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아파트가 고작(?) 3500만원이라고!!!
"자, 지금부터 백까지 세면 아빠가 벨을 누를 거야. 같이 세어볼까?"
"97…98…99…100"
띵동~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자신의 루틴을 만들고, 그대로 실행했다. 새벽엔 신문을 읽었고, 퇴근 후 9시 뉴스가 끝나면 방에 들어가 한 시간씩 공부를 했다. 그렇게 30대 초반에 5개의 국가기술자격증과 제1회 공인중개사를 취득했다.
월요일마다 엄마가 지갑에 돈을 넣어두면 금요일까지 그대로였다. 버스 타면 10분인 회사를 돈 아깝다며 40분씩 걸어다녔다. 정확한 시간에 출근했고, 정확한 시간에 퇴근했다. 100까지 세면 아버지가 온다는 엄마의 말은 아들 놀려주려고 한 게 아니라 진짜였다.
아버지는 공인중개사 합격 후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부동산 임장이었다. 주중에 아껴놓은 돈으로 주말이면 서울 전역을 훑고 다녔다. 충남에서 자라 인천에서 대학을 나오고 경기도 남부에서 일하는 사람과 서울은 전혀 연관 없어 보였지만, 아버지의 관심은 오직 서울 뿐이었다.
주말마다 임장을 다니는 공인중개사라는 말에 회사 동료들이 아버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한두 군데 둘러보고 막걸리나 한잔하고 올 줄 알았건만, 아버지의 임장은 진심이었나 보다. 몇 달 지나니 따라다니는 동료의 수는 확 줄었다고 했다. 막걸리를 안 마시니까…
그렇게 무려 2년이 흘렀다. 인터넷도 없던 시기, 오직 발품으로만 서울 전체를 훑고 다닌 아버지는 딱 두 곳의 아파트를 찍었다. 잠실과 개포였다.
당시만 해도 잠실 집값은 개포보다 월등히 비쌌다. 그래서 아버지는 외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지금의 신논현역과 논현역 사이 반포동에서 집을 지어 팔아 돈을 벌었던 할아버지는 자신을 이해하고 돈을 빌려줄 것 같았나 보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제안을 대번에 내쳤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 왜 욕심을 부리냐'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마치 '그럴 줄 알았는데 한번 찔러나 봤다'는 듯 바로 개포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곳, 개포주공 1단지를 매입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비웃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민들 살라고 지어놓은 5층짜리 주공아파트를 회사 근처보다 5배는 비싼 값에 사는 바보가 어디 있냐고, 공인중개사라더니 헛똑똑이라고 했다. 엄마는 펄쩍 뛰며 뜯어말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살지도 못하고, 살 필요도 없는 서울 집이 아버지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과연 무엇이 보였길래 그 집을 매입했을까. 수십 년이 지나 당시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어 생각했을 때에도 나에게는 도박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개포동 집을 매입하면서 십수 년의 연봉을 다 쏟아부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엄마는 속이 타들어갔다고 했다. 아버지를 따라가보니 지금 사는 집이나 강남 집이나 똑같은 5층짜리 주공아파트인 것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했다.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화로 가득한 엄마를 애써 뒤로하고 전세계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갈아타고 갈아타고 갈아탄 마지막 버스에서 엄마에게 딱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