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믿음의 상관관계
어젯밤 남편과 와인을 마셨다.
둘이 와인을 마실 때면
물론 현실적인 얘기도 많이 나누지만
난 특히 철학적인 얘기를 나눌 때
그와의 대화를 더 사랑하게 된다.
보통 그런 대화는
둘 중 누군가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어제는 남편의 질문이 있었다.
“사랑이 먼저인 것 같아? 믿음이 먼저 인 것 같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사랑”
“왜?”
“난 믿음이 생기려면 데이터가 필요한데
데이터는 수집하는데 시간이 걸리거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나한테는 사랑이야.
사랑하지 않으면 난 기다리지 않아.”
매우 논리적이고
멋진 답을 한 것 같아 자못 뿌듯했다.
“그래. 당신 기다리는 거 싫어하지”
그가 끄덕이며 웃었다.
“당신은 뭐가 먼저인 것 같아?”
“나도 사랑이긴 한데 상관관계가 당신이랑 좀 다른 것 같아.“
“어떻게?”
늘 생각치 못한 흥미로운 답을 하는
남편의 답이 매우 궁금했다.
게다가 토픽이 그가 생각하는 사랑과 믿음이라니!
“당신은 사랑해서 봐준다? 느낌이잖아.
그래 내가 사랑하니 기다려준다.
상대가 어이없는 짓을 하면
뭐지? 왜 저러지? 한참 분석하고
‘아.. 그래서 그렇구나.’ 하면서
일련의 각종 데이터를 수집해서
‘결론적으로 믿을 수 있겠군!’ 한다는 거잖아.“
“그렇…지. 당신은 어떤데? “
왠지 내가 자못 뿌듯해 했던 나의 답을
짜투리 별책부록으로 만들 것 같은 답이 나올 듯한 불안함과
일면 약간의 기대감으로 얼른 물었다.
“난 사랑을 하면…
상대가 이해가 안 가는 일을 했을 때
‘저러는 이유가 있겠지.’ 하는 것 같아.
난 사랑과 믿음이
그냥 같이 시작되는 거겠지?
옛날에 물리학에서 이런 일이 있었거든.
양자역학 초창기에
양자역학 말도 안 된다던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이 옳다고 했던 보어에게
자기한테 양자역학이 옳다는 사실을
이해시켜 보라고 했을 때
보어가 그랬어.
‘당신이 이해를 할 수 있던 없던 nature가 그런데
내가 양자역학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왜 당신을 이해시켜야 하냐’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이해 안 가는 행동을 했다고
그게 그 사람의 책임도 아니고
나를 이해를 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지.
그건 그냥 사랑하는 상대의 네이쳐인거고
그 사람의 네이쳐를 이해를 하고 못하고는
내 능력인거지.”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그의 답이 내 답보다
더 논리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더 성숙한 답인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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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좀 더 줘봐.
왜 싸우지도 않았는데
진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