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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26. 2024

 50살에 처음 혼자 떠난 제주 여행1

외로움과 해방감 사이 

나 혼자 여행 간다.

아들은 방학마다 강원도 정선 친정에 가서 2주 정도 할머니와 함께 지내다 온다. 시골에서 혼자 지내는 할머니에 대한 손자의 최대한의 효도이다. 이번 주 금요일이 시골에 간지 2주일 되는 날이라 데리러 간다고 전화하니 일주일만 더 있다 가겠다고 했다. 남편은 중국 주재원으로 가 있고 아들은 친정에 가 있고 어쩌다 보니 혼자 지내게 됐다. 아들의 일정이 일주일 연장되는 바람에 갑자기 올해 휴가는 나 홀로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버킷리스트에 혼자 여행해 보는 것을 썼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이 바로 그때다 싶어 급하게 17일부터 21일까지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렌터카를 빌렸다. 숙소는 제주도에서 펜션을 하시는 이봉수 교수님 댁으로 가면 되니까 첫날 지낼 우도 숙소만 예약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행 떠나기 3일  전부터 목구멍이 칼칼해지기 시작하더니 잔기침이 쿨럭쿨럭 나고 심지어 밤에는 몸도 후끈후끈거리고 목이 아파 수십 번을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못 가는 건가?

다음날 병원에 가 엉덩이 주사도 맞고 약도 일주일 치를 지었다. 열심히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위약금을 약 10만 원을 물었다. 아까운 내 돈... 나 홀로 제주 여행에 부풀었던 마음이 사그라들자 갑자기 우울감이 마구 몰려왔다. 운동을 할 의욕도 문 밖에 나갈 의욕도 생기지 않아 거의 일주일을 배달 음식과 맥주로 아픈 몸을 더 혹사시켰다. 그러다 다시 주말이 왔다. 혼자 소파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러다가는 죽을 때까지 못 가겠다 싶어 다시 24일부터 28일까지 비행기 티켓과 렌터카를 예약했다. 이제는 다시 취소할 수도 없다. 위약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가서 잠만 자다가 오는 일이 있어도 꼭 가야 한다.


짐 싸기

캐리어를 아들이 가지고 가서 인터넷 당일 배송으로 급하게 싸구려 캐리어를 주문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아주 부실하고 촌스러운 민트색이었다. 36000원이면 열 번만 써도 본전은 뽑는 거니까 그럭저럭 써야겠다. 맨 처음 책 2권을 챙겼다. 읽다가만 책 1권과 못 읽은 책 1권, 운동화, 스니커즈. 샌들 신발만 4개, 속옷, 양말 10벌, 반바지 3개, 치마 3개, 레깅스 4개, 가방 3개, 고데기, 화장품 등등 24인치 캐리어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노트북과 보조배터리, 충전기 등은 따로 에코백에 챙기고 또 작은 가방에 소지품을 챙겼다. 어딜 가든 나는 항상 짐이 많다. 덜 챙겨서 불편하느니 많이 챙겨서 편한 게 낫다는 주의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무게 초과로 6000원을 더 지불했다.


제주 입도 환영 문자를 받았다.

제주 공항에 도착해 휴대폰을 켰더니 제주도에 살고 계신 성서학자이신 김근수 소장님께서 제주도 입도를 환영한다는 문자를 보내셨다. 여러 번 제주도에 다녀왔지만 일정상 한 번도 뵙지를 못했는데 이번엔 혼자 홀가분히 갔으니 전화를 드렸다. 소장님은 책을 쓰고 공부하시는 분이시라 늘 바쁘신 분인데 직접 시간을 내어 주신다니 너무 감사했다.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은희네 해장국에서 내장탕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뷰가 아주 멋져서 훌륭한 분들만 모시고 가신다는 빽다방으로 향했다. 소장님은 '시민언론 민들레' 칼럼진이기도 하시고 얼마 전까지 영어학원을 운영하셔서 같은 사교육에 종사하는 나에게  마음이 쓰인다고 하셨다. 몇 년 전부터 '리포액트'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응원해 주셨지만 이번에 내가 '시민언론 민들레' 제1호 시민기자가 된 것을 무척이나 기뻐해 주셨다. 앞으로 어떻게 취재를 하고 글을 쓸 것인지 같이 고민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자상한 아빠같이 느껴져 코끝이 찡해졌다. 귀하고 좋은 인연이다. 소장님 감사합니다.


< 소장님이 사 주신 은희네 해장국 노형점에서 나는 내장탕을 먹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한 맛 >

 < 귀한 손님만 모시고 간다는 뷰가 죽여주는 다방에서... 나 술 안 마셨는데 얼굴이 왜 시뻘겋지? >


우도에서 1박 2일

작년 겨울 친구 윤정이와 제주도 여행을 다가 우도에 반했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아줌마 둘이서 생전 처음 전동 오토바이를 타면서  사춘기 소녀들처럼 깔깔 거리며 온종일 웃었다. 우도에 대한 즐거운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혼자 가지만 우도에서 꼭 1박을 하고 싶었다. 펜션보다는 아늑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차를 배에 싣고 우도로 향했다. 도착해서 해안 도로를 따라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하다가 체크인 시간인 4시에 맞춰 숙소로 갔다. 나는 1인실을 예약했다. 가서 짐을 풀고 습한 날씨덕에 땀범벅이 돼 샤워를 하고 시원한 방에서 인터뷰 기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누가 방문을 노크해서 나가보니 옆방을 예약한 아가씨였다. 인상이 참 순하게 생긴 아가씨의 젊음이 부러웠다.


밥 대신 안주 만들어 주는 게스트하우스

내가 묵은 숙소는 사장님이 밥 대신 저녁에 안주를 만들어 손님들끼리 모여 조촐하게 술을 마신다고 했다. 술은 각자 준비했고 7시가 되니 사장님이 나오라고 부르셨다. 용감하게 생얼로 나갔더니 사장님 포함 여자 셋 남자 셋이었다. 아들과 동갑인 23살 여학생은 용감하게 혼자 2박을 했고 옆 방 27살 아가씨는 의사인데 힘들어서 1년 휴직 중이라고 했다. 젊은 두 청년은 중학교 동창인데 한 명은 헬스 트레이너고 다른 한 명은 정육점 사장님이라고 했다. 참으로 다양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그런데 세상에 23살 여학생 엄마가 나랑 동갑인 75년생이라고 했다.  웃기기도 반갑기도...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지만 늙은이 취급 안 하고 같이 재밌게 놀아준 분들 복 받을 거야! 규정은 10시까지 이지만 우리는 11시 조금 넘어서 까지 놀았다.


<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떡볶이집에서 먹었던 그 맛이었다. >

< 에그 인 헬, 처음 먹어 본 음식인데 아주 맛있었다. 아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다.>

< 골뱅이 무침, 사장님은 식당을 하셨어야 했다. 다 맛있다. >


바퀴벌레 못 잡는 의사 아가씨.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방에서 기사를 정리하고 있는데 옆방 의사 아가씨가 노크를 하며 다급하게 불렀다. 혹시 바퀴벌레 무서워하냐고 묻는 걸 보니 방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휴지를 손에 둘둘 말고 아가씨 방으로 가서  엄지 손가락 마디보다 더 큰 바퀴벌레를 한 방에 때려잡아 죽이니 의사 아가씨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어떻게 그렇게 바퀴벌레를 잘 잡으시냐길래 의사가 바퀴벌레도 못 잡으면서 해부학 실습은 어떻게 통과한 거냐고 놀렸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길래 50살 정도 되면 다 이렇게 때려잡는다고 잘난 척 좀 했다. 다행히 내 방에서는 바퀴벌레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낯선 곳에서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 우도에서 묵었던 슬로우도 게스트하우스 여자 1인실 , 혼자 쓰기 적당하고 에어컨 빵빵함 >


나 홀로 여행 후기는 나누어서 3탄까지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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