게 되었다.     


각 마을은 이날 하루 동네잔치라 보면 될 것이었다.

각 리별로 이장님의 인솔하에 대부분 마을 인원이 학교에서 천막을 치고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그야말로 추석, 설 명절을 제외한 가장 큰 행사였다.

시골 잔치 가마솥 (네이버)

새벽부터 마을별로 각종 고기와 안줏거리를  장만하여 학교로 이동하는 구조였다.           

본부석에서는 면장님을 비롯해 초등학교, 중학교 교장 선생님, 농협 조합장님을 비롯해 동네 유지들의 자리가 준비되었다.

본부석 연단에는 각 종목별 우승, 준우승용 트로피 및 기념품 전시로 개회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방학이라 각 리별로 남학생, 여학생 각 5명씩 차출된 중학교 2학년 인원은 8월 15일 금요일 하루는 안전요원으로 배치가 되어 운동장에  축구, 배구, 씨름, 육상 등 경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흰 석회를 뿌려 경기 진행을 돕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간혹 리별로 동네에서 선수 인원이 부족하면 땜빵용 선수로 차출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행사용 텐트 (네이버)

염색되지 않은 내추럴한  광목천 대형 텐트 안에는 이른 아침부터 손님 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각 마을별 동창 아저씨들의 웃음소리와 " 아이구 이게 누구여...어여 일루 와 앉어..."하며 ‘한잔’ ‘한잔’ '한잔' 아저씨들 몸 안에는 알코올이 쌓여가기도 하였다.

           

사회를 준비하는 주최 측 중학교 학생지도 선생님이신 김 정만 선생님의 마이크 테스트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아...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아...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드디어 8.15 면민 체육대회 선수 선서와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선서!!! 제41회 면민 체육대회에 참가하는 우리 선수 일동은 각리를 대표하여 정정당당히 경기에 임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일천구백팔십육년 선수 대표     박 정도 ”

    

작년 우승팀 진계리 칠사 마을 선수 대표인 정도 아재의 우렁찬 선수 대표 선서가 끝난 후

기성면 면장님의 축사가 진행됐었다.     


“ 친애하는  기성면민 여러분 8.15 광복을 맞이하야 면민 체육대회를 진행한 지도 어언 사십하고도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기념하야 치러진...... ~~~~~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올리자면~~~ 이것으로 축사를 갈음하겠습니다.”

면장님의 기나긴 (5분 이상...) 연설이 끝나고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이어 중학교 교장선생님.... 조합장님.... 우체국장님.... 축사가 연이어 이어졌다.

    

“ 와따~~~ 난 축사가 제일 싫어~~~~ 꼭 마지막으로 당부하자면 하고... 3분은 더 끌자너~~~”

오늘 진행요원으로 차출된 중2병에 걸린 반항아 경철이의 속닥거림이 들렸다.

   

“그치~~ 왜 다들 똑같이 그래하는지 모르것네 진짜... 나도 그래 될랑가?? 나이 들면???” 

옆에 있던 수길이도 맞장구를 쳐 주었다.

     

“야... 야.... 야.... 잔소리 말고... 오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거여~~~”

광수는 오늘을 나름의 찬스로 여기고 있었다.

그동안 모든 산해진미는 체육대회 현장에서 선을 보이는 지라... 각 리별로 대표하는 음식이 하나씩 있었다.


진계리의 찹쌀과 당일 잡은 돼지 막창으로 만든 피순대 두루치기,

기성리특제 보쌈

운암리사골 곰탕

응암리염소탕 (응암리에는 염소농장이 많음)

......

체육대회 이외의 행사에서 음식 점수도 반영이 되고 있어 이 분야도 우승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부분이라 각 리별 부녀회 아주머니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체육대회는 각 리별로 점수가 업치락 뒤치락하고 있었다. 씨름 우승을 차지한 진계리를 비롯해

배구에서는 서울서 X대학서 선수로  뛰고 있는  운암 1리 성민이 형의 스파이크로 우승은 운암 1리가 가져갔고

육상에서는 응암리가 우승을 차지하고 진계리가 준우승을 차지하여 현재 종합점수는 진계리가 작년에 이어 종합우승에 제일 근접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꾸물꾸물하던 날씨가 갑작스러운 소나기로 인해 30분 동안 대기(홀딩) 상태가 되었고.. 운동장 정비 후 대망의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 축구 결승이 시작되었다.

결승에 오른 진계리와 운암 1리는 이 축구 경기 결과에 따라 종합우승과 준우승으로 갈리게 되었다. 종합우승의 부상으로는  리 발전기금 50만 원이 주어지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기가 예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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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경기 심판은 진계리와 운암 1리가 아닌 응암 2리 젊은 이장님인 형범 아저씨가 맡았다.

이장님의 킥오프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치열한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진계리에는 젊은 청년들이 모자라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부로 몸을 단련한 중학교 2학년  용수와 영흥이가  선발 공격진에 배치가 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학교 에이스로 단련된 용수는 군계일학(群鷄一鶴 )이었다. 하지만 축구는 한 명이 잘한다고 되는 운동이 아닌 단체 운동이므로 용수의 분투는 다른 진계리 아저씨들이 받쳐주지 못해 매번 운암 1리에 차단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전후반 60분 연장전 20분의 모든 시간이 흘러갔다.

면 체육대회는 시간상 전반 30분, 후반 30분으로 연장전은 전후반 각각 10분씩 진행되는 것으로 1회 때부터 정해진 규칙이었다.  길고 길었던 80분의 모든 경기 시간이 지나가고 대망의 죽음의 레이스인 페널티킥 만 

남게 되었다.


마지막 경기라 모든  8.15 체육대회에 참석 및 구경온 사람들은 정구장이 있는 좌측 꼴대로 모여들었다.


1번 키커 운암 1리 김 정수, 진계리 박 성준

2번 키커 운암 1리 성 진수, 진계리 변 성환

3번 키커 운암 1리 배 대영, 진계리 엄 익준

4번 키커 운암 1리 성 영수, 진계리 정 영흥

5번 키커 운암 1리 백 대영, 진 계리 안 용수


상기와 같이 순번이 정해지고 순서에 맞게 페널티킥이 시작되었다.

4번 키커까지 운암 1리와 진계리는 3골을 넣었고 1골을 실축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마지막 5번 키커 차례가 되었다. 5번 키커 운암 1리 대영 아재는 군대표까지 나간 선수 출신이라 가볍게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중2 진계리 대표 용수만이 남아있었다..... 모든 시선은 용수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 어우~~~~ 뭐가 이렇게 떨리는겨~~~~ 예전 학도 체전 결승전 보다 더 떨리는 거여~ 뭐여 이거...~~'

용수는 웬만해서는 떨지 않는 에이스 중에 에이스였지만 지금처럼 온 면민의 집중을 받은 적은 처음이라

마치 오줌을 지릴정도의 찌릿찌릿함이 용수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 에이 모르것다...일단 씨게 차는 거지 뭐~~~' 혼자 생각하며 좌측 모서리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강슛을 날렸다..  

                              

그때였다....

심판인 응암 2리 이장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 삑" 소리와 함께  노골 (No Goal) 선언이 되었다.

이때 진계리 아저씨들은 일제히

"아니여!!!!!~~~ 이게 골인(Goal In)이지 어떤 게 골인이여!!!!!"

하며 아침부터 한잔 한잔 알코올을 걸쳤던 진계리 아저씨들이 우르르 페널티킥 현장에 난입하며

결과에 강한 불만을 내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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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망이 있었으면 이런 난리는 없을 것이지만... 중학교 축구 골대는 꼴대만 있지 꼴망은 없었던 지라... 용수의 강력한 슈팅이 골인 인지 노골인지  분간하기가 애매했다.

   

용수의 캐논슈팅이  골이라면 진계리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종합우승을 차지하지만

골이 아니라면 운암 1리가 종합우승을 차지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운암 1리와 진계리의 자존심 싸움의 장은 뜨거운 용광로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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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파투(파토)여!!! 파투 (화투용어)~~~~ 심판 눈이 지대루 달리기는 한 거여~~~ 꺽~~~~ ”

아침부터 만취상태인 용수 아부지는 아들이 찬 강력한 골이 노골로 선언된 것을 보며

새벽녘 밭갈이 하다 온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흰색 런닝 메리야스까지 벗어던지며 비가 와 엉망이 된 페널티킥 현장에 그대로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뒤이어 진계리 철규 아부지, 영흥이 아부지....... 진계리 아저씨들 모두 현장에 나와 웃통을 다 벗고 누워 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때 용수, 영흥이, 철규는 아부지들의 돌발행동에 얼굴(쪽)이 팔린다며 국민교육헌장 탑 뒤로 숨어 버렸고 진계리와,  운암리를 제외한 다른 리의 동네 아저씨, 아줌머니들은 유사 이래 이런 볼거리는 없었다며 웃으며 난리가 나고 있었다.


그러나 진계리와 운암 1리 주민들은 기다, 아니다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었다.     


“ 이게 골인이지 뭐가 골이여~~” 진계리의 이런 주장과는 달리     


“워째 저게 골이여??? 분명히 내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이건 노골이여... 이건 나간 거라구~~~” 운암 1리의 상반된 주장은


말싸움을 넘어 몸싸움으로 가기 일보 직전까지 가고 있었다.           

그때 이 광경을 지켜보던 본부석에서는 자체 회의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아.... 잠시 본부석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계리 이장님과 운암 1리 이장님은 본부석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사회를 맡고 있는 중학교 학생지도  김 정만 선생님의 긴급 공지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진계리 이장님과 운암 1리 이장님과 본부석 행사 요원의 이십여 분간의 고성(高聲)이 오간 끝에 결론이 도출되었다.


사회를 맡고 있는 김 정만 선생님의 결과 발표가 이어졌다.

" 41회 면민 체육대회 마지막 축구 결승에 따라 진계리와 운암 1리의 종합우승의 향방이  갈리는 관계로 긴 진통 끝에 얻어 낸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끌시끌하던 중학교 운동장의 모든 이들은 일순간 결과 발표를 하는 김정만 선생님의 입을 주목하였다.


"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일의 단초가 된 페널티킥 골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 저희 중학교의 과실도 크고 하여... 내일 당장 골망을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결과를 기다리던 모든 동네 사람들은 " 뭐여~ 그냥 결과만 말하라구 결과만~~ 가제트 선생님!!! (학생주임 별명임)~~~ " 운동장에 나와 있는 아저씨들의 90%는 현재 취할 때로 취한 상태라  활활 타는 장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 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중하시고요~~~ "


" 이번 41회 면민 체육대회의 축구 및 종합우승은 진계리와 운암 1리의 공동 우승으로 각 이장단 회의에서 결정되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종합우승 부상으로 제공될 우승상금 50만 원과 준우승 상금 20만 원을 합해 진계리와 운암 1리에  35만 원씩 발전기금이 제공됨을 공지 사항으로 알려드립니다..."

그때 운동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웅성웅성 되며... 면민 체육대회 사상 첫 공동 종합우승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체육대회가 끝나고 차출되었던 중2 인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운암리에 살고 있는 반장 재성이 용수에게 물어보았다.

" 용수야 나한테말 살짝 말해봐 봐~~  공 찬 사람이 제일 잘 알 거 아니여?"

그때 용수가  야릇한 눈빛을 보내며

"재성아 일루 와 봐 봐~"하며 귀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 내가 찬 슛은  왼쪽 상단 모서리 살짝 빗나갔어 ~~~ 울 아부지하고 진계리 아저씨들이 하도 애향심에 불타서 다 바닥에 들어 눕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잘 모른다 했어... 쉿!!! 조용!!!"


재성은 비록 운암 1리에 살았지만 용수와 진계리 아저씨들의 불타는 애향심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  아~~~~ 그래?!  그럼 골인이 맞네~~~ 그런데 용수야 배가 살 고픈 거 같은데 매점이 저짝에 보이네  라면이 지금 왜 이렇게 땡기냐 흐흐흐~"


" 알았어 알았어... 산다 사~~~ 에이 말을 말았어야 됐는데 흐흐흐 ~~~"

용수와 재성은 둘만의 약속을 지키려 매점으로 향했다.

" 오늘 라면에 50원 더 보태 계란 두 개 올려달라 해야지~~~ 매점 할머니한테~~~ 잘 먹을게 용수야!!! 흐흐흐~~~"
" 여튼 대단해 용수는~~~ 니가 면민 체육대회 역사를 바꿀 줄은~~~ 역시 우리 용수~~~  최고여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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