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밤...
최전방 국경의 밤
"삑~ 뻐억 삑~ 뻐억" 소쩍새가 울어 저치는 자시(子時) 신은 관사 뒤 연못 위 평상에 자리를 하였다.
“ 소쩍새 울음이 왜 이리 처량한 것인가???” 신은 청운학(靑雲鶴) 정자에서 상현(上弦)으로 흐르는 달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수족과 같은 경과 금은 오늘도 신을 보필하기 위해 청운학에서 삼십보쯤 떨어진 위치에서 신을 지키고 있었다.
“ 금아?... 오늘은 나리께서 뭘 저래 골돌이 생각하는 줄 아는감??” 경은 금에게 ‘너는 아마 모를 것이여’하는 어투로 금에게 물어보았다...
“그야 나야 모르지~~ 내가 알믄 여서 이래 있덜 않지.. 벌써 저작거리에 돗자리를 깔었지~~ 안 그려?” 참 한심한 질문을 한다는 듯 금은 경을 바라보았다...
“에헤~~~~ 쯧쯧...” 혀를 차며 경은
“그래서 금이 너는 안 되는 거여... ” 경은 당연하게 이런 답이 금이 입으로부터 나올 것을 알기라도 한 듯 혀를 차고 있었다.
“잘 들어보더라고... 금이 너는 나리를 그렇게 모셨는디두 아적도 그걸 간파를 못 허니 맨날 남 덜한테 소리를 듣는겨...눈치 없다고 알어??..... 오늘이 뭔 날이여?? 오월 초 여드레 자녀... 작년 이맘때 기억 안 나는감?? ” 경은 금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상기시키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나리는 함경도 조산보 만호나리로 녹둔도에 계셨자녀?... 근디 그때 뭔 일이 있었는가? ”
금은 경의 말을 듣고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작년 나리께서 부방(赴防)<< 변방에 군역을 담당하기 위해 가는 길>> 길에 오르시고 함경도에 계실 때 그때 방기 (방직기녀 (房直妓女)가 누군지 알자녀 ? 안 그랴? ” 경의 뜬금없는 소리에
“ 그때 방기는 월향이 아니여?.... 아 맞다 맞어..그때 월향이가 빨래하러 나갔다 행방불명이 됬자녀...” 이제야 금이는 그때를 떠올렸다...
“ 그때 작년 오월 초여드레가 오늘 이자녀.... 이제 좀 알것냐? ” 경은 왜 신이 청운학 정자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지를 설명하였다.
“ 에이~~ 설마? 너는 우리 나리를 워째 생각을 해서 그런 씰데 없는 소릴 하는겨?? 나리 들으시면 워쩔라구 그런데~~~ 우리 나리는 절대루 그런 분이 아니시구먼... 방기 때문에 저렇게 우수에 젖어 계신다면 나리가 아니시지 아니구 말구여~~~~ ”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금은 절대적으로 아님을 경에게 항변하고 있었다.
“ 얘가 얘가~~~ 아직두 뭘 몰라두 한참 모르는겨 금이 너는... 그때 나으리가 월매나 월향이를 아꼈는지는 너두 잘 알자녀... 빨래며 청소며 기가차게 깔끔했자녀 그리구 그거 있자녀... 밤에 우째 되는지는 뭘러두 아침만 되면 나으리 안색이 밝아지시는 걸 금이 너는 그걸 아적도 몰란 단 말이여?? ”
“ 아니여!!! 아니라구~~~ 우리 나리는 절대로 색(色)을 밝히는 그런 분이 아니여~~~ 암만 아니지 아니구 말구여~~~” 금은 씩씩대며 경에게 신(臣)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항변(抗辯 )하고 있었다.
“왜 그려~~~ 그러니 금이 너는 아적도 장가를 못 간거여.... 니가 하룻밤 만리장성을 알랑가 모르것구먼~~~ 알았어... 알겠으니께 이제 그만 허자구~~~ 그만 혀~~” 경은 금과는 대화가 안 된다며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리려 하였다...
“ 경이 너 한 번만 더 나리를 욕보이면 내 가만 안 둘거여 알것어!!! ” 금은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해 눈썹을 치켜올리며 경을 바라보았다...
“ 알았어 알았어..... 우리끼린데 뭐 이런 야기도 못하는가?... 내가 미안허니 그만 혀 그만 혀 이제....” 경은 금과는 둘도 없는 사이이지만 가끔은 색(色)이나 장가 문제에 있어서는 이렇게 의견이 대립되고 있었다.
‘그니까 아적 장가를 못 갔지... 쯧쯧..’ 경은 혼잣말을 돼 내이며 분위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 나으리... 밤에 날도 찬디 이자 들어가시지요?” 경은 상념에 잠겨있는 신을 향해 들어갈 것을 청하였다...
“ 어허... 벌써 시간이 이리 지날 줄은....”
시간은 자시에서 축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 그래 들어가자꾸나~~” 신은 자리를 뜨며 “ 잘 지내야 될 건데...”하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경은 짐작한 일이 맞는구나 싶어 신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전했다.. “ 나으리 어디에 잘 있을거구먼유... 너무 심려치 마셔유~~” 신은 경이 짐작한 일이 맞기라도 한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리 강직하고 충효(忠孝)를 따르던 신도 뭇 남정네들의 삶과 똑같은 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아끼던 여인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신(臣) 자신도 신을 보좌하는 경(京)도 칠흑 속 어둠에서 무언(無言)의 답을 하고 있었다.
‘ 그때 그날 녹둔도 시찰을 조금 미뤘어야 됐던 것을......’ 신은 그날 빨래터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달빛 향기(월향)를 이곳 최남단 전라도 태한땅에서 상현달을 보며 그리워하였다...
“ 그래 들어가자꾸나 경아 금아~~~ 날이 차구나~~~”
신은 경과 금에게 들어가자는 말만 전하고 유유히 청운학 계단을 통과하여 숙소로 몸을 옮기었다....
“ 장군!!! 장군!!! 큰일 났습니다~~ 태한 앞바다 적도(的島) 근방에 왜구가 들어왔다는 전갈입니다~~ 왜구의 배가 이전보다 배 이상으로 많이 보인다는 망루 장졸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장군....” 소식을 전한 이는 전라좌수사 태한현의 만호 정광(鄭光)이었다... 정광은 선전관 신(臣)에게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 그 배가 몇 척이나 될 것 같소 정만호!!!... ” 신은 전투상황에는 이골이 난 듯 얼굴 표정이 차가운 얼음으로 변하며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 예 장군!! 적도(的島) 근방에 출현한 왜선은 스무 척이 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저도 직접 먼저 확인을 해야 되지만 선전관 장군 집무실이 망루 가는 길에 위치하여 장군께 먼저 말씀드리고 확인해야 될 것 같습니다.. 장군!!” 태한 만호 정광은 목소리에는 신과 다를 바 없는 사즉생의 결기가 느껴졌다..
“ 같이 가시게나 정장군....”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정장군 정광과 이장군 신은 망루로 올랐다..
망루에서 확인 한 바로는 스물 두척의 왜구의 배가( 왜구의 배를 세키부네라 함) 적도 근방에 다다르고 있었다...
원래 적도(的島)의 예전 섬 이름은 학도(鶴島) 였지만 군사 시설로 지정되어 화포 사격 연습이 지속되어 이곳을 과녁으로 된 섬이라 하여 적도(的島)로 여말선초(麗末鮮初)부터 불리기 시작하였다...
여말선초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는
총길이 1.3m , 통신 길이는 1.16m, 구경 128mm인 천자총통의 위력은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할 강력한 무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 정 장군!!! 적의 수가 스무 척 안팎이니.. 현재 이쪽 육상에서 적도(的島)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 것이오??” 신의 물음에
“ 정확히 구백보입니다 장군~~” 태한 만호 정광의 답도 정확하고 간결했다.
“ 좋소!! 전 장병을 들에게 명하시게... 왜구의 배가 적도를 지날 때 구백 보를 기준으로 육상에서는 천자총통을 발포하라 명하시고 격침이 안된 왜선은 육상 쪽으로 이동할 것이니 왜구는 배가 이백보 거리에 위치할 때 우리 아군의 판옥선에서 화포를 재장전해 발포를 준비하고 진법은 원형진법(圓形陣法)으로 가두리에 왜선을 가두는 형상으로 화포를 발포하라 하고.... 그때도 왜선이 보인다면 구십보에서 효시를 날리어 활로 적을 소탕토록 하시게.....” 신의 간결하고도 미리 적의 형상을 예상한 신의 한 수에 옆에 있던 정장군 정광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지시를 한 번에 저렇게 내릴 수 있는가? 혹 병법책을 집필을 하신 겐가?’ 정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투 형태를 지시하는 신(臣)을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내며..
“ 예 장군!!! 분부 거행 하겠나이다 장군~~~~!!”
“모든 장졸 들은 화포를 준비한다.... 발포 준비!!!!!...”
태한 만호의 발포 준비 신호가 떨어지고... 신과 정광은 적도(的島) 근방을 주시하였다... 아직 왜선은 적도까지 일이백 보의 거리가 남아있었다.
화포인 천자총통의 육상 사거리는 구백육십 보이며 바다 위 판옥선에선 배의 흔들림으로 인해 사거리는 육상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이백 보였던 것을 신은 병법을 공부하며 미리 숙지를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지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왜선이 적도를 통과할 때...
“ 이때다.... 발포하라!” 낮은 음성으로 선전관 신(臣)은 정광에게 명을 내렸다.
“ 전 장졸은 발포하라!!!!! 화포를 발포하라!!!!” 발포하라는 명과 동시에 우뢰(雨雷)와 같은 굉음이 태한 앞바다를 집어삼키듯 화포인 천자총통의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쿠아아아아앙~~~~~ 쿠아아아아아아앙~~~” 점화(點火)하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웅장한 화포의 함성을 듣고 있는 신과 정광의 눈에서는 타오르는 승리를 향한 이글거리는 아지랑이만 볼 수 있었다.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 것인가? 칙쇼 (젠장.. 아~ x발)!!!!
왜구의 두목 격인 나까무라 쇼오지는 현 상황이 뭔가 예상을 벗어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맨 앞 선봉을 서고 있는 배 두척에 화포가 날아와 격침이 되는 모습을 본 쇼오지는
“ 흩어져라 모두 흩어져라!!!!~~” 노략질로 잔뼈가 굵었던 쇼오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떨림 보단 당황이 적적할 표현이지 싶다.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나까무라 쇼오지는 한 번도 육상에 도달하기 1000보 전에는 공격을 받은 적이 없어 상황은 당황 그 자체였다.
신(臣)이 태한 앞바다로 온 후로는 체계적인 장졸의 훈련과 진법이 적용되었으며 최북단 함경도 조산보 만호, 녹둔도 둔전관 시절 야인여진과의 실전경험은 최남단 전라도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었다. 이에 전라좌수사 총책임자 이성은 모든 전투의 지휘를 사실상 실전경험이 풍부한 신(臣)에게 일임을 한 상태였다.
“ 이런 쓰레기 같은 조선 놈들 내 다음에는 가만 두지 않을 것이야 빠가야로~~~ 칙쇼~~~ ”
“ 퇴각하라~~~~ 퇴각하라~~” 쇼오지의 퇴각 명령이 떨어지며 스무 척의 배가 배를 돌리려 할 때...
사방에서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원형진으로 진을 친 판옥선 들이 서서히 원을 그리며 좁혀 오고 있었다..... 순간 옅은 안개가 겉이며 이백보 사거리에 접근한 판옥선에서 화포의 불씨가 전달되며
“ 발포하라 발포하라 발포하라~~~ ” 발포의 령을 내리는 이는 당시 맹장이었던 송립(宋立)이었다...
“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해치워라~~~~ 한놈이라도 남긴다면 너희들이 옥고를 치를 것이다~~~~ 모두 해치워라 모두~~~”
송장군 송립은 삼국지의 장비와 유사한 인물로 거칠 것 없는 행동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맹장 중에 맹장이었다.
“ 쿵쿠아아아아앙~~~~~ 쿵쿠아아아아아아앙~~~”
이백보 근거리에서 발포되는 천자총통 화포의 위력은 세키부네라 불리는 왜구의 왜선을 초토화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폭약의 매캐한 황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전사한 왜구의 시신이 태안 앞바다에 둥둥 떠 있었으며... 시체에서 품어져 나오는 검 붉은 피는 파란 바닷빛깔을 옅은 주황색으로 변하게 하고 있었다....
“이게 무시기 소리야!!!~~~ 퇴각하라 퇴각하라” 연신 퇴각을 알리는 나까무라 쇼오지의 함선 앞으로...
왜선 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조선의 판옥선이 서서히 물안개를 걷어내며 백보 구십보 앞에 다가왔을 때....
“ 쒱 ~~~” 소리와 함께 “ 궁수(弓手) 조준~~~ 발사하라~~~!!!” 순간 하늘에서 비가 퍼붓듯 화살이 왜선으로 향하였다.....
그나마 화포를 피해 목숨을 보전했던 왜구들은 기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숨 쉴틈을 주지 않는 조선의 수군을 지금까지 본 일이 없었으므로 왜구는 오줌을 지릴 때로 지리고 있었다..
“ 한 놈도 남겨 두지 말라~~~~ ” 송장군의 기세에 꼼짝없이 당하고 있는 왜구는 뱃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했으마 대부분의 왜구는 태안의 앞바다에 수장이 되는 꼴이 되었다... 일부 대장선에 목숨을 부지한 왜구는 판옥선으로 옮겨 포로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
“ 으으으~~~~~ 나를 죽이시오~~~ 어서 죽여 달란 말이오!!!!” 포획되어 끌려오는 포로들 중 유독 소리를 지르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왜구의 두목인 나까무라 쇼오지였다..
“ 입 다물거라!!!! 그렇게 죽고 싶으면 전시에 명(命)을 다하지 이제 와서 포로가 된 상태에서 죽는다 말을 하느냐!!!!!” 하며 혀를 차는 송장군은 쇼이치를 향해 ‘ 니가 두목이냐?’ 속엣말을 하며 두목인 쇼이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장군!!! 태한 앞바다의 금일 전투 상황은 아래와 같습니다” 하며 태한 만호 정장군의 설명이 이어졌다
“태한 앞바다의 전과는
왜선 19척 수장, 3척은 전리품으로,
전사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보여 족히 이백여명은 될 것으로 보였고
포로는 두목인 쇼이치를 비롯해 대장선에서 포로로 인계되는 인원이 열두 명입니다... 장군~~~“ 정장군의 상황 보고는 짧고 간결했다.
“ 태한 만호 정장군 잘 알겠소~~~ 이 상황을 전라좌수사께 보고드릴 것이니 전투에 참여한 장졸들에게 휴식을 명하시고... 저녁에는 승리의 홍주(紅酒)를 막사 별로 한잔씩 돌리시게~~~
“ 예 잘 알겠습니다. 장군 분부 거행하겠나이다 장군~~~”
태한 만호 정찬은 속전속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한 대로 전술을 진행한 이장군 신에게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라면’을 다짐하였다.
“ 나으리 왜 오늘은 지는 노을을 보시지 않는 것인지요?”
근거리에 신을 보좌하는 경과 금은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붉은 노을에 대해 항상 이야기하는 신에게 오늘은 의아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 이미... 검 붉은 노을은 오늘은 많이 보았구나~~... 어서 들어가자꾸나~~~” 신은 오늘 전투에서도 큰 전과를 올렸지만 전장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오직 차가운 얼음처럼 행동을 했지만... 전장이 끝난 후 일상의 신은 그 살육의 붉은빛과 죽음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 경아!!! 금아!!! 오늘은 태한 앞바다에 고사상을 마련하거라.... 오늘 해시에 제를 지내야 되겠다~~~~”
“오늘은 왜 이리 마음이 심란한 지~~~~~ 이럴 땐 함경도의 월향이 가 생각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