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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13. 2024

물망초의 꽃말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14화

[D-23]


의 뒷면 같았던 그의 목걸이는 어느새 노란빛으로 윤을 내고 있었다.

"오늘 뭐 할까?"

다시 찾아온 5일간의 휴식, 그리고 그와 함께 보 23일. 어린 시절 매신과 함께한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우중충한 날엔 개울가에 길을 건너는 개구리를 구경했고 누구의 바람개비가 더 잘 돌아가는지 시합하기도 했다. 비 오는 날엔 엎드려 쪽지를 주고받고 차 후드에 올라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햇살 좋은 날엔 활짝 핀 수국을 보러 갔고 바다 길을 따라 걷다 모래성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비 오지 않는 날엔 부모님과 죽 함께 있어 길어봤자 30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은 햇살 좋은 날, 그때 그날처럼 수국을 보고 싶었다.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간직해 온 마법의 순간을 한번 더 그와 누리고 싶었다.

" 보러 갈까?"

매신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좋지."




하루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몰래 들어가 하드바를 물고 그네를 타기도 고, 하루는 거실에 엎드려 못다 한 이야기를 서로의 쪽지에 적기도 고, 하루는 넓게 트인 공원에서 달리기 시합을 기도 했다. 남들에겐 평범 하루  영원 기억될 꽃을 어주었다. 어쩌면 15년 전, 와 함께 본 수국은 지금 우리에게 피워질 꽃의 단편이 아니었을 까.


"바다와 육지는 서로 교류한다고 했잖아. 예시로 뭐가 있어?"

"수박 알지?"

"하하, 모르는 사람이 어딨 어."

"원래 수박의 시작은 멜론이었어. 어느 날엔가 바다교류자 육지에서 멜론씨를 가져왔고, 그걸 바다에서 기르면서 수박이 된 거야. 스펠링 그대로 melon watermelon 된 거지."

"물 먹은 멜론, 그러니까 바다를 먹은 멜론이구나."

"맞아."

"신기하다."

"오늘 수박 먹을까?"

". 씨 멀리 뱉기 시합하자."




[D-18]


'쏴아-'

우리는 다섯 번째 조각을 찾기 위해 우비를 입었다. 우산을 쓰는 것 대신 굳이 우비를 입자고 투덜 것은 언젠가 차 후드 위에서 맞았던 비를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비는 아프지 않을 정도로 피부를 두드렸다. 슬리퍼 사이로 발가락이 삐죽 튀어나왔지만, 비에 젖은 흙이 발가락 사이를 까슬거리게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남은 두 조각은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하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

언제부턴가 매신과 나는 숙소를 나누지 않고 함께 잠들었다. 물론 방은 따로 사용했지만 우리 사이에 놓인 거실은 서로의 무의식을 연결했다. 그와 나의 우비 속에 같은 향이 맴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수국이야!"

갈색 벤치 옆으로 수국 여러 송이가 하늘을 향해 꽃잎을 활짝 들어내고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유지된 더위에 물이 고팠는지 떨어지는 빗물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은 목걸이에서 일렁이던 바다 거품을 떠오르게 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수국은 토도독거리며 보글댔다. 우리는 들 옆에 앉았다. 그렇게 또하나의 수국이 되어 몸 위로 바다거품을 만들었다. 

매신은 가만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무슨 꽃을 제일 좋아해?"

"물망초"

"왜?"

"그냥, 이쁘잖아."


매신은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물망초 보러 가자."

"뭐?"

물망초는 사진으로만 었다. 직접 본 적도 없을뿐더러 찾으려 굳이 노력하지도 않았다.

"내가 보고 싶어서 그래. 마침 필 시기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달조각은?"

"물망초에 달조각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는 피식 웃으며 매신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어디 있을지 모르는 물망초를 찾기 위해 수국의 옆자리를 비웠다.

얼떨결에 잡은 손이긴 했지만 여전히 놓아주지 않는 그. 그와 닿은 살 사이로 빗물이 새어 들어와 간지러웠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그대로 심장으로 겨졌다.




"기 물망초가 있어!"

5개의 보라색 화관으로 나눠져 있는 물망초는 떨어지는 빗물에도 꺾이지 않고 올곧게 위로 뻗쳐 있었다. 얇은 줄기 탓에 가끔 옆으로 휘긴 했지만 금세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쁘다."

매신은 물초에 얹은 빗물을 쓸며 말했다.

"물망초의 꽃말이 뭔지 알아?"

우연히 본 사진 속 물망초가 이뻐 기억했던 나는 당연히 꽃말은 알지 못했다. 대답이 늦어지자 그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나를 잊지 마세요"

매신은 다시 물망초로 시선을 옮겼다.

"물망초에는 독일에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어. 꽃말의 시작이기도 하지."

"어떤 이야기야?"

우비 모자 끝에 걸린 빗방울 매 앞머리를 살짝씩 적댔다.

"청년 섬에서 자라는 물망초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기 위해 섬까지 헤엄갔대. 가는 길이 험난하긴 했지만 다행히 그토록 고대하던 물망초를 얻어냈지. 그런데 그만 다시 돌아오 길에 급류를 만나버린 거야. 여인은 청년을 보며 그저 눈물 흘릴 뿐이었어. 청년은 결국 죽기 직전에 여인에게 물망초를 던지면서 말했대.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매신은 손으로 쓸던 물망초 꺾어 나에게 건넸다.

"나를 잊지 마세요."

나는 가만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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