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시작하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이 집에 들어와 산 지 십 년이 되었다.
그 시간이 고스란히 이 집 벽면에 스며들었다.
처음 문턱을 넘을 때의 설렘은 마룻바닥 틈새에 먼지가 되었다.
그 틈새마다 엄마의, 그 너머 외할아버지의 잔소리가 묻어 있다.
이곳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상처를 치유받았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러면서 한옥의 낡은 나무 기둥에도 익숙해졌다.
창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 마당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까지.
모든 것이 내 몸의 일부가 되고,
우리의 손때가 묻은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었다.
그래서였다.
"요즘에 누가 한옥에 살고 싶어 하냐?"
라는 남편의 말이, 가슴을 할퀸 것은.
단순한 공간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함께 쌓은 시간과 감정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모든 것이 내게만 소중하다는 듯 내뱉는 말이, 얼마나 아프던지.
그 안에 담긴 추억이 내게만 가치가 있다는 것 같아 서운함과 분노를 동시에 일으켰다.
하지만,
십 년은 긴 시간이다.
예민한 남편으로서는 그동안 참 많이도 참아온 셈이다.
처음엔 섭섭했지만,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였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남편이 그랬듯, 이제 내가 물러서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래… 이제 가자. '
주문처럼 곱씹으며 부동산을 찾았다.
그랬는데,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뒤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집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이 깊게 스며든 공간이다.
모두의 삶이 층층이 쌓인 역사가 여전히 생생했다.
남편은 이 집을 떠나며 평안을 찾을 테지만, 내게는 그 모든 추억과의 이별이었다.
그가 소리에 민감한 것은 이해하지만, 이 공간이 주는 위안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낡은 벽지와 긁힌 마룻바닥.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놀던 봄날부터 어린 시절의 나와 내 가족들이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까지.
이제는 그 품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여야 할 때임을 알면서도, 떠나보내기 아쉬워 잠을 설치던 어느 날이었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이 집과 함께한 시간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기 위해.
아직도 어딘가에 의지하고픈 '어린 나'를 놓아주고
나아가, 질긴 미련을 떨치기 위해
기록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