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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07. 2024

블루문이 뜨기까지 25일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12화

[D-35]


'맛있는 냄새'

눈을 떠보니 노란 이불이 덮어져 있었다. 두툼하지만 실크 재질인 이불은 피부 위로 바람을 얹은 듯한 기분을 줬다.

'여기 침실이네'

이번에는 매신이 나를 방으로 옮긴 모양이었다. 그가 이런 기분이었나, 하고 손등으로 볼을 감쌌다.

'나를 들어 안았다니...'

그새 얼굴이 뜨거워 지는 것 같았다.

문을 살짝 열고 틈 새로 매신을 바라보았다. 하늘색 셔츠 위로 갈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보글거리는 냄비 안으로 깨를 뿌렸다.

"일어났어?"

등에 눈이라도 달린 건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응."

나는 방문을 마저 열며 거실로 나왔다. 매신은 앞치마를 풀며 나를 보고 웃었다.

"의자에 앉아. 마침 다 됐어."


오늘의 아침은 야채 죽. 공복상태인 위를 달래기에 재격인 메뉴였다. 매신은 입김으로 죽을  내게 떠먹여 주었다. 분명 스스로 먹을 수 있었지만, 평상시라면 수줍어 피했겠지만 왜인지 죽은 상대방이 떠 먹여 주는 것까지가 완성인 것 같았다. 사실 그저 그의 정성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너무 맛있어!"

지구상에 이보다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천장이 덴 것 같지만 금세 삼켜내고 입을 벌렸다.

"하하,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매신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는 서로 흠칫 놀라긴 했지만 나는 머리를 슥 들이밀었다.

"또 쓰다듬어줘."

매신은 웃으며 큰 손으로 머리를 어주었다. 어제 그와 안아서 까,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포식한 나는 소파에 기대 배를 만졌다. 불룩한 것이 올챙이 배 같았다.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 같만 왜인지 여전히 상기되어 있는 얼굴 덕에 이 감기지 않았다.

'그냥 내 손으로 먹을 걸 그랬나...머리를 들이밀지 말걸 그랬나...'

콩닥거리는 심장이 하트 마크가 되어 볼에 새겨진 것 같았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매신 내게 물을 건네며 물었다.

"어디 안 좋아? 얼굴이 빨간 것 같아."

볼이 빨게진 건 매신 때문이 아니었나,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것 같았다.

"켁-켁-"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추운 동굴에서 20일 동안이나 잠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매신은 나를 들어 침대에 눕혔고 나는 그의 손이 떼지자 마자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D-25]


'맛있는 냄새'

또 그가 맛있는 요리를 하고 있는 걸까,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뽀얘져 있었다. 하루 만에 감기가 낫다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땡그랑-'

매신은 나를 보더니 들고 있던 국자를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소..소라..!"

그는 달려와 나를 꽉 안았다.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조금은 떨고 있는 그가 이상해 가만히 등을 토닥였다.

" 일 있었어?"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니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너가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걱정했어."

"심한 감기는 아니었어. 봐, 지금 이렇게 다 나았잖아."

매신은 나를 감싼 팔에 더 힘을 주고 안았다.

"그렇다고 열흘을 내리 잘 수는 없는데-"

나는 그때 그날처럼 그를 밀치며 소리쳤다.

"열, 열흘?"

"응…"

동굴에서 처럼 잠든 것이었다.

"그, 그럼 앞으로 블루문이 뜨기까지 얼마나 남은거지?"

"..."


세 번째 달조각을 찾고 열흘이 지났지만 매신은 내 옆을 죽 지키느라 달조각을 찾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둘러 거실에 걸려있던 달력을 확인했다.

블루문이 뜨기까지 25일, 남은 조각은 3개, 한 조각당 5일간의 간격.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또다시 긴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나는 매신의 목걸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음 가야 할 곳은 어디야?"

매신은 손으로 목걸이를 가리며 고개 저었다.

"나, 그냥 안 찾으려고."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달조각을 찾다가 너가 다치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잖아. 더 이상은 안돼. 애초에 훈장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그래도 이제 3조각만 더 찾으면 되잖아."


매신은 나를 소파에 앉혔다.

"아니야, 그냥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너랑 이렇게 시간 보내고 싶어."

아차, 가장 중요한 걸 물어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달 목걸이를 통해서만 육지로 나올 수 있다고, 실패하긴 했지만 이번 귤나무 씨 교류가 마지막 업무라고, 교류자의 달 목걸이는 바다의 별이 되어 훈장이 된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블루문이 뜬다면,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는 걸까?

"바다로 돌아가면 이제 못 봐?"

"응. 이번 블루문이 뜨는 날을 마지막으로 나는 육지로 다신 나올 수 없어."

"여행으로도 올 수 없는 거야?"

"바다와 육지의 세계가 충돌하는 걸 막기 위해 교류자만 왕래할 수 있어."


앞으로 25일.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25일이었다. 왜 진작 알아채지 못했을 까,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잠들어 날려버린 30일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드디어 내 친구, 내 사람을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니.

어찌 보면 매신의 말이 맞았다. 달조각을 찾는 것보다 서로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바라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뭐라도 매신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육지에서의 추억이 사라져도 선물을 보며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그게 별의 바다, 훈장이 되어 영원히 그의 곁을 맴돌길 바랐다.

"우리 달조각 찾으러 가자."

"싫어."

매신은 단호하게 고개 저었다. 상황이 반대였어도 나 역시 그와 같이 굴었을 것이다.

"무리하지 않을게. 응?"

나는 매신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안돼."


매신의 표정은 여전히 단호했다. 나는 얼굴을 들이댔다. 그때 소파를 잡고 있던 손이 미끄러져 그만 체중이 앞으로 쏠려 넘어지고 말았다.

''

물컵은 잡았지만 서로의 코 끝이 닿았다. 한 손은 물 잔을 잡느라, 한 손은 바닥을 짚느라 상체를 다시 뒤로 젖힐 여유가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는 내 어깨에 볼을 비비며 말했다.

"알겠어. 대신 천천히 찾는 거야. 절대 다쳐서는 안 돼. 그때는 정말 그만두는 거야."

"응! 응!"

옷 한 겹 두고 그의 체온이 느껴졌다. 하얀 머리칼이 목에 닿아 간질거렸다. 나았던 감기에 다시 걸려버릴 것 같았다. 입가로 피어 나매신의 입김. 물에 핀 벚꽃으로 이라도 닦은 걸까,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코 스쳤다.




우리는 거실에 엎드려 달조각 지도를 펼쳤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표시는 성산읍, 제주도 동쪽에 위치하는 지역이었다. 이번만큼은 달조각을 찾은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했다. 

문제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 남은 두 개의 달조각이었다. 이건 어떻게 찾아야 할까…

오래 잠도 잤겠다, 상쾌하겠다 우리는 바로 성산읍으로 출발했다. 물론 다치지 않게 천천히말이다.


"이번에도 밤에 찾을 수 있겠지?"

"내 기억으론 낮이었어. 높이 떠오른 두 개의 태양, 그 하나가 달조각이었거든. 너무 아름다워서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높이 떠오른 두 개의 태양이라'

나는 거대 물방울 차 창문 너머로 빠르게 스쳐가는 돌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달조각은 순서대로 출현되는 것 같아."

"맞아. 초승달이 갑자기 보름달이 될 수 없듯 달조각에도 순서가 있어. 작은 우주도 우주니까."

"그렇다면 다음 조각은 하현달 이겠구나."

"정확해."

하현달, 왼쪽 면이 부풀고 오른쪽 면은 꺼져있는 달 모양이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두 개의 태양 중 하나는 조금 찌그러져 있을 것이다. 그걸로 알아보면 되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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