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현장을 찾아서(4)
가슴 아픈 사연 이야기는 여주향교 뒤편에서도 이어집니다. 1950년 10월 11일 여주읍 교리 여주향교 부근에서 총성이 났습니다. 부역 혐의를 의심받은 연행자의 가족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여주향교 뒷산 방공호에서 20여 구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증언에 따르면 한 엄마가 자식과 남편의 시신을 찾아 헤매다, 남편 시신을 드디어 찾았으나 다른 장정들이 자기 아버지 시신이라며 시신을 탈취한 황당한 일이 벌어졌는데요. 이는 아마 시신을 가져가면 학살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 시신을 탈취한 것이라 추정된다고 합니다. 자식과 남편을 한꺼번에 잃고 시신조차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던 그 여인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한편 이곳은 인민군 점령 시기에 좌익에 의해 여주경찰서 임시유치시설에 감금되어 있던 주민들이 희생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묻힐 구덩이를 판 후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다고 합니다.
능서면 매류리에 일제강점기부터 고령토를 실어 나르기 위해 기차가 다녔으며, 고령토를 파낸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1․4후퇴 직전인 1951년 1월 초순 새벽에 치안대 등이 창고에 갇혀 있던 주민들을 끌고 나가 고령토 구덩이에서 총살한 후 구덩이에 유기하였다고 합니다. 역시 주민인 이 씨의 증언에 따르면, 전쟁 후 마을로 돌아와 보니 마을 주민 상당수를 볼 수 없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1960년경 고령토 구덩이가 다시 파였을 때 수십구에 이르는 유골이 나왔다고 합니다.
대신면은 1950년 9월 30일경부터 치안대에게 끌려간 주민들이 처형당하기 시작했는데요. 장풍리 이장이었던 분의 증언에 따르면 장풍리 골짜기에서 170~180명의 부역자가 희생당했다는 말을 들었으며 “귀신 나오니까 밤에 늦게 다니지 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장풍리 계곡은 부역자들을 대신초로 끌고 가면서 처형한 곳이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처형된 사람들의 시신을 버린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발굴하면 시신이 수습될 확률이 높은 곳 중의 하나인데, 현재 사유지라 발굴에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장풍리 계곡과 마찬가지로 계곡의 형태를 지닌 지형인 북내면 신남리 버시고개에서도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들 장소는 큰길 가까이 있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외진 곳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1950년 10월 29일경 북내지서 유치장에 갇혀 있던 주민 중 대부분이 여주읍으로 가는 길목인 버시고개에서 희생되었습니다. 버시고개 학살 증언은 생생하고 구체적인데요. 증언자들은 새끼줄로 하루 10명~15명씩 묶어 버시고개로 가는 것을 몇 번 목격했으며 곧 총소리가 났다고 하며, 그런 일이 최소 3~5일 간격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버시고개도 장풍리와 마찬가지로 파면 유해가 나올 것으로 거의 확실하지만, 시신 발굴 계획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 현장이 더 안타까운 것은 현장을 안내하는 작은 표지석도 없다는 거였습니다. 누가 이들의 억울함을 알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을까요.
유족 인터뷰와 현장 답사를 다니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양쪽 모두 학살의 대상이었다는 것과 지역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살아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관련 수업과 현장 답사는 무엇보다도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역사 이야기를 하면 유난히 전쟁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멋진 영웅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새로운 무기가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교과서나 영화 속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지역의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이야기에는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무섭고 두려웠던 그러면서도 가족과 함께, 주변 이웃과 함께 고통을 견뎌냈던 순간의 일만 있지요.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분단국가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전쟁을 어떤 식으로 배워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저는 그 답을 전쟁을 직접 경험한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 분이라도 더 만나보는 기회를 가지거나 지역의 현장을 직접 방문해보는 것에서 찾고자 합니다. 그 경험들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확신합니다. 학생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런 경험을 꼭 가져보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