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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이별

늦은 밤의 대화

by fiore 피오레 Mar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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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이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안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서자, 정적을 가르는 것은 그의 발걸음 소리뿐이었다. 익숙한 공간이지만,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침묵이 그를 감쌌다. 신발을 벗고 조용히 거실로 향하며, 그는 수현이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거실에 들어선 순간, 예상치 못한 광경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거실 한쪽 구석, 은은한 스탠드 조명이 어둠을 조용히 밀어내고 있었다. 그 아래, 수현이 홀로 앉아 있었다. 와인잔에 담긴 붉은 액체가 조명의 가는 빛줄기를 받아 은근한 광택을 띠고 있었다.

수현의 얼굴에는 깊은 사색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와인잔 위를 맴돌며, 머릿속 어딘가에 가닿아 있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고요를 깨는 것은 그녀가 와인잔을 입술에 가져갈 때 나는 희미한 흔들림뿐이었다.

민준은 조용히 숨을 삼킨 채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는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옅은 피곤함과 쓸쓸함이 그늘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는 희미하게 붉었고, 한숨처럼 깊은숨을 내쉰 후 와인잔을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수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놀람과 익숙함이 동시에 스쳐 가는 눈빛. 짧은 정적 후, 수현의 입술이 조용히 열렸다.

"늦었네."

그녀의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퍼졌다.

"민준 씨, 우리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당신은 늘 밖을 향해 있고, 나는 언제나 혼자야……."

민준은 수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가가 그녀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미안해, 수현아. 나는 늘 네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구나.
내가 바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으니까,
너도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어.
네가 외롭다는 걸 알면서도,
그건 네가 견뎌야 할 몫이라고 어리석게 여겼고…….
그렇게 지금까지 지내왔고."

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민준 씨, 나도 당신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하지만 우리도 중요해.
우리의 관계도…… 나도…….
나도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래서 결심했어.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해.
당신만 바라보며 사는 삶이 이제는 버거워.
결혼하면서 일을 쉬었던 이유가 아이 때문이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나는 아이보다 내가 더 소중하고,
내가 더 중요해졌어.

우리, 서로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자."**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흔들리는 빛 한 자락이 그 안에 서려 있었다.

민준은 수현의 말을 천천히 되새기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 내린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가늘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수현의 손을 잡으며 힘주어 말했다.

"내가 더 노력할게.
우리 관계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내고,
너를 더 많이 신경 쓸게."

하지만 수현의 결심은 이미 단단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두 사람을 위해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수현아, 내가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민준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서려 있었다.

수현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민준 씨, 나는 당신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그런데 그럴수록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어.
나는 결혼이라는 관계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민준 씨와는 상관없이, 나는 어디에도 묶여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
당신이 바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렇지만 나는 다시 내 삶을 찾고 싶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련이 없었다.

"수현아, 그럼 헤어지지 않고도 얼마든지 일을 시작할 수 있잖아."

민준이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 민준 씨.
이건 일이 문제가 아니야.
내 근본적인 문제는 달라지지 않아.
우리는 서로에게, 점점 더 무거운 짐이 될 뿐이야."

민준은 그녀의 눈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난 그 결정을 존중할게.
너의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날 밤,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오랜 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수현아,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니?
모네 그림 앞에서 널 처음 보고,
너에게 완전히 매료됐었던 그 순간을.

네가 파리 번화가에서 칼을 든 아랍 남자를 만났을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어.
그때 나는 네 모습이
미션 임파서블 5의 레베카 퍼거슨 같다고 생각했어."**

수현은 순간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민준 씨, 우린 왜 진작에 이런 시간을 만들지 못했을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쫓고 있었을까……."

결혼 후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수현은 조용히 눈물을 떨궜다.

민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그 손길만으로는 그녀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민준 씨, 당신은 참 멋진 사람이야.
그리고 너무 착한 사람이야.
내가 떠나는 건 당신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내가 나를 너무 몰랐었어.
어쩌면 한 달 뒤 나는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선택한 길을 가고 싶어."**

민준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긴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차가운 공기만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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