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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l 24. 2024

떨림의 전이, 설렘의 긴장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6화

'맛있는 냄새'

어느새 가벼워진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는 둘렀던 앞치마를 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것인지 나를 보피식 웃었다.

"잘 잤어?"

", 나 얼마나 잠든 거야?"

"6시간"

나는 화들짝 놀라며 밖을 바라보았다. 꺼질 생각 없는 해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신은 은 웃음소리를 냈다.

"농담이야, 마침 요리가 다 된 참이었어."

테이블에는 접시에 이쁘게 담긴 오일 파스타가 놓여 있었다.


해산물 특유의 신선한 향이 났다. 포크로 파스타 면을 말고 있을 때도, 그대로 입에 넣었을 때도, 매신은 그저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부담스럽다기 보단 어떤 반응이 그를 기쁘게 할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시선이었다.

"어때, 입맛에 맞는 것 같아?"

"엄청 맛있어. 고마워."

그가 만들어준 파스타에는 마늘과 새우도 곁들어 있었다. 나는 새우를 포크로 찌르며 물었다.

"이것도 목걸이에서 꺼낸 거야?"

"응, 바다에서 육지로 건너오면서 뭐가 필요할지 몰라 이것저것 왔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은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무한으로 담을 수 있는 건가?"

"쉽게도 최대 10킬로까지야."


매신은 볼에 오일을 묻힌 지도 모른 채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그도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너는 왜 육지 음식 중에 오일 파스타를 제일 좋아해?"

매신은 물로 목을 적시고 대답했다.

"바다에서 파스타 만들면 먹기도 전에 다 불어 버리거든. 마치 퉁퉁하게 부은 우동면처럼 말이야. 여기서는 꼬들한 상태로 먹을 수 있어 좋아."

"그렇구나."

나는 휴지로 그의 볼을 닦아주었다. 그는 흠칫 놀라는 듯했지만 이내 눈을 감고 볼을 마저 내어주었다. 이미 잘 닦여졌는데도 괜히 한번 더 그의 볼을 쓸었다.




나는 두둑이 나온 배를 쓸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달 조각을 찾으려면 숙소도 계속 옮겨야겠네."

매신은 빈 그릇을 포개 쌓았다.

"그 생각을 못했네. 아무래도 나 혼자 가야겠어."

나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래도 숙소는 계속 옮길 생각이었고, 마침 할 게 없다고 말했었잖아."

"정말 괜찮겠어? 어쩌면 가는 길에 숙소가 없을지도 몰라."

그에게 건네려는 접시를 순간 놓칠 뻔했다.

"문제없어. 원래 그런 게 진짜 여행이잖아."

"숙소를 같이 써야 할 수고 있고... 아무래도 나는 남자고 너는 여자라 불편한 상황이 생길 거야."

"괜찮대도!"

나는 서둘러 방에 들어가며 소리쳤다.

"그럼 옷 갈아입고 올게! 짐도 싸야 되니까 잠시만 기다려줘."


'익- 쿵'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문을 닫는 소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가 되어 얼굴에 떨림을 전이시켰다. 그가 말한 불편한 상황은 무엇일까, 지금 느껴지는 떨림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방문을 나서는 순간 그와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제 처음 본 남자 아니, 15년 전 나에게 마법을 보여줬던 남자와 떠나는 여행이다. 심장 뜀박질은 가속이 붙어 더욱 세게 울려댔다. 이성과 떠나는 여행이라, 매신과 떠나는 여행이라, 좋아하는 사람과의 여행이라,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그중 어떤 것이 답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그저 계속 뛰댔다.



 

"2인 자전거를 아예 사버리는  어때? 가격도 만하면 괜찮은 것 같아."

나는 자전거 가격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매신은 은 목걸이에서 현금을 꺼냈다. 일렁는 바다거품은 아무리 봐도 적응되지 않았다.

"지. 여기서 쓰는 돈은 전부 내가 내게 해줘. 어차피 바다로 가면 육지 돈은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카드는 없는 거 아냐?"

매신은 순간 움찔거렸다.

"맞아…"

"하하, 현금이 안 되는 곳은 내가 낼게. 자전거 고마워."


우리는 노란색 베이스에 갈색 디자인이 더해진 자전거를 구매했다. 매신이 흘려버린 귤나무 같은 색이었다.

내 짐은 모두 매신의 은 목걸이에 저장해 두었다. 손이 비어 편해지긴 했지만, 이제 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해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자전거 뒷좌석 안장을 두드리며 말했다.

", 제 정말 시작이야."

" 부탁해."

매신이 뒷좌석에 타자 자전거가 곧바로 휘청거렸다. 당황하는 등 뒤로 매신은 웃으며 물었다.

"괜찮겠어?"

"그, 그럼!"


나는 페달을 밟았다. 핑킹가위가 남기고 간 절취선따라 바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곧바로 감이 잡힌 건지 일직선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주먹 정도되는 돌멩이를 밟다. 덜컹거리는 자전거를 따라 매신은 내 허리 움켜 잡았다.

"꽉 잡아도 돼."

그가 고개를 끄덕임에 따라 목에 그의 머릿결이 느껴졌다. 여전히 시원한 감촉이었다.

매신은 커다란 팔로 내 허리를 감다. 예상 이상으로 묵직한 그의 팔, 등으로 느껴지는 그의 가슴팍은 나를 긴장시켰다. 앞을 보고 있어 다행이지, 머리칼이 귀를 덮고 있어 다행이지, 하며 상기된 얼굴을 바람에 씻었다.


6월의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의 바닷길을 지나자니 그림으로만 그렸던 행복이 볼을 스치는 것 같았다. 매신으로 인해 여전히 긴장되는 지금이지만,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 목적지 없이 영원히 이어질 바닷길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매신으로 인해 더 그러고 싶은, 어쩌면 지금 느껴지는 떨림이 좋아 더 그러고 싶은 순간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다.

'좋다-'


목적에 도착했다. 밤에는 근사한 조명이 켜지는 정원이었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달 조각을 찾고자 했다. 앞으로 4시간이었다. 그러나 한참을 들쑤셔도 달 조각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니었나?"

그는 허리에 손을 얹고 숨을 헐떡였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해는 이미 하늘과 육지의 경계선에 머물고 있었고 나뭇잎 위로 주황색 나비가 내려앉고 있었다. 매신은 물을 건네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도와줘서 고마워."

우리는 그대로 풀 밭에 누웠다. 하늘을 보며 해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는 달에게 쫓기기라도 했던 것처럼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어디엔가 숨어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푼 상현달이었다. 지쳤우리는 그 자리에 말없이 잠들었다.




"소라, 이것 좀 봐!"

나를 깨우는 매신의 소리에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세상에-"

눈앞으로 수많은 달 조각이 떠 있었다. 아니, 공원을 가득 매운 조명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조명은 지상의 별이 된 것이었다.   

"우리 구경하지 않을래?"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지상의 별은 무리를 지어 거대한 공룡을, 활짝 핀 장미를, 보석 박힌 반지를 들어 냈다. 해가 지면 나무와 풀은 검정보다도 더한 암흑이 되지만 조명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낮보다도 생기가 도는 또 다른 생명체가 되어 있었다. 매은 사각형 조명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16년 전에도 이 장면을 봤던 것 같아. 너무 아름다워."


그때 유독 빛나는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지?'

반짝이면서도 날카로워 보이는 조명은 낚싯대 바늘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조명을 만지려 하자 조명은 스스로 손으로 내려와 앉았다. 그러고는 연약한 노란빛만 남기고 조명을 껐다.

"매신, 찾은 것 같아!"

"정말이야, 이건 초승달이야."

밝았을 때보다 어두울 때 달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은 밤에 빛나기 때문이다. 우린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어둠이 깔려야, 눈이 가려져야 보이는 것도 다.

"그때도 밤에 찾았던 것 같아. 낮에 돌아다녔던 건 완전 헛수고였네. 미안해..."

"아니야, 덕분에 정원의 모든 생기를 볼 수 있었잖아. 지금처럼 찾았을 때 더 기분 좋고 말이야."

나는 초승달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로서 한 개 찾았네."

매신의 손에 닿은 초승달은 그의 은 목걸이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비었던 그의 목걸 초승달이 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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