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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n 04. 2024

미워도 다시 한번

그래도 사랑합니다.

아내의 명의로 해 준 생애 첫 집

남자는 젊은 시절 건설업에 종사했다. 잘 나가던 건설업이 IMF 파동으로 수금이 되지 않아 부도를 맞았고 업체로부터 받을 돈 대신 25평 아파트를 받았다. 남자의 나이 29살에 마련한 첫 내집이었다. 1996년 당시 그 아파트이 분양가는 7000만원 정도였다. 첫 내집이었기에 내부 자재도 더 안전하고 좋은 자재로 마감했고 생애 첫 집인 아파트를 그동안 같이 고생하며 살아 준 아내의 명의로 해 주었다. 어느 시골에 사시는 어머님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건강이 좋으셨던 어머니는 가끔 쓰러져 응급실 신세를 지셨는데 그날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비가 얼마나 들어갈지 모르기에  남자는 아내에게 병원비할 돈을 미리 찾아 놓으라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아내는 돈을 찾아 놓지 않았다.


내가 몰랐던 일

남자는 건설업을 접고 회사 택시를 거쳐 개인 택시를 마련해 일했다. 잘 나가는 사업가이던 아들이 택시 운전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던 아버지께서 농사 짓던 시골 땅 200평을 팔아 천만원을 현금으로 주셨다. 아버지께서는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하시며 검은색 비닐 봉지에 꽁꽁 싸멘 돈을 남자에게 조용히 주셨다. 차마 돈은 수가 없었기에 500만원은 자신통장에 나머지 500만원은 아들의 통장에 저금을 놓고 통장을 아내에게 맡겼다. 


다행이 응급실에서 어머니는 기력을 회복하셨고 남자는 아내를 데리고 주차해 놓은 차안으로 갔다. 남자는 아내에게 돈의 행방을 물었다. 아내는 머뭇거리며 생활비로 썼다고 했다. 남자는 아내에게 고정적으로 생활비를 줬다. 물론 넉넉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열심히 일해서 꼬박꼬박 생활비를 준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가 주신 만원 말고 다른 말 못한 일도 있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자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남자는 아내를 태우고 법원으로 가서 등기부 등본을 떼었다. 아파트에 담보 대출 1억 3500만원이 잡혀 있었다. 회복 불가능 하다는 생각에 남자는 현기증을 느꼈다.


아내는 당시 보험회사에 다녔다. 출석해서 교육만 받아도 30만원을 주고 팀장 누가 얼마를 벌었다더라, 친구 누가 얼마를 벌었다더라 등 그런 말에 현혹돼서 보험회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아내는 부잣집 딸이었다. 매달 생활비를 줬지만 아내는 부족했었나보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썼고 나중에는 신용카드 9개로 돌려 막기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신용카드 한도가 낮아지니 아내는 급했고 결국엔 담보 대출까지 받게 된 것이다.




아파트 11층 난간에 앉은 남자

일이 터지고 수습이 안 되니 남자는 죽을 것 같았다. 남자는 거의 매일 소주를 마셨다. 그날도 소주를 마시고 아파트 11층 난간에 걸터 앉았다. 허공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야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시일을 하기전 건설업을 했기 때문에 남자는 고소공포증이 없었다. 난간에 앉아 있다가 그만 미끄러졌다. 가스배관을 잡고 쭉 미끄러지다가 다행히도 연결 이음새 부분에 걸렸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래층에 살던 이웃이 발견해 베란다 창문을 열어 주어서 목숨을 건졌다. 이런 모습을 집에 있던 어린 아들들이 봤다. 지금도 가장 슬펐던 기억이 뭐냐고 물으면 두 아들은 똑같이 그때라고 말한다.


남자의 아버지는 군인 출신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고 술이 취하면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전쟁을 직접 겪어서 생긴 트라우마를 술 주정으로  게 아닐까 생각된다. 남자는 어릴 적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너무 싫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맞는 장면을 직접 보았고 울면서 엄마 손을 잡고 외가로 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자가 난간에 매달려 죽을 뻔한 모습을 보여 준 것도 아이들에 대한 일종의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가족들을 모이게 했다. "오늘 이시간 이후로 아빠가 너희들이나 엄마 듣는 데서 과거 얘기나 어두운 얘기는 안 한다."라고 다짐을 했고 지금까지도 그 약속은 지키고 있다고 한다.




나를 일으켜 준 가족들

남자의 아버지는 농사를 크게 지었다. 땅에 대한 욕심도 많았고 나이에 비해 건강하셨고 농사 짓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이 가진 땅을 팔아 택시 운전하는 아들 기죽지 말라고 천만원을 주신건데 그 아버지의 마음이 산산히 부서 졌다고 생각하니 남자는 너무나 괴로웠다. 남자의 힘만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런 상황을 알게 되셨다. 아버지는 남자를 불러 빚이 얼마냐고 물으셨고 당신이 그렇게 아끼시던 땅을 다 처분해서 돈을 마련해 주셨다. 형제들에게 줄 몫까지 다 남자에게 주셨다. 하루아침에 농사짓던 땅을 다팔고 남들 땅에서 괄시 받으며 일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남자는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건강하시던 아버지는 4년 뒤 돌아 가셨다. 평소에 아버지는 건강하셨기 때문에 그 일이 없었더라면 아마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큰 불효를 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큰 위안이 된 처가 사람은 큰 처남이다. 아내에게는 오빠가 둘 있는데 남자는 그 중 큰 처남하고 죽이 잘 맞아 친하게 지낸다. 그 일이 처가에도 전해졌고 큰 처남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자보다 3살 위인 처남이 " 대단하네. 나 같으면 당장 헤어졌네. 고맙네." 라며 남자를 위로했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위안이 됐다. 농협 부장으로 일했던 큰 처남이 당장 급한 돈이 얼마냐며 어떻게든 마련해서 보내 주겠다고 했다. 큰 처남이 마련해준 3천만 원과 아버지가 땅을 팔아 마련해준 돈으로 모든 빚을 해결했다.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빚을 해결했는데 또 용도를 알 수 없는 약 1400만원의 아내의 돈 사고가 생겼다. 당시 아내는 보험 회사를 그만두고 17년 째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아내가 빚의 용도를 자세히 말하지 않아 별의 별 상상을 했다. 또 벌어진 일을 어쩌랴?  이혼을 해서 다른 여자랑 사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고 아내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끔찍했기에 남자는 아내를 한 번 더 용서했다. 남자는 아무말 없이 그 빚을 또 다 갚았다.


지금은 아내의 월급 통장을 남자가 관리한다. 아내는 남자에게 통장을 맡기고 오히려 홀가분해 졌다고 한다. 남자는 아내가 거대한 댓가를 치루고 인생공부를 제대로 한 거라고 말한다. 남자는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도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자기가 일해서 버는 돈의 가치를 알고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평범한 가정 주부가 되어 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짠 하다는 남자. 진짜 사랑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잘 맞는가보다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가이다.


- 레프 톨스토이



대문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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