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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l 30. 2024

방 하나 남았는데 괜찮으시죠?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8화

"방 하나 남았는데 괜찮으시죠?"

당연히 핸드폰이 고장난지라 사전 예약은 불가능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방이 한 개만 남아 있다니. 펜션이긴 했지만 넓은 거실에 작은 방 하나 딸려있는 게 다였다. 다른 숙소는 여기서 40분. 무더운 날씨에 우리들의 체력은 이미 방전이었다. 애초에 다른 숙소는 방이 여러 개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어, 어쩌지?'

매신도 꽤나 당황한 듯했다. 나는 매신의 소매를 당기며 말했다.

"다른 숙소 상황을 확인할 수도 없으니까 그냥 여기로 할까?"

그는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작게 끄덕였다.

"좋, 좋아."


우리는 예약을 마치고 펜션으로 들어가 짐을 정리했다. 냉장고가 가득 채워지는 동안 매신과 나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에도 떨림이 묻어 나올 것 같아서였다. 손을 헹구고 집 이곳저곳을 살폈다. 적당히 트인 거실 가운데엔 좌식 테이블이 있었고 뒤로는 기댈 수 있는 연갈색 소파가 있었다. 방에는 푹신해 보이는 침대, 두툼한 핑크색 이불, 그리고 서랍 위 주황 등 스탠드가 보였다. 언젠가 침대에 기대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밖으로는 객실마다 딸려있는 바큐장이 있었다. 작은 테이블과 숯불판정도만 구성되어 있긴 했지만 늑한 감이 들어 좋았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려 몸을 돌렸을 때 매신어깨에 부딪혔다.

"괘, 괜찮아?"

"응. 너는?"

말을 버벅거리는 그와 이마를 문지르는 나, 우리는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동안 얼어있던 분위기가 깨진 듯했다. 나는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도 좋은데 바다라도 보러 갈까? 아직 3시밖에 안 되기도 했고."

"그러자."

나를 따라 몸을 돌린 그의 목걸이가 윤슬처럼 반짝였다. 달에 물이 맺히면 이리 빛 날까, 우리는 함께 문턱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여기가 한담해변이래."

매신은 유리구슬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는 그의 옆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파도는 암석에 닿아 철썩였고 잔잔해진 파도는 모래에 닿아 사그라졌다. 이글거리는 햇빛은 차가운 바다의 표면에 흡수되어 갈치 때처럼 수영하고 있었다. 속눈썹 사이로 바다결을 타고 비행했을 바람이 시원하게 다.

"이쁘다."

잠겨 있는 암석을 훤히 비춰 보이는 바다는 너무나 투명해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우리는 암석에 앉아 바다에 잠긴 발을 바라보았다. 바다의 춤을 따라 모래가 발을 감췄다 보이기를 반복했다. 페달을 밟느라 고생한 발이 포상받는 기분이었다.

"궁금하다. 바다의 세계가."

여전히 바다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진 않았지만 바닷속 그들만의 도시와 문화가 궁금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바다로 초대할게."

함께 앉은 암석이 좁았던 탓이었을 까, 내 오른손과 그의 왼손이 닿았다. 때마침 철석이는 파도가 내 마음에 전이되어 심장도 강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장 소리가 모든 소리를 이기려 할 때 나는 서둘러 생각나는 아무 물풍선이나 잡고 그에게 물었다.

"바다사람은 원래 피부가 좀 까만 편이야?"

그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하하, 아니."


나는 손을 허벅지 위로 올렸다.

"바다사람은 원래 엄청 하예. 그래서 햇빛에 약하고 그만큼 더 잘 타지. 나는 육지나온 지 꽤 돼서 보기 좋게 타버린 거야. 우리는 선크림을 발라도 소용없거든."

"그렇구나."

"물론 바다 사람은 바다에 조금에라도 신체가 닿아있으면 타지 않아. 그래서 한 여름에도 햇빛 아래 수영을 즐길 수 있어."

매신이 물에 잠겨 수영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햇빛에 비쳤을 때가 아닌, 바다에 잠겼을 때 찰랑거릴 하얀 머리칼, 솜털까지 젖어버린 하얀 피부, 동시에 푸른 눈동자에 담길 바다 내면의  궁금했다.

"우리 언젠가 같이 수영할까?"

변태적인 호기심이 전제긴 했지만 그와 함께 수영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내 마음을 모르는 매신은 그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바다의 세계로 초대하는 그날, 같이 수영하자."

나도 그를 보며 따라 웃었다.

"꼭이야."


어느새 바다는 본연의 색을 잊은 채 주황빛 노을에 잡아 먹히고 있었다.

"제주도가 왜 좋은지 알아?"

"왜?" 

"아무런 방해물 없이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거야."

그의 머리칼도 노을 지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아무런 방해물 없이 지는 또 다른 노을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네."

해가 지자 바다는 금세 차가워졌다. 바다의 표층과 하부심해층의 순서가 바뀐 듯 시렸다. 나는 발을 털고 일어났다.

"이제 바비큐 파티를 시작해 볼까?"

"하하, 좋아."




매신은 검은색 티에 재가 묻은지도 모른 채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날이 추워 설치된 바비큐 초록 텐트는 공중에 떠오른 집게가 스스로 고기를 뒤집는다는 뉴스가 보도되는 걸 막았다. 나는 그가 구운 고기를 접시에 옮기며 말했다.

"이블 세팅도 다됐어. 이제 먹어볼까?"

드디어 고대하던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었다. 은둔형 외톨이, 아니 처음부터 혼자가 편했던 나는 여태껏 매신 이외의 친구를 사귄 적이 없었다. 직장에서도 사회적 교류만 했을 뿐 내 사람이다 말할 이가 없었다. 원체 친구를 만들지 않는 성격인데 왜 매신과는 함께하고 싶었던 걸까, 누군가와 단둘이 술을 마시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그만 신이 나버린 나는 잔을 열심히 비워댔고 매신은 내 속도를 따라 마셔댔다. 그렇게 우리는 한 병을 비웠다.


매신의 얼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작 10분 만이긴 했지만 그래봤자 한 사람당 반 병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혹시 술 잘 못 마셔?"

매신은 입술로 새어버린 술을 손등으로 닦으며 끄덕였다.

"바다 술은 이렇게까지 세지 않으니까."

나는 그에게 물 잔을 건네며 말했다.

"미안해, 너무 빨리 마셔버렸네. 술이 오랜만이라..."

"아니야, 나도 마시고 싶었어."


나는 당근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육지에 온 지는 얼마나 된 거야?"

매신은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죽 피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음, 한 달 조금 안된 것 같아."

"혼자 온 거야?"

"응, 교류자는 혼자 다니는 게 규칙이거든."

"왜?"

"달 목걸이는 말했다시피 작은 우주라서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면 우주 충돌이 일어나. 그래서 육지에 있다가도 바다 교류자를 만나면 눈인사만 하고 직접 접촉하지는 않아. 물론 육지 교류자와는 만날 수 있어. 그들은 해 목걸이니까."

"우주 충돌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데?"

"별건 아니고, 최대 6시간 동안 목걸이 속에서 월진이 일어나. 그러면서 달이 모두 부서지지."

아무래도 바다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낯설기만 한 그들의 광활한 공간이 무서우면서도 궁금했다. 나는 전등에 대고 팔을 뻗었다.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은 전등은 금세 눈을 찡그리게 했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뭐 해?"

눈을 뜨자 펼친 손 앞에 매신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일어서 상체를 숙이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등 아래 투명하게 보이는 그의 머리칼 위로 가벼운 먼지들이 떠돌았다. 푸른 눈동자는 블랙홀이 되어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을 빨아 당길 것만 같았다.

"아, 아무것도 아냐. 아무래도 취했나 보다."

"거짓말."

"진짜거든!"

나는 서둘러 손을 내리고 당근을 하나 더 입에 넣었다. 매신은 웃어 보였다. 기분 좋은 웃음소리였다. 그의 웃음은 내게 번져 입가에 미소 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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