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 그 짝에 쪼매 좀 비키 보이소 으잉~~.... 무과 시험 합격하신 호색 도령 행차 하신다 아입니꺼 ~~ 쪼매 쫌 물러나 보이소... 길이 비잡다 아입니꺼... 아지매 그 짝도 쫌 ~~ 노온나(나온다) 쫌 노온나고 으잉 ~~”
부산포 난전에서 호령을 하는 이는 호색과 투전판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 주던 장 씨 아재였다... 성은 장 가에 이름은 덕칠이로 부산포 바닥에선 그냥장 씨 아재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동네의 모든 대소사를 책임지는 오늘날 홍 반장과 같은 거간(부동산 중개업자) 꾼이었다
.
장 씨 아재는 호색은 자기가 키웠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양 과거 급제한 호색을 너무도 자랑스러워하며 호색의 금의환향 행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 되련님 마카 지 말이 맞지예? 지가 된다 캤다 아입니꺼? 되련님이 안 된다 카믄 말이 안 된다 아입니꺼... 되련님 무예 실력이면 장원은 따논 당상 이었을낀데....쪼매 아숩다 아입니꺼?”
장 씨 아재는 과거에 합격은 했으나 장원을 하지 못한 아쉬움에 푸념을 하고 있었다...
“아재요. 아입니더.. 하하하.... 하마토면 지는 초장에 집에 왔다 아입니꺼..... 신 행님이라꼬 몬 만났으몬 ... 뻔할 뻔짠기라예... 하하하하...” 호색은 장 씨 아재에게 식년시 무과 시험이 어떻게 치러졌는지 상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아~~ 그랬습니꺼? 오매야!!! 내는 그 칸 줄도 모르고..... 어데 있습니꺼? 그 신이라는 되련님은예,,,? 내 감사 인사를 쪼매 전해 드려야 될 낀데예... ” 장 씨 아재는 자기 일 인양 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했다...
“우야둔동 오늘은 되련님도 대감마님께 인사드리고 억수로 바쁠 것이고.. 이따 야(夜) 밤에 지가 건하게 마 기분 싸악~ 풀 수 있도록 자리 한번 마련 하겠습니더... 마 기깔란 주막이 이 짝 초량 근방에 생겼다 아입니꺼... 되련님” 장 씨 아재는 오늘밤을 기대하라며 호색에게 살짝 언질을 주었다.
“아재요? 하하하하하... 내 꼭 기깔라는지 보겠습니더..하하하하...” 호색은 오늘밤을 기대한다며 장 씨 아재와 인사를 나눈 후 부친이 머물고 있는 관사( 무관 첨사직) 문을 열어젖혔다..
“ 이게 누꼬(누군고)!!! 우리 맞이가 급제를 해가 들어오나? 그런 게냐 그런 게야?” 호색을 맞이하는 아버지, 어머니, 손윗누이, 손아래 누이 모든 가족이 버선발로 나와 호색을 반기고 있었다.
급제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던 지라 가족들의 기쁨은 배가 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빠야 진짜 급제한 거 맞나? 진짜가??? 우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노 희한하데이 희한해... 내는 오빠야 초장에 집에 올 줄 알았더만 진짜로 과거에 급제 한 그가 맞나??” 하며 놀림반 기쁨반 호색의 급제를 축하해 주었다.
“맞다 아이가!!! 내 그랫제 부담 없이 치고 온다 안캣나 맞제? 부담 없이 치니까 이래 딱 붙는다 아이가 하하하하하....... 맞다 맞다.... 아부지 절 받으시지예.... ” 하며 집무실이 있은 동헌 방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호색은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아버님, 어머님께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 그래 우리 아들 애 마~이 썼다.... 부산포서 한양까정 천오백리가 넘는 길을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돌아온 것도 고마운 일일 낀데 이렇게 급제라카는 좋은 갤과(결과)까지 갖고 와가 정말 고맙데이 고마버....”..
첨사직을 수행하는 호색의 부친은 급제를 하고 돌아온 호색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다.
“ 아이고 우리 아덜 얼굴 쪼매 보자... 낮이 반쪽이 됐다 아이가? 내 퍼뜩 맛난 음식하고 준비하라 칼기고마... 니 동래찌짐 제일 좋아한다 아이가? 오늘은 코 삐뚤어져도 내 암말 안한다카이...알겠제? ” 하며 호색의 어머니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쁜 마음에 호색에게 오늘은 원 없이 취해도 된다고 허락을 한 것이었다...
호색은 "알겠습니더 어무이요..." 오늘은 지 하는 대로 놔두시는 겁니더..맞지예?? 하며 호색은 너털웃음을 보였다
“ 하모!! 하모!!. 오늘은 니 쪼대로 함 해보라 안 했나........” 호색의 어머니 강 씨는 호탕함이 여느 남정네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부산포에서는 알아주는 여장부이기도 하였다...
주모인 보령댁은 바깥양반인 보부상 전가의 둘째 부인으로 첫째 부인과는 오래전 사별한 전가를 따라 충청도 보령에서 땅 끝과도 같은 부산 땅으로 터전을 옮겼지만
막상 전가의 집에 와보니 주렁주렁 딸린 식구에 홀어머니를 포함 자식이 여섯이나 되고 초가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고 족히 10년은 사용했을 초가의 볏짚은 누런 끼는 하나도 없이 검은 지붕으로 변해있었다... 이 광경을 본 보령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푸념을 하였다...
“아이고 내가 미친년이지!!!!! 그 잘난 전가 놈 달짝한 혓바닥에 놀아났네. 놀아났어.....
이걸 워쭨대유... 워쩐대.... ” 기가 차서 말을 할 수 없던 보령댁은 싸리나무로 역어 놓은 사립문 앞에서 주저앉아 통곡을 하였다...
그때였다.... 검푸른 초가집 안방문이 살며시 열리며...
“뉘귀여? 뭐 땜시 남의 집 앞에서 청승을 떠는 것이므니까? 정지에 물도 안 데파고 뼁아리도 눈도 안 뜰 시간에 뉘가 우늰까???
머리칼이 백발인 노파가 허리를 구부리며 지팡이를 짚고 마당으로 나왔다
보령댁은 노파가 전가의 모친임을 담방에 알 수 있었다.
이목구비가 전가와 똑 닮았기 때문이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 이마엔 주름이 자글자글 했지만 널찍한 이마와, 함지박과 같은 입술 특히 매부리코와 같이 높은 콧날과 넓은 코 두덩은 판박이나 다름없었다.
보령댁을 사로잡은 큼지막한 콧날이 똑같았다...
모친의 모양새를 닮은 전가는 태생은 부산포이지만 전가의 모친은 그러하지 못했다.
성은 류요 이름은 팡생이었다..
류팡생 전가 모친의 태생은 부산포가 아니었다 부산포 왜관에 속한 류큐(오키나와) 출신의 왜인이었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전가의 모친은 열두 살 아직 첫 달거리도 시작하기 전 이와미 은광에서 채굴한 은 5냥에 그녀의 삼촌에 의해 부산포로 팔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모진 인생을 살며 후(後)에 전가의 아버지를 만나 조선에 정착하며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었다.
“ 뭔 사연이 있는강 몰라도 비잡지만 안에서 퍼뜩 몸 좀 녹키고 이바구(이야기) 하입시더.....”
보령댁은 전가 모친의 부축을 받으며 사립문을 지나 좁다란 툇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세평 남짓한 방안에는 여섯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이 한 명은 머리를 문지방 밑에 두고 다른 한 명은 다리를 골방 서랍에 올려놓고, 배를 젖혀놓은 나머지 아이들은 좁다란 세로로 겹쳐 잠을 자고 있었다...
보령댁은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좁은 골방에 노파를 포함 일곱 명이나 잠을 잔다고 하니 보령 댁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님!! 어떻게 이런 좁은 방에서 일곱이나 되는 식구들 하고 사셨는지요?"
전가 어머니는 놀라며
“ 아니 처음 보는 할매 한테 어매라니... 당치도 않는 말이지... 처자가 삭삭하게 불러주는 건 고마븐 일이지만서도........ 여기 자고 있는 아~들 어매들이 다 다른 밭인기라...... 아들놈이 여간 애를 먹였어야지" 하며 누런 황토 빛이 남아있는 천정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파, 할매 류팡셍은 '남편 복 없이 어찌 자식 복을 바라겠는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 그때 내가 거기만 안 갔어도......” 하며
격자모양 창호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35년 전 그 일을 떠올렸다...
“빠가야로!!! 소코니 다떼!! 소코니 다떼!!”
장대비가 내리는 부산포 초량 여각(旅閣) 근방
일본도(刀)를 빼든 건장한 왜인의 추격에. 풀어 혜 쳐진 기모노와 질질 끌리며 빗물을 삼키는 개다는 류팡생 그녀의 상황과 다름이 없었다.
“ 소코니 다떼!! 소코니 다떼!!!
거기 서라며 금방이라도 장대비를 벨 듯한 기세와 날 선 눈빛은 류팡생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가고 있었다
“쥬카마타라 시뉴!"
잡히면 죽는다며 소리치는 왜인을 뒤로하며 초량 사거리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헉 헉헉.."
연신 가쁜 숨을 뱉으며 도망치는 팡생은 사방이 가로막혀있는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였다. 사거리 모퉁이에 가로막혀 있을 때 어디에선가...
“ 처자 이쪽으로!!!!”어디선가 실낱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자 이쪽 이쪽으로 빨리...”
막힌 길모퉁이 사이로 개 한 마리 정도 들어갈 구멍 속에서 나무 판자가 열리며
굵지만 낮은 목소리로 긴박한 팡생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팡생은 빨려 들 듯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판자를 닫고 쥐 죽은 듯 몸을 사리게 되었다.
“도코 이니루 노!!! ” 팡생을 쫒고 있는 왜인은 “어디 있는 거야!!!”를 외치며 팡생을 찾아보았지만 초량 사거리 골목길에는 개미 한 마리 기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상태였다....
“유코 무코 미치 니~~” 저쪽으로 가자며 서너 명의 왜인들은 빼든 칼을 들고 반대편 길로 향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팡생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한 남자의 손이 슬며시 내려갔다
팡생은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상태라 약간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
하였다...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손이 거친 것으로 보아 부산포 인근의 남자는 분명해 보였다..
그는 호색이었다.
호색은 식년시 무과시험 급제 피로연을 마치고 장 씨 아재와 다음 기깔라는 장소가 있다 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왜관 근처에는 자시(子時)가 넘은 시각에도 왜인, 명나라 사람들과 같이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주막이 성행하는 곳이 또한 초량 인근이었다.
“ 아재요?? 가만있어 보이소?? 뭔 소리 안나느교?” 호색은 장 씨 아재에게 소리의 근원이 어디인지 묻고 있었다.
“ 되련님... 뭔 소리가 난다 캅니꺼? 꺽~~ 꺽...” 장 씨 아재는 대낮부터 호색의 급제에 취해 벌써 인사불성이 된 상태였다...
그때 호색이 소리 나는 쪽으로 이동을 해서 만난 것이 바로 팡생이었다....
“처자가 무슨 연고로 이래 쫓기는지는 모르겠어도... 일단 여서 벗어나야 됩니더...”하며
호색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칠 시간도 아깝다는 듯 긴박한 순간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가자며 팡생의 손목을 이끌고 비가 내려 질퍽한 진흙 밭을 가로질러 폐가인 듯한 허름한 초가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에 젖어 흰 살이 비치는 팡생의 어깨 위로 널 부러진 기모노는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도련님... 혹시 함자(銜字)라도? ”.... 수줍은 듯 질문을 하는 팡생을 향해 호색은 덤덤하게 이야기를 전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싶어 잠시 도와준 것인데예.....
크게 감사 받을 일을 한 것이 없는데 제가 더 민망할 따름입니더.. 처자...."
“어디 갈 때라도 있는교?...” 호색은 팡생의 거처를 묻고 있었다.
“ 괘념치 말고 몸이라도 먼저 녹이시지예...”.
그때였다... 팡생은 비에 젖은 기모노를 벗어 젖히는 순간 긴장이 순식간에 풀어져 호색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호색은 갑자기 파고드는 팡생을 향해 오늘 하루 종일 피로연에 마셨던 술이 모두깨이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러나 호색은 본능에 충실한 호랑이마냥 젖은 머리칼을 움켜쥐며 운우지정 (雲雨之情 )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세상의 빛이 모두 한 곳으로 집중하듯 내리쬐는 아침햇살은 알몸이 된 호색과 팡생의 머릿결을 더 눈부시게 하였다.
눈을 비비며 한쪽 눈을 먼저 뜬 호색은 품에 안겨 미동도 없는 팡생을 향해 팔베개를 한 오른팔을 서서히 젖히며 저려오는 팔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프다는 신호를 먼저 보냈다..
“아이고 무시라 팔이 와이리 저리노...!!!” 다른 곳은 멀쩡한데 팔은 왜 이리 저리노?
혼잣말을 중얼대는 호색은 간밤에 있던 일이 마치 꿈과도 같았는지 살을 꼬집어도 보고
볼을 두드려 보기도 했지만 이건 분명 현실이었다....
'그럼 내가 어제 정말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곤하게 잠에 빠져있는 팡생의 얼굴을 응시했다. 아침햇살에 풀어 제쳐진 머릿결이 눈일 부실 정도로 강하게 호색의 마음을 훔치고 있었다.
호색은 오늘도 그동안 식년시 무과시험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일가 친척집들을 찾을 예정이었다....
“ 처자 날이 밝았다 아입니꺼... 옷을 쪼매만 입어야... 쪼매 입어야...”
호색은 평정심을 찾으려 했지만 떨려오는 마음은 주체할 수 없었다.
“에그머니나!! ” 화들짝 놀라며 이불 삼아 덮어진 기모노를 움켜쥐며... 가슴을 가리며 뒤로 빠지는 팡생은 외마디 작은 비명을 질렀다...
"차후 만날 일이 있다카믄 이름은 알아야 될 거 같아가....... 최가에 호색이라 합니더....
처자가 어찌 생각할지는 몰라도 간밤의 일은 내도 어쩔 수 없어가..." 하며 말 끝을 흐리며...
"내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자리를 비아야 되니 몸 잘 추시리고 연이 되면 또 보입시더... "
눈 부신 아침햇살 속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떠나는 호색의 뒷모습을 팡생은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지아비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도련님!!!~~~~ 도련님!!!~~~ 도련님!!!' 이렇게 부르고 싶었지만 팡생은 자신은 기구한 운명을 알기라도 하듯 흐르는 눈물속에 아침 햇살과 함께 사라지는 호색을 그져 바라만 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