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가르치다 보면, 많은 경우 자랑스러운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고 싶어 합니다. 특히 지역사는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기본 바탕으로 하다보니, 지역의 좋은 면,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인데, 어떻게 자랑스럽고 좋은 일만 있을까요. 종종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 아픈 역사도 만납니다.
얼마 전에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 있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현장을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노근리 사건이란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충북 영동군 노근리 일대 피난민 250~300명이 미군 비행기의 폭격 및 기관단총 사격에 의해 희생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미군과 관련 있다 보니 오랜 시간 동안 알려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역의 여러 사람이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게 되고, 이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평화재단과 기념관이 생겨났지요.
노근리 현장을 다니면서, 우리 지역에 있는 한국전쟁의 아픈 현장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여주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현장을 돌아보고 공부한 내용을 지역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다,”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전쟁의 아픔과 함께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했듯이, 화해와 치유, 평화를 이야기하는 현장도 함께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저의 역사 여행길 주제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입니다.
한국전쟁 수업을 진행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여주시 민간인 학살 유족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유족회원 세분을 모시고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얻었는데요. 저와 학생들 모두 우리 지역 곳곳에 그런 현장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후에 관련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어 지역사 연구회 샘들과 함께 유족회 사무장님의 안내로 두 차례 현장답사를 했습니다. 현장에서 들은 내용과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주지역 한국전쟁 관련 민간인 학살사건은 1947년 3월 15일 능서지서와 면사무소 습격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62명을 연행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1951년 2월 18일 능서면 매류리 사건까지 대신, 가남, 북내, 금사, 흥천 등 여주 전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진실은 묻어야 했던 유족들은 2006년 세분의 유족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청하였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됩니다. 조사 결과 여주지역에서는 9·28 수복과 1·4 후퇴 직후인 1950년 9월 말~1951년 2월 사이 최소 98명의 민간인이 학살로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국전쟁 전체 동안 민간인 학살 희생자 수는 600여 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지도에서처럼 여주 곳곳에 학살 현장이 많지만, 우선 강 주변에 있는 장소를 답사했습니다. 제가 답사하면서 놀란 것 중의 하나는 강가에 그런 현장이 많다는 것입니다. 강가는 절벽이 있고 학살의 흔적을 지우기 쉬운 곳이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