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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05. 2024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10화

어떻게 스스로 빛을 내는 걸까, 왜 낮이 아닌 밤에 빛을 내는 걸까. 나는 달 조각을 찾으면서도 아직 잊지 못한 반딧불이의 여운을 느끼며 그와 계속 걸었다. 그때 반딧불이 무리, 그러니까 육지사람이 말하는 도깨비불이 나타났다. 눈앞에 얼쩡거리던 2개의 도깨비불 양갈래로 달아났다. 운이 좋다면 두 개 중 하나의 도깨비불에서 달조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른쪽으로 갈게, 너는 왼쪽으로 가!"

나는 크게 외치고 빠르게 수풀을 헤쳐 갔다.

"조금만 더"

뻗은 손 끝으로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았다.

"으악!"

한참을 뛰어가다 앞으로 쭈욱 뻗은 발에 그만 위로 솟은 나무뿌리줄기가 엉겨버렸다. 나는 그대로 엎어져 온몸으로 흙을 쓸었다. 민망함보다 아픔이 먼저인 걸 보 분명 크게 넘어진 듯했다.


"아야-"

저려오는 몸을 간신히 뒤로 젖혀 나무에 기댔다. 도깨비불은 눈앞에서 흩어져 사라진 지 오래, 가운데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헛수고였.

"소라, 괜찮아?"

뒤에서 따라오던 매신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내 어깨를 잡고 몸을 살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노란색 바지 아래로 피가 맺혀 있었다. 상처를 확인하니 더 쓰린 것 같았다.

"왼쪽으로 가봤어? 도깨비불은 어떻게 됐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매신의 억양은 일정했다. 크게 소리치지 않아도 화났음을 알 수 있었다. 여태껏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그는 나를 등에 업고 안전한 장소가 나올 때까지 걸었다. 말 없는 우리, 매신의 발 풀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아까 미안."

"아니야, 내가 너무 막무가내로 달려가긴 했어."

매신은 흘러내린 엉덩이를 위로 추켜올려 다시 업었다. 내 몸무게가 얼마였던가, 잠시 생각하긴 했지만 제법 안정적인 그의 자세를 보고 안심했다.

"그래서 더 미안해. 나를 도와주려다 이렇게 다친 것 같아서..."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과는 이제 그만, 진짜 괜찮아."

진지한 상황과 맞지 앉게 가슴이 매신의 등에 닿고 스치기를 반복했다. 심장소리가 들키진 않을까, 마침 조용해진 공간은 더욱 설레게 만들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신은 묵묵히 걷기만 했다.


"어둡네."

인적이 드문 곳이다 보니 가로등이 없었다. 꽤나 멀리까지 달려든 탓에 인도까지 거리 있었다. 우리는 지금 반딧불이가 내어 주는 빛에 의지하며 걷는 것뿐이었다. 마침 핸드폰도 방전된 상황. 매신은 작은 빛에 의지하려 실눈 뜨고 유리구슬을 들여다봤다. 아마 인도까지의 경로를 보고 있는 거겠지.




10분쯤 걸었을 까, 유일한 가로등이었던 반딧불이가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쇼가 끝난 무대처럼 더는 배우도, 관람객도 존재하지 않았다. 빛이 사라지니 유리구슬도 비쳐지지 않았다. 매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런,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안개마저 자욱해 눈을 더욱 가려왔다.

"그러게. 이제 어쩌지..."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고개를 떨구려던 그때 도깨비불 한 개가 앞으로 다가왔다. 도깨비불은 가만히 멈춰 서더니 다시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 자리에서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따라오라는 신호 같았다.

"한번 따라가 볼까?"

"가보자!"

우리는 도깨비불을 따라 그대로 죽 걸어갔다.




"빛이다!"

서로 영겁게 붙어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한 줄기의 빛이 어왔다. 얼굴에 붙은 나뭇잎을 치우자 가로등이 가득한 평평한 길이 나왔다. 도깨비불은 우리를 인도로 안내해 준 것이었다.

"반딧불아, 고마워."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왜인지 도깨비불은 떠나지 않고 계속 앞을 맴돌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

도깨비불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도깨비불은 손바닥 위로 앉고 꼼지락 거리더니 이내 어디론가로 흩어졌다.


"달조각이야..."

빈 손바닥 위로 환한 상현달이 놓여 있었다. 매신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상해. 장난꾸러기 반딧불이가 먼저 달조각을 줄리 없는데…"

", 우리가 마음에 들었나 보지!"

나는 방긋 웃으며 상현달을 매신의 목걸리에 넣었다. 초승달이었던 얇은 달은 상현달이 되어 노란빛을 냈다. 이로서 두 번째 달조각을 찾은 것이다.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매신은 흘러내린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료부터 하자. 좋아하는 건 나중 일이야."


우리는 거대 물방울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앞으로 다시 5일간의 휴식. 그동안 푹 쉬어 두자, 생각하며 쓰 무릎을 만졌다. 손바닥과 팔꿈치에서도 피가 났지만 매신은 다행히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상처를 알게 되면 괜히 더 걱정할 까 그가 건넸던 외투로 서둘러 가렸다.                                             

"저녁으로 먹고 싶은 거 있어?"

매신의 질문, 함께 집으로 가는 우리. 이러고 있으니 꼭 부부가 된 것 같았다. 딱히 떠오르는 메뉴가 생각나지 않아 파스타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 말고, 소라가 먹고 싶은 거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나는 평소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먹을 것조차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뭘 좋아하는지 묻는 질문을 곤란해한다. 타인에게 맞춰주느라, 타인을 배려하느라,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야 좋은 사람이 되니까, 내가 원하는 걸 줄여야 상냥한 사람이 되니까. 생각의 텀이 길어지자 매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천천히 말해줘. 기다릴게."

기다린다는 말이 왜인지 위로가 되었다.




"곤란하네."

귓가로 매신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새 잠든 모양이었다. 요즘 툭하면 잠이 쏟아진다. 왜 이러는 걸까.

나는 눈을 비비며 매신을 바라보았다. 밖으로 거센 빗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전기가 다 떨어진 모양이야."

거대 물방울 차도 에너지가 필요한 듯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충전은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차를 다시 작게 만들어서 바다에 10분 정도 담가두면 돼. 수력에너지가 원료거든."

"10분이면 금방이네."

매신은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와. 나야 괜찮은데 네가 걱정돼서…"

"괜찮아, 암석에 앉아 있을게."

매신은 나에게 우산을 쥐어주며 말했다.

"금방 다녀올게."




5분이 지났을 까, 바람은 점점 거세게 불어왔다. 들고 있던 우산이 휘청거리기도 고 빗물이 상처로 튀어 따갑기도 했다.

"앞으로 5분만 더 기다리자."

나는 암석에 가만히 앉아 넘실대는 바다와 비에 대응하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싸움은 꽤나 볼 만했다. 하늘과 대지의 전투극, 중재 없이 이어지는 전투는 강렬하고 치열했다. 쏟아지는 비는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바다의 피부를 뚫었고 차가운 입김을 내뿜는 파도는 자신의 위로 떨어지는 빗물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그들의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에 입을 벌렸을 때 그만 파도도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왔다.

'철썩'

"아, 안돼!" 

관람료 없이 구경한 탓이었을 까, 도는 그만  쓸고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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