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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하는 것 vs 안 하는 것

by 강혜진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이며 할머니께 참가 신청서를 내밀었다. 빠듯한 살림살이. 며칠 생활비로 쓸 돈을 선뜻 내고 나를 보내야 하나 망설이던 할머니는 큰마음을 먹고 쌈지에서 여행비를 꺼내 주셨다. 나도 간다. 지레 포기해 버릴까 참가 신청서를 내밀지도 못하고 며칠을 가방에 품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마음이 움직였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시골에 살며 버스를 타고 동네 밖으로 나가 본 적 몇 번 없었다. 명절에 큰집에 가는 것 말고는 외박해 본 적도 없었다. 집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었다. 게다가 친구들과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니, 낯선 잠자리에서 잠은 올까, 밤새 친구들과 무엇하며 놀까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날들을 보냈다.

마냥 기쁠 줄 알았던 며칠.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걱정이 생겼다. 여행을 가느라 들뜬 친구들은 벌써 몇 주 전부터 쇼핑에 열을 냈다. 첫째 날 입을 옷, 둘째 날 입을 옷, 숙소에서 입을 옷, 어울리는 모자까지. 시내에 가서 어떤 것을 샀는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몇몇은 친척에게 용돈을 얼마 받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여행비도 겨우 꺼내 주신 할머니께 며칠 동안 멋을 낼 신발도 옷도 없다고 투정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잠자코 가지고 있는 물건들로 여행 가방을 꾸렸다.

그런데 여행 떠나는 날 아침, 서글픈 마음이 불쑥 들었다. 누구 하나 용돈 한 푼 챙겨주지 않아 간식도 하나 없는 짐가방을 꾸리며 괜히 여행을 간다고 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1박 2일 동안 친구들이 휴게소 들러 간식도 사고 기념품도 사는 걸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여행을 가기도 전에 기분이 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날 아침엔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할머니를 불러 앉혔다.

“할매, 3만 원만 빌려주라.”

벌써 수학 여행비로 8만 원이나 줬는데 또 무슨 돈이 더 필요하냐고 묻는 할머니는 돈이 더 필요하다는 말에 펄쩍 뛰셨다. 그냥, 다녀와서 갚을 테니 아무것도 묻지 말고 3만 원 빌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잠자코 듣고 계시던 할머니가 되물으셨다.

“니가 무슨 수로 3만 원을 갚을낀데?”

주머니 사정이 뻔한 내가 그냥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빌려달라고 했으니 할머니가 이렇게 묻는 것도 당연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내 친구들이 용돈 가지고 뭐 사 먹을 때 우두커니 쳐다만 보고 있으라고? 내가 돈 한 푼 없이 못 사 먹는다고 말하는 것보다 돈은 있지만 안 사 먹는다고 하는 게 더 마음 편하지 않겠나? 안 쓰고 갖고 갔다가 다시 갖고 올 테니까 3만 원만 달라고.”

수학여행은커녕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할머니셨다. 모르는 게 당연했지만, 그래도 너무하다 싶었다. 하물며 저승 가는 사람에게도 노잣돈을 준다는데 살아있는 나에게 용돈 하나 쥐여 주는 게 그렇게 펄쩍 뛸 일인가 말이다.

할머니 쌈지에서 돈이 나올 거라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화풀이라도 해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내가 내지른 말에 할머니도 마음이 움직였다. 그날 할머니는 쌈지가 아니라 이불장 안에 넣어둔 장지갑에서 순순히 3만 원을 꺼내 주셨다.

수학여행 내내 휴게소에서도, 기념품 가게에서도 한 푼 쓰지 않고 가져갔던 돈을 그대로 가져와 할머니께 다시 내놓았다. 할머니는 그 돈 갖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쓰라며 받지 않으셨다.

나에게 돈이란 물건을 사는 것 이상의 가치였다. 돈은 가능성이었다. 돈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솟았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내가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은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일 때가 많았다.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자존심 때문에 못 하는 것일 때가 잦았다. 자존심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지금에야 조금 내려놓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처럼 지혜롭지 못했다. 자신감도 확신도 부족했다. 그래서 자존심을 더 꼭 붙들고 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도 자존심 뒤로 미뤄 놓고 자신감을 온전히 느끼는 때가 있긴 했다. 내 힘으로 선택할 수 있고, 혼자서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 바로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수학여행 갈 때 할머니께 꾼 그 돈이 나에게는 자존심이자 자신감 같은 것이었다.

30년 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좌절할 때가 많았다. 풍족하지 못한 형편, 결핍을 숨기며 아닌 척 위선 떨며 살던 나. 애써도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며 좌절하고 분노하던 힘없던 나. 나의 이런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한없이 포장하고 자존심에 기대 살던 작고 작았던 강혜진.

다행히도 내게는 이런 못난 나를 보듬어 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못하는 것이든, 부족한 것이든, 슬퍼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정한 말로 알려주는 어른. 지혜롭지 못한 내가 내 성에 못 이겨 화풀이를 해대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 주는 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사랑 덕분일까? 어른이 된 후에는 할 수 없는 것의 목록보다 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이 더 빼곡하게 채워치고 있다. 힘든 사람을 못 본 척하는 것, 마음에 없는 아첨과 아부, 불필요하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일들은 죽어도 못 하겠다. 의지와 상관없는 것(인종, 종교, 장애, 집안 배경 등)으로 차별하는 것,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 나를 자책하는 것들은 이제 능히 안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 더 많아졌다. 그 옛날, 돈이 없어 못 하던 것을 이젠 내가 선택해 안 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한 발 더 나아가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일이 점점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 물질적 결핍으로 인해 못하는 것들이 점차 정신적인 영역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이 있어하지 않는 것이 더 빈번해질 때,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돈이 없어 못 쓰던 시절, 결핍을 감추려 자존심을 꼭 쥐고 버티던 나는 할머니의 품 안에서,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을 기르며 자랐다. 못 해서 못하는 아이에서, 안 하기로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이다. 이제는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굳이 채우지 않아도 되는 것은 비워낼 줄도 안다. 돈이든 마음이든, ‘없어 못 하는 것’보다 ‘있지만 안 하는 것’이 주는 자유가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조금 늦었지만, 그러나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인 지금, 나는 단단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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