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ther time 자축인묘 Jun 02. 2024

발포 만호 임명과 파직

청백리 이장군

‘오늘 왜 이리 달이 밝은 것인고?’

뛰 뜰 정자에 나와 있는 신은 밝은 달을 바라보며 3년 동안의 함경도 동구비보(삼수갑산) 초급 권관( 변경의 수비를 맡은 작은 진보에 두었던 종 9품의 수장... 지금의 소위 임관) 시절을 떠 올리고 있었다

.

‘참 추운 곳이었지... 붙들네도  이지바이도(여진족) 잘 있는지?’

신은 추위로는 조선에서는 제일 겨울이 길었던 함경도 권관 시절을 떠올렸다... 3년 동안 추위와 가난에 시름하는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정들었던 이들을 떠올렸다..

 



“만호 나리!!! 나리!!! ” 신을 찾는 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리 호들갑인 게냐?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다 들리니 조용히 불러도 되느니라...” 신은 자기를 찾는 금에게 다 안다는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뒤로 저쳤다...     

“나리!!! 전라좌수영 절제사 어른께서 사람을 보내 왔구먼유?” 금은 발포 만호로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에게 소식을 전하였다.        

“그래 알았느니라......”하며 짠내가 섞인 바닷바람을 뒤로하며 동헌(東軒 정무를 집행하는 곳)으로 향했다.

 

계절의 영향도 있겠지만 전라도 발포의 (전남 고흥) 해풍은 이전 함경도 동구비보( 삼수갑산)의 삭풍과는 바람 자체가 달랐다. 칼날 같은 함경도의 바람과는 달리 전라도의 부드러운 해풍은 신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 절제사께서는 강녕하신가?” 신은 전라 절제사 서 창익의 소식을 전할 몸종으로 보이는 이에게 묻고 있었다.     

“예.. 나으리 저는 절제사 영감을 모시는 팔복이라 합니다요.. 절제사 영감께서 동짓달 그믐에 이쪽에 순시가 있다 하셔서 만호 나리께 전갈을 보내고자 왔습니다. 나리....” 하며 허리를 구십 도로 굽으리며 팔복은 신에게 인사를 전하였다...    

  

팔복은 신을 모시는 경, 금과 마찬가지로 절제사 서 창익을 경기도 이천 본가에서 모셨던 심복 중에 심복이었다.      

“그래 알겠네...허나 절제사께서 시찰을 하시는 것을 전령을 통해 전하면 될 일이지 어찌 사노(私奴 )인 자네가 소식을 전하는가? ” 신은 공(公)과 사(私)는 철저히 구분하는 인물로 함경도 동구비보 시절부터  유명하였다.      

“실은 저희 절제사 영감께서 별도로 전하라는 말씀이 있으셔서 이렇게 부득이하게 제가 만호 나리를 뵙게 되었습니다요 ” 팔복은 따로 말씀드릴 내용이 있다며 주위 사람을 물릴 것을 청하였다.      

“ 그래 따로 전한다는 전갈이 무엇인고? ” 하며 동헌 뜰에 허리를 굽히며 이야기를 전하는 팔복에게 되물었다.      

그때 팔복은 아직 동헌에 신을 모시는 여럿 휘하 장수와 포졸이 있는 것을 보며... 멈칫거리기 시작하였다...      

“뭐 그리 긴요한 일이 있다고 주저하는가? ” 어서 말해 보시게... 나는 지금 공무(公務)를 보고 있으므로 공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듣고자 하는 것이니 괘념치 말고 말해 보시게... 신의 중저음의 목소리는 주위 분위기를 일시에 휘어잡고 있었다. 

     

“실은 절제사 어른께서 동짓달 그믐 순시 시 섣달 보름에 있을 절제사 어르신 따님 혼사에 쓸 나전칠기와 가구 목재를 발포 동헌 뒤뜰에 있는 오동나무가 적당하다 하시며 동짓달에 베어 놓으시라 전하였습니다. 만호 나리....”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찌 공공재를 사적인 행사에 쓴다는 말인가. 

신은 우뢰와 같은 목소리로 “어허 동헌 뒤뜰 기 백 년은 족히 넘을 오동나무를 벌채하라는 말씀이신가? ” 

지금까지 이렇게 대노(大怒)하는 신을 볼 수 없던 휘하 장수들은 숨소리조차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 발포 동헌도 나라가 관리하는 곳이고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은 무릇 공적인 것일진대 어찌 사적인 일에 휘둘린다 말인가?  정녕 절제사께서 그런 하명을 하셨는가? 필시 자네가 잘 못 들었을 것이므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전하길 바라네....”     

팔복은 발포 만호의 합당한 말에 어쩔 줄 몰라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 예 잘 알겠습니다. 만호 나리”  

   

동짓달 열이레 

팔복은 절제사 서창익에게 발포 만호 신의 답을 전하였다 “ 나리 발포 만호께서 동헌 뒤뜰 오동나무도 나라 재물이므로 손을 대면 안 된다 답을 했사옵니다요 나리...”     

“뭐라??!!... 발포 만호가 상관인 내 청을 거절했다... 그 말이냐? ” 절제사 서 창익의 얼굴은 금세 붉어지며 안 그래도 치켜 올라간 송충이 같은 눈썹을 휘날리며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 아니 그것이 아니고... 발포 만호께서 절제사 어르신 하명이 정말 맞는 것인지 재차 알아 오라 하셨습니다요 나으리...”          

“이런 어찌 상관인 내 말을 거역한다는 말인가?  여봐라!!!! 지금 당장 발포로 갈 것이니 채비를 하거라~~~” 절제사 서 창익의 이글거리는 눈 속에 섬광 같은 불꽃이 튀어 올랐다.. 



발포 동헌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절제사 서창익의 행렬이 발포 동헌에 다 달았다     

마침 기별을 받고 관아 앞에 대기하고 있던 신은 정중히 목례로 예를 올렸다.

“ 절제사께서 직접 먼 길을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 나오게 되었습니다..  평안히 오셨는지요? ”      

“ 발포 만호!!! 자네가 뭔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그런 인사를 내게 하는 것이오?” 절제사 서창익은 풀리지 않은 분을 여과 없이 내 뱄고 있었다.      


“ 심기가 불편하심을 제가 모르지는 않지요 절제사...” 

신도 절제사 일행이 발포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 군은 엄연히 상명하복이 있는 것인데 어찌 발포 만호는 상관인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인가? 발포 만호!!!” 쩌렁쩌렁하고 칼칼한 절제사 서창익은 신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전하고 있었다.    

  

“ 발포 만호... 저 이 신은 조선 수군을 지키라는 지엄하신 어명을 받들고 이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 발포의 행정, 군사, 치안등 모든 나랏일을 받들어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라는 어명을 수행하는 공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절제사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비록 절제사께서 저보다는 높은 품계에 있더라도 공적인 일이 아닌 사적이고 은밀한 청탁이나 부탁을 한다면 아무리 상관의 명이라 해도 제가 따를 수 있겠는지요? 공적인 명령이면 뜻을 받들어 행함이 당연할 것이지만 이번 절제사의 전갈은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저로서는 수락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알려드리옵니다. 동헌 뒤뜰 오동나무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발포라는 곳을 상징하는 기 백 년이 넘은 나무로 발포를 대표하고 있음을 절제사께서도 잘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 연유로 발포 관아도 오동나무를 중앙으로 해서 배치되었지 않았겠는지요... 

나라의 재물을 어찌 사적인 일로 해하려 하시는지요 절제사...!! "

   

신의 빠져나갈 수 없는 설명에 절제사 서창익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관아 주위에 모여 있는 휘하 장수 및 포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맞는 말만 하고 있는 발포 만호 신과 반박 못하고 부글부글 화를 내는 절제사 서창익의 대화 내용을 듣고 있음에 속 시원하다는 대리 만족이라도 하듯 키득키득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 그래서 상관인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말이로 구만 발포 만호!!!” 분을 삭이지 못한 절제사는 동헌에 들어가기도 전에 “ 얘들아 가자!!!” 하며 말머리를 돌려 좌라 좌수영이 위치한 여수로 발길을 돌렸다....  

   

‘ 어디 두고 보자 이 신!!!! 내 기필코 저놈을~~~~~“ 뒤돌아서는 절제사 서 창익의 두 눈은 분노를 넘어 저주에 가까웠다


“ 내 오늘의 치욕은 반드시 갚아 주고 말 것이야!!! 반드시!!!  저놈을 반드시 끌어내려 살려 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반드시!!!”     


절제사 서창익 일행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관아 앞 모든 이들은 

‘꼴좋네... 꼴좋아!!!! 워디 저딴 놈이 나라 녹을 먹는지... 쯧쯧 쯧...’ 하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고..

“으짜쓰까나 여튼 만호 나리는 시원시원 한 당깨로요 상관 앞에 저래 당당할 수 있간디요?? .....“       


   



여수 좌수영에 도착한 첨절제사 서창익은 수군절도사인 이천기에게 글을 올렸다     


“발포 만호 이 신은 이번 관아별 순시에서 최하점을 득하여 부득이 그 관직을 삭탈함이 옳을 줄 아뢰옵니다. 

이 신은 발포 관아 주위를 둘러쌓고 있는 흉물스러운 나무들을 제거할 것을 수차례 지시를 했으나 나라의 재물이라는 핑계를 들어 순시 전까지 제거를 하지 않고 방관을 하였으며

각 고을별 순시 시 관아의 정돈 상태와 군관들의 훈련 상태가 양호하지 않음을 파악할 수 있었고 상관인 본인의 지시를 불이행하는 명령 불복종 상태를 야기  한 바 크므로 이에 관직을 삭탈할 것은 아뢰오니 본사태의 과실을 따져 군의 지엄함을 보여주시기를 청합니다.     

섣달 초이레 전라좌수영 첨 절제사 서창익 올림  "


이를 본 수군절도사 이천기는 “ 군의 상명하복이 지엄하거늘 어찌 일개 만호 벼슬인 자가 첨 절제사의 명을 거역하는가?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지금 당장 파직을 명하거라!!! 내 추후 이 사건을 한양으로 장개를 올릴 것이니 먼저 발포 만호부터 파직을 명하거라....”    

 

“ 예 잘 알겠습니다. 절도사 어르신.... 분부 거행 하겠나이다 ” 절제사 서창익은 만면에 미소를 지며 수군절도사 이천기의 집무실을 나왔다.     


“ 흐흐흐흐.... 발포 만호 이신!!! 하하하하하......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지금 당장 이 서찰을 발포 관아에 전하거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절제사 서창익은 한마디를 더하였다

“ 흉물스런 오동나무는 제거하여 좌수영으로 압수하라 이르거라!!!!!”    

  

섣달 초여드레 발포 만호 이신은 수군절도사의 전갈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장개와 같은 수군절도사 이천기의 글을 마주했다. 


손이 부르르 떨리고 참지 못할 울분이 밀려왔지만 신은 담담히 경과 금에게 지시를 내리었다

“ 오늘부로 발포를 떠나야 되니 어서 채비를 하거라... 경아 금아!!!”

“ 나의리 왜 그런대유?? 절도사께서 뭐라 하셨는데유?”영문도 모르는 경과금은 깜짝 놀라며 신에게 물어보았다.     

“자세한 것은 지금은 묻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자 어서 채비를 해야 배를 타고 갈 수 있으니 서둘러 채비를 하거라.....” 

신은 할 말은 많았지만 이것 또한 한양으로 장개가 올라갔음을 알기에... 아무 말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 하고  발포 관아를 떠날 준비를 하였다....


“ 나으리 지금 당장 어떻게 돌아간되유? 워디로 간다구 하시나유?? ” 경과 금은 태연한 신의 얼굴을 보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어허!!! 예가 어디라고 공무를 보는 관아 동헌이네... 모두 징징거리지 말고 서두르거라... 내 부끄럽지 않게 일을 했으니 떠날 때도 부끄럽지 않게 조용히 떠날 것이네... 그리들 알거라” 

신은 경과금에게 떠날 채비를 지시하고  뒤뜰에 있는 오동나무 동헌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 나라의 재산임을 알기에... 너를 지키려 했으나.... 본의 아니게 너를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아프구나..... 내 언제가 다시 돌아와 너의 넋을 그려 줄 것이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 신은 동헌 뒤뜰에 늠름하게 서있는 오동나무에게 오랜 친구인양 혼잣말을 건네고 돌아왔다....   

  

“자.... 준비가 다 됐으면 어서 떠나세...” 신과 경, 금이는 처음 부임한 수군 임지인 발포를 뒤로 하며 발길을 돌렸다   

 

      

발포의 석양을 바라보며 신은 혼잣말을 하였다..“오늘은 왜 이리 저녁노을이 붉은것인고...........” 


이전 05화 식년시 무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