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싫지만,

두 번째. 변화의 시작

by 달빛여우


빈 집을 지키며 ‘가족’을 생각했다던 남편의 고백은, 날 적잖이 당황시켰다.


남편의 눈빛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느낀 건 맞지만, 나와 아이들이 스페인에 다녀온 기간은 고작 40일이었다.


십 년을 넘게 살면서도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남편이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였으나,
아이들을 바라보며 굳건히 살라던 엄마였다.


힘든 순간들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버틴 시간들.


그저 아이들이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 결혼을 유지하는 단 하나의 이유였는데.


남편과 내 사이에 존재하는 단단한 벽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40일간의 여정이 이토록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이야.


그 시간의 끝에서 나는 쓰러져가던 몸을 일으켰고, 남편은 '가족의 의미'를 깨달았다.


남편이 그토록 싫다던 한옥을 받아들인 것은, 단순한 '집'으로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이해'를 담았다는 것도.


그에겐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 성장할 시간을 받아들이겠다는 '굳은 결심'인 셈이었다.


그렇게 떠난 괌으로의 여행은 그 변화의 시작이었다.


아빠와 함께 파도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남편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걸었다.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우리는 '각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평범한 일상도, '함께'라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


남편의 작은 용기는 나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이제야 진짜 결혼 생활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 잡았던 '엄마의 자리'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남편'으로 채워질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마저 들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잠든 사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빠, 엄마가 없는 세상에 남겨질 딸을 위해


어디 한 구석, 의지할 곳을 마련해 달라는 엄마의 기도가 이루어진 건 아닐까?


서른일곱이나 되어서도, 엄마에겐 여전히 '철부지 어린애'였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