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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Aug 06. 2024

20일간 잠들어 버렸다

[달조각을 모으는 남자] 11화

[D-36]


'똑-똑-'

이마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눈이 떠졌다.

'여기는 어디지?'

내 몸은 완전히 젖어 있었다. 그러나 여름이어서 그런 걸까, 신기하게도 춥진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공간을 가득 매운 돌,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깜깜한 암흑, 그리고 발에서 느껴지는 질척임. 여기는 분명 동굴이었다. 소용없단 걸 알면서도 괜히 주머니를 더듬었다. 핸드폰은 더 쓸모없게도 파도에 떠내려 간 모양이었다. 즉, 나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매신에게 연락할 수도,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정신 차리자.'

차가운 벽을 짚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라?'

손바닥과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지 있었다. 손으로 피부를 만져보니 그새 말끔해져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이번엔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꿈치를 만져보았다. 역시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여기에 얼마나 있었던 거지?'

정신을 잃었다 해도 쓸렸던 피부가 재생할 정도로 오래 잠들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열흘은 잠들었던 것처럼 상쾌한 컨디션. 날짜를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 마당에 부상이 없는 것은 다행이었다.

'우선 나가는 거에 집중하자.'

나는 다시 벽을 짚고 앞으로 걸어갔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 알 수 없다. 밖으로 나가는 길 또한 알 수 없다. 수없이 걸었을 발걸음이 출구를 향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다리가 떨리고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눈물이 볼을 쓸었을 때 한줄기 빛이 암흑 사이로 쭈욱 뻗어졌다. 매신이 나를 등에이고 빛을 발견했을 때와는 다른 감격이었다.


흐르던 눈물은 다른 의미로 마저 고여 가슴팍에 떨어졌다.

'드디어 밖이다.'

발 밑에 차가운 돌이 아닌 따뜻한 흙이 느껴졌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바다는 무대 위 푸른 스크린 같았다.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감정을 흘려보내니 이성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발로 느껴지는 마른 모래의 감촉. 분명 파도에 휩쓸려 온 그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바짝 마른 모래였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아아-집으로 가야 하는데-'

정신의 긴장마저 풀어진 걸까, 나는 그 자리에 엎어 잠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심연의 바다가 되어 있었다. 검은 바다 위로 구름이라는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암석에 몸에 기댔다. 지친 와중에도 바다가 아름다워, 가만히 앉아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다가 일렁일 때마다 위로 춤추는 별이 이뻤다. 단순히 하늘의 별을 반사시키는 게 아니라 바다결 안으로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이 바다에 심은 ‘바다의 별’이었다. 그때 유독 커다란 바다의 별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뭐지?"

유독 커다란 바다의 별이 하늘의 어떠한 것도 반사하지 않은 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동그란 달조각, 보름달이었다. 나는 일어서 떠오른 보름달에 다가갔다. 바다에 가까워지자 보름달이 손 위로 내려왔다. 꽉 채워진 보름달. 세 번째 달조각을 찾은 것이었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보물을 찾기도 한다. 고난이라고, 시련이라고 생각한 과정에서 선물을 받기도 한다. 지금, 이 상황처럼 말이다.




반들거리는 보름달을 쓸고 있을 때 뒤에서 매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라!"

땀으로 얼룩진 그의 옷, 매신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내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마음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바라보자 멎었던 눈물을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가슴이 조여 숨쉬기 힘들었지만 서로의 체온이라는 위로가 필요했다.

"매신… 매신…"

"소라…"




내 어깨의 떨림이 얕아 지자 그는 천천히 물었다. 매신의 목소리는 물을 잔뜩 머금은 듯한 웅얼거림과 떨림이 공존하고 있었다.

"다친 데는 없어?"

"응…"

여전히 안고 있는 채로 매신은 등을 토닥였다. 이제 그만 괜찮다고, 이제 진정되었다고, 몸을 떼내려 했지만 아직 그가 준비되지 않은 듯했다. 팔에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 조금 아프기도 했지만 나도 그를 따라 등을 토닥여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그, 그러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질 대답을 기다렸다.

"20일-"

'20일이라고?'

나도 모르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치며 몸을 떼어냈다. 매신의 푸른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러나 놀란 마음에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20일?"

그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숙면을 한 듯한 상쾌함, 아물어 있는 상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20일 이라니, 너무 터무니없는 기간이었다. 20일 동안 잠만 자는 게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밀려오는 혼란에 머리를 짚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매신의 말은 이러했다. 크게 몰아치는 파도에 네가 휩쓸리는 걸 보았다. 네가 가지고 있던 우산은 바다 물건이라 유리구슬로 위치추적이 가능했다. 하지만 우산이 있는 장소에는 네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계속 헤매다 도깨비불을 보았다. 분명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줬던 도깨비불이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반딧불이라, 내가 전생에 반딧불이였던가. 자꾸만 도와주는 반딧불이가 고마우면서도 더 알 수 없어진다. 우선 매신과 나는 숙소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이제는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우는 매신. 숙소로 가는 와중에도 그의 계속되는 사과를 들어야 했지만,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이 귀여워 가만 두었다.

"그때 너를 혼자 두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가만히 매신의 손을 잡았다.




숙소에 도착하고 놓칠세라 꽉 쥐고 있던 세 번째 달조각을 매신에게 건넸다. 달조각은 목걸이에 흡수되어 마침내 반달이 되었다. 다시 우리에게 찾아온 5일간의 휴식.

'내일 매신과 뭐 할까?'

어떻게 음식 없이 3주나 잠들었는지, 반딧불이는 왜 그를 도와주었는지 불명 투성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단지 주어진 5일이라는 휴식을 누리고 싶다. 우리는 거실에 엎드려 서로를 바라보다 그대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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