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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스트이지만 해외여행을 꿈꿉니다

『여행의 이유』를 읽고

by 스마일쭈

나는 금사빠다. 연예인이든 영화든 책이든 쉽게 감동하고 빠져든다. 세상에 멋진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한 가지만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새로운 것을 접하는 족족 애정하는 것이 늘어난다. 그렇다고 예전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순위의 변동이 있을 뿐 취향의 세계는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가장 순위 다툼이 치열한 부분이 바로 해외여행지이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가고 싶은 장소가 달라지곤 한다. 청소년기 러시아 대문호들의 작품을 읽고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타고 싶었고,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볼 때는 피렌체가 정말 아름다웠다. 축구선수 베컴과 제라드한테 반해서 영국도 가고 싶었고, 12월이 되면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과 프라하의 야경에 혹한다. '꽃보다 누나'를 보며 두브로브니크에 빠져들었고, 미술관 관련 책을 읽을 땐 뉴욕이 최고였다. 또 라미란 배우가 출연한 '텐트 밖은 유럽'을 보니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가는 코스도, 심지어 캠핑까지도 멋져 보였다.

이렇게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정작 가본 해외는 일본뿐이다. 아빠가 일하시던 여행사에서 아르바이트로 갔던 태국과 직장 단체여행지였던 칭다오를 제외하면, 스스로 택한 장소는 일본 한 곳이다. 일드와 만화에 푹 빠져 2번이나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신혼여행지도 국내인 동해였다. 오직 쉬기 위해 발리나 하와이까지 가는 건 경제적이지 않았고, '해외여행=유럽'이라 생각하지만 일하느라 장기간 휴가를 낼 수 없었기에 만족한다.


그렇다. 나는 금사빠이지만 귀차니스트인 것이다. 여행경비야 절반은 모으고 절반은 카드 할부를 사용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제주도조차도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서 대기하고 렌트를 해야 하는 게 귀찮은데,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으로 장시간 비행할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는다. 물론 직접 가보면 상상을 초월하겠지만 그 정도의 열정을 쏟아부을, 지금 당장 떠나야 할 여행지를 아직 결정하진 못했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부터 세계테마기행과 여행 에세이를 즐겨 보고 있다. 어디로든 함께 떠날 수 있고, 여행지에서의 사색을 배우게 되니까.


김영하 작가는 출판기념회 차 뉴욕에 갔을 때 반응이 시큰둥하기도 했고 일종의 우울증으로 일주일간 아파트에 틀어박혀 총 쏘는 게임을 했다고 한다. 결국 멋진 여행지이든 우리 집이든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상관없다.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가가 중요할 뿐.

그리고 여행은 단지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떠나는 것에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도 그렇지만 여행지에서 계획대로 되지 않는 돌발 상황을 겪으며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현지인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에 고마웠다면, 그 기억을 간직하고 나 또한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면 되는 것이리라.

아직 먼 이야기지만 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때나 군대 가기 전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일단은 가족 여행이긴 한데.. 남편은 일해야 되니 도중에 보내고 아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느리게 다니고 싶다. 그 순간만큼은 안락한 숙소와 편안한 이동 수단이 갖춰진 패키지여행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오히려 집 떠나 고생을 실컷 해보고 싶다. 그때까지 여행지를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고르며 여행의 설렘을 만끽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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