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자녀를 낳아보니…
찢어진 머리는 봉합해서 붕대를 감았고, 부러진 팔은 깁스를 했다.
절단된 혀는 재생이 잘 되는 특성상, 입에 머금고 있다가 뱉어 내는 방법으로 치료가 되었다.
초록색 물약이 기억난다. 약간의 알코올향도 났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가그린 같기도 하다.
병원생활은 임팩트가 있었던 몇 개만 기억이 남아 있다.
잠에서 깼는데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 큰아버지께서 앉아 계셔서, 다시 자는 척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나에게 큰아버지가 좀 무서웠나 보다. 큰아버지는 결국 일어난 나를 못 보고 그냥 돌아가셨다.
지금까지도 이 일은 비밀이다.
또 하나의 기억은 무시무시한 어깨 탈골 치료였다.
단순 탈골이 아닌 어깨뼈와 팔뼈사이가 서로 엇갈려 버렸는데, 치료를 위해서는 물리적인 힘을 가해서 잡아당긴 후 제대로 뼈를 맞춰야 했나 보다.
복도 끝에 있던 치료실로 이동할 때는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이동하는 내내 큰소리로 울어댔다.
초록색 수술복과 흰가운을 입은 성인남자 3-4명이 내 몸통이 고정되도록 붙잡았고, 한 명은 내 왼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놓길 반복했다.
나는 병원이 떠나가라 울어댔고,
플라스틱 이름표와 볼펜이 타닥타닥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만해 … 그만해!!!!!! 으아아아아아앙 그만해!!!!”를 연신 외쳐댔다.
한 두 번에 끝나는 치료가 아니었나 보다.
수차례 진행된 치료를 통곡을 하면서 받았다.
그러고 보니, 머리뿐만 아니라 내 왼팔에도 사고 흔적이 있다.
팔뼈가 붙는 과정에서 근육이 뭉쳤는지 제법 볼록한 혹? 같은 게 있다. 얼핏 보면 정말 근육 같기도 하다.
팔꿈치 아래쪽에도 넓은 흉터가 있는데, 이건 좀 억울한 흉터다.
그 시절 깁스 품질이 안 좋았는지 … 기술이 부족했는지..
붕대가 내 살에 붙어버려서 , 깁스를 제거할 때 생긴 흉터라고 했다. 물론 나는 이 흉터도 기억에 없다.
팔 안쪽이 아니기에 내 눈에도 , 남눈에도 잘 안 띄고 살아가는데 불편함은 거의 없다.
나는 2인실을 쓰고 있었다. 여름이라 상처가 덧날까 봐 , 딸내미 몸에 흉이 더 생길까 봐 없는 살림이었지만 엄마가 강력주장 하셨다고 한다.
에어컨이 흔치 않던 시절에, 아무래도 깁스와 붕대를 많이 하고 있어서 다인실을 이용하게 되면 더위도 쉽게 느끼게 될까 봐 염려가 되셨던 것 같다.
달콤한 기억도 있다.
옆침대에는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오빠가 있었는데, 그 시절 귀하디 귀한 엑설런트 아이스크림을 몇 번씩이나 주셨다.
아마 그때가 처음 먹어보는 액설런트였을 거다!!! 너무너무 부드럽고 달콤했다.
보호자인 어머니가 우아해 보이고, 오빠가 잘 생겨 보이기까지 했던 것 같다. 잊을 수없는 인생의 몇 안 되는 달콤한 순간이었다 자신한다!!!!
5살 나에게 이렇게 큰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도 ,
무더운 여름에 병원신세를 졌다는 것도,
엄마가 옆에서 알뜰살뜰 간호해 주셨다는 기억들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흔하디 흔한 교통사고 트라우마도 없다.
남들과 똑같이 왕복차선에 있는 자동차를 확인하고 길을 건널 수 있고 , 운전도 할 수 있다.
다 크고 나서 내 흉터를 볼 때면, 가끔 트라우마 없는 교통사고에 감사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엄마의 기억은 나와는 전혀 다를 거라 생각한다.
어떤 심정으로 어린 딸의 교통사고를 겪어내고, 병원생활을 하셨을까.
7년 동안 대학병원을 다니면서 , 그동안 커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떠셨을까.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셨을까.
나도 1년이 채 안되게 육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낳아보니 감히 더 상상이 안된다. 병원에 누워있는 내 새끼를 보는 심정은 어떨지 …
열이 나서 하루 꼬박 아파하는 것도 보기가 힘든 일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