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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l 29. 2024

달 목걸이 속 작은 우주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7화

[D-61]


"달조각은 예비 교류자, 정식 교류자에게만 보여져. 그런데 소라는 어떻게 초승달을  수 있었던 거지?"

매신은 고개를 기울이며 은 목걸이에서 빛나고 있는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소라가 나를 보는 이유와 같은 걸..."

나도 그를 따라 고개를 기울이며 목걸이를 쳐다보았다. 오른쪽으로 둥글게 휘어있는 초승달은 금보다도 우아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어? 오늘은 어디로 가면 돼?"

"아차, 말을 안 했었네. 달조각은 일정한 텀을 두고 찾을 수 있어."

"텀?"


"응. 달의 공전 주기는 27일 7시간, 삭망 주기는 29일 12시간이야. 우리는 망, 그러니까 보름달을 기준으로 한 조각을 찾으면 5일 후에야 다음 조각을 목걸이에 넣을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모아둔 달조각이 다시 깨져버리거든. 달조각이 들어가는 은 목걸이는 작은 우주라서 각 조각들이 충분히 떠오를 시간을 줘야 해. 애초에 5일이 지나야 다음 조각을 찾을 수 있기도 하고."

"삭망 주기인 29일은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삭으로 나눠 한 조각당 5일인 거구나."

"정확해."


매신은 고개를 사선으로 내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 말하는 걸 깜빡했어."

"하하, 아니야. 그래서 오랜 여행이 될 것 같다 말한 거구나."

"맞아…"

"괜찮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거잖아."

나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전 10시, 연한 하늘을 배경으로 파스텔 같은 구름이 번져 있었다.

"음, 그럼 텀이 돌아오기 전까지 좀 놀아볼까?"

매신은 옆에 앉으며 물었다.

"하고 싶은 거 있어?"

나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근처 마트를 검색하려 핸드폰을 들었다.

"이런..."

언젠가 그를 피해 도망쳤던 비 오는 날핸드폰이 물에 잠겼던 모양이다. 기껏해야 후레시를 켜거나 시간을 확인하는 정도만 가능했다. 매신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혹시 나 때문에 고장 난 거야?"

"아니야, 그냥 비가 잔뜩 들어가서 그런 것 같아. 너는 당연히 없겠지?"

"핸드폰은 없지만, 육지에서 사용하는 수신기는 있어. 내비게이션 같은 거야."

"근처에 마트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있어?"

매신은 은 목걸이에 손을 넣었다. 일렁였던 바다거품이 사라지고 그의 오른손에 하늘색 유리구슬이 보였다. 크기는 매신의 손 절반정도였다

"건물 한 개만 지나면 대형 마트가 있어."

내 눈으론 그저 하늘색 유리구슬이었지만 매신은 뭔가를 향해 자세히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바비큐 파티를 하고 싶었다고?"

나는 카트를 잡아 빼며 대답했다.

"응, 한 번도 해본 적 없거든. 알다시피 나 친구 없잖아."

제법 무거운 카트는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진했다.

"내가 할게."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에 카키색 슬랙스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얀 머리칼은 여전히 기분 좋게 나풀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카트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하하, 카트가 혼자 끌리는 걸 보면 사람들이 놀랄 거야."

"그럼-"


매신은 몸을 틀어 뒤로 바짝 기댔다. 그러고는 내 양손 옆으로 손을 얹었다. 간접 백허그가 이런 걸까? 몇 걸음 가지 않아 그의 가슴팍이 뒤통수에 스쳤다. 동시에 등 뒤로 그의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매신은 급히 몸을 떼며 말했다.

"미, 미안해. 이렇게 가까울 줄은 몰랐어. 옆에서 잡을게."

매신은 몸을 돌려 카트의 오른쪽 손잡이를 잡았다. 마트의 밝은 전등은 그의 상기된 얼굴을 자세히 드러나게 했다. 양 볼 옆으로 귓등까지 붉어져 있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카트를 끌었다. 그도, 나도, 자신의 타오르는 얼굴이 다시 식어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내 오른손에 그의 손이 여전히 스칠 뿐이었다.


베이커리 코너 옆으로 핑크빛 조명을 쐬고 있는 고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떤 종류를 좋아해?"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가까운 거리. 카트를 나란히 끌며 장을 보는 모습이 꼭 신혼부부 같았다. 자칫 다시 볼이 상기될 뻔했다.

"음, 골고루 담아갈까?"

우리는 고기를 담고 카트를 돌렸다. 그때 앞으로 주류 코너가 보였다. 그와 내가 함께 술을 마신다면 어떨까, 찰나의 상상은 어느샌가 몽롱한 공기를 끌고 와 취기를 돌게 만들었다.

"술도 마실까?"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긴장감이 풀어진 채 그와 나눌 진솔한 대화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것 같았다. 나는 소주와 복분자주를 한 개씩 담았다. 그렇게 남은 장을 모두 마치고 마트를 나왔다.

"생각보다 많이 샀네. 숙소에 짐 먼저 둬야겠다."


이번에도 이동수단은 2인용 자전거였다. 숙소까지 거리는 15분, 짐은 그의 목걸이에 저장해 두었다. 나는 자전거를 앞 좌석에 타고 페달을 밟았다. 그를 태운 2인용 자전거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실력이 어제보다 좋아진 듯했다. 적어도 전봇대를 박을 일은 없어 보였다. 매신은 뒤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스치는 바람소리가 제법 요란 귀에 가까이 대고 했다. 그의 입가에서 삐죽 나온 깃털이 귓속 솜털을 간지럽혀 재채기할 뻔했지만 다행히 다시 스치는 바람에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허리를 감싼 그의 팔뚝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아 볼은 아무런 저항 없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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