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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공정 May 17. 2024

TV는 꿈을 싣고

  내가 살던 초가집이 마지막으로 단장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73년 늦가을이다.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지붕개량 붐이 일었던 해이기도 하다. 까치집을 하나씩은 품고 있었고 때로는 흘러가던 조각구름도 걸렸던 미루나무로 함석이나 슬레이트를 올릴 각목을 장만하느라 동네가 분주하던 그해 늦가을, 나는 몸이 아파서 2개월 남짓이나 학교에 가질 못했다. 급성신장염으로 통증은 없는데 아침에 눈을 못 뜰 정도로 얼굴이 부었다. 집에서 치료하면서 학교에 가는 친구들을 그저 먼발치서 바라만 봤다. 덕분에 한낮의 따스한 가을 햇볕을 마음껏 즐기며, 고즈넉한 농촌의 추수 풍경을 동영상과도 같은 기억으로 가슴에 차곡차곡 담아둘 수 있었다. 푸르던 땡감이 노랗게 익고 붉은 홍시가 되는 계절의 흐름도 알게 되었다.


  초가에서 태어나서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줄곧 그 집에서 자랐으니, 초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여행할 때 호텔이나 펜션에 들지 않고 농촌 민박도 꽤 즐기는데, 장독대가 있는 뒤란에서 볏짚이 삭으면서 풍기는 약간은 지릿하고 때로는 구수한 냄새가 정겨워서다. 지난해 봄에 남해안 여행 때 이동 거리가 상당히 늘어나도 굳이 순천의 낙안읍성으로 달려간 것은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초가에서 하룻밤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고향 이야기는 장면마다 한편의 동화와도 같은데, 나에게는 초가에서의 간절하고 애틋한 사연 중에 사실은 좀 생뚱맞은 추억도 있다. 73년도 그해 가을, 병으로 결석하면서 찬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시월 하순에, 늙고 병든 쥐와 5일간 우정을 나누며 친구로 지낸 사연이 바로 그 엉뚱한 추억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월트디즈니의 [미키마우스]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궁벽한 시골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TV는 당연히 없었고 겨우 라디오 한 대로 세상과 소통하던 시절로, [어깨동무]라는 월간지 이외에는 읽을 만한 동화책도 귀했던 곳이다. 그런즉 내가 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는다는 것은 당최 불가능하다. 쥐는 나에게 미키마우스 이미지처럼 앙증맞거나 혹은 귀여운 녀석이 결코 될 수 없는, 살강 위 그릇도 깨고 가마니도 뚫어 못쓰게 만드는 놈이고, 늦가을이면 집 근처로 모여들어 가축들의 먹이를 축내며, 집안의 온기에 의지해서 혹독한 겨울을 나는 교활한 놈이다. 초겨울에 새로 단장한 지붕에서 볏짚이 들썩거리면, 틀림없이 쥐가 나락 달린 벼 이삭을 끊어 먹고 있다는 신호다. 밤마다 천정을 활보하던 쥐들 때문에 잠도 설치던 내가 우연히 늙은 쥐와 영혼을 교감하며 친구가 된 사연을 소개한다. 


  종콩이라 부르던 낱알이 작고 흰 메주콩을 수확할 때였다. 바싹 마른 콩 가지를 마당에 널어놓고 타작하는데, 도리깨질하면 콩이 튀니까 주위에 밀짚 멍석을 둘러친다. 그 밀짚 멍석을 가림막 삼아서 이동하던 쥐와 맞닥트린 것이다. 첫 조우에 놀란 쪽은 쥐가 아니라 나였다. 위풍당당한 모습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슈퍼 쥐라 일컬어도 될 정도로 강아지만 한 덩치에 놀랐고, 겁도 없이 달아나지 않고 나를 쳐다보는 만용(蠻勇)에 또 놀랐다. 아니, 이놈이 나를 뭐로 보고 도망가지도 않는가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병자의 몸이니 쥐에게 비친 내 모습도 나약했을 것이다. 


  ‘죽으려면 무슨 짓은 못할까?’라는 말은 그놈 모습이 아니다.

  작은 일에 목숨을 걸거나 무모한 짓을 빗대서 하는 말이니까.

  ‘죽을 건데 무슨 짓은 못할까?’라는 말이 오히려 잘 어울린다.

  곧 세상 떠날 몸인데 두려운 것이 뭐고 피할 게 무엇이더냐. 


  사실 그놈은 달아날 힘도 없는 죽음을 목전에 둔 늙은 쥐다. 그놈과 나는 자연스레 눈이 마주쳐졌다. 마주쳐진 채로 1분여의 시간이 잔잔히 흘렀다. 눈싸움이 아닌 그윽한 눈으로 서로를 탐닉하면서 살피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동물과 눈으로 대화했다. 그쯤 되니 나는 쥐에게, 쥐는 나에게 배려의 순간이 필요했다. ‘내가 먼저 물러나자. 잿간에서 나왔으니까 뒤란 쪽으로 갈 거다. 덩치가 너무 커서 쥐구멍으로는 절대로 못 들어갈 것이다.’ 저렇게 큰 몸을 어디에 숨길지 동정이랄까 측은함과 함께 걱정도 되었다.


  환자인 나는 소화기 계통이 고장이니 음식도 가려 먹어야 했는데, 밭 비탈에 있는 개복숭아를 따 먹는 것은 부모님께서 허락하신 유일한 군것질이다. 서리를 맞아 쩍쩍 갈라진 개복숭아는 제법 맛이 들었다. 서너 개 따서 그 자리로 돌아와 쥐의 존재를 확인했다. 에구머니나! 놈은 미동도 하지 않고 거기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눈을 맞춰달라는 것이다. 당시 나의 체력은 걸어서 여기저기 이동하는 정도는 가능했으나, 몸 상태가 워낙 안 좋고 조금만 빨리 움직이면 쉽게 숨이 차올라서 쥐를 해코지할 힘은 없었다. 놈은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 


  놈은 나의 눈동자에서 공격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읽은 것이다. 심부름 다녀오라는 어머니 말씀에 아까처럼 또 내가 먼저 자리를 떴다. 다녀와서 밀짚 멍석 밑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그 친구도 자리를 뜨고 없다. 조금은 서운했다. 잿간으로 뒤돌아갔는지 아니면 뒤란 쪽으로 가서 숨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역시 방안 천정에서는 젊은 쥐들이 가을운동회라도 하듯, 청백 계주에 기마전도 하며 격렬한 몸싸움으로 찌익~찍! 난리다. 이불속에서 뒤척이다가 한낮의 그 쥐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놈이 나에게 그랬듯이 고양이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까?


  결론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실은 당당했던 것이 아니다.

  대왕 쥐로 태어나 서계(鼠界)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으며, 

  타고난 수명을 다하고 세상 뜨기 전에 나와 조우했을 뿐이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태도가 당당해 보인 것이다.


  미물이라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천수를 누렸으니, 천적인 고양이를 만나도, 평생 피하고 숨어야 했던 사람을 만나도, 공포감을 딛고 상대방을 느긋하게 관조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나 보다. 누우면 바로 잠들었는데 그날은 놈의 잔상이 환자인 나를 늦도록 뒤척이게 했다.


  다음날도 콩 타작은 계속되었고 밀짚 멍석도 그 자리 그대로다. 신장염 환자는 서리 맞은 구렁이처럼 움직임이 둔하고 기력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나도 그랬다. 그런데 어제 만났던 늙고도 뻔뻔한 쥐가 어느덧 그리움으로 변해서 무기력하던 나는 멍석을 들춰보기도 하고, 놈을 찾아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놈은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오후에 멍석 밑으로 나타난다. 서로 눈을 맞추고 내가 먼저 어제는 어디서 잤냐고 눈인사했다. 쥐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배가 무척이나 고프단 말이다.” 입을 통한 말로의 의사소통이 아닌, 눈을 통한 마음의 대화다. 


  잘 익은 개복숭아 하나를 따다가 슬그머니 앞에 던져주었다. 

  이미 친구가 되어서 그런지 그놈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다.

  놈은 나와 마주쳤던 눈을 거두고는 시선을 복숭아로 돌린다.

  나와 복숭아를 번갈아 보다가 앞발로 살짝 당겨와 코를 댄다. 


  다람쥐든 햄스터든 설치류가 다 그렇듯 앞니 4개로 갉아 먹는데, 이놈은 앞발로 복숭아를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어찌 좀 수상쩍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윗니가 흔들리는 모양으로 전혀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앞발로 굴리면서 부드러운 부분만을 골라 아랫니로 갉아 먹는다. 


  놈에게는 지금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꼴이다. 하지만 놈은 자신의 늙고 병듦을 한탄하거나 원망하는 기색이 전혀 없으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담담하고 느긋하게 복숭아를 갉아 먹기만 했다. 그 모습은 번뇌마저 지운 듯, 삶에 대한 집착을 넘어선 달관의 경지였다. 동물도 갈 때가 되면 일평생 숨어야 했던 사람 앞에서 저리 평온할 수 있나 보다.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공 굴리듯 요리조리 굴리다가 또 한입 갉아 먹고 서두를 필요도 없고, 허겁지겁 먹을 힘도 없는 늙은 쥐의 자태는 마치 이 세상 생명이 아닌 듯, 숨결마저도 흔들림 없이 온화했다. 


  복숭아를 반쯤 먹고는 앞발로 입을 씻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놈과 눈이 마주쳤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표정을 짓는다. 그날은 쥐가 먼저 자리를 떴다. 잿간을 향하여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면 어제도 거기로 갔겠지. 놈의 거처는 틀림없이 잿간일 것이다. 


  놈이 복숭아를 먹을 때 나도 곁에서 먹었다. 함께 식사한 셈으로 두 번째 만남에서 겸상하였으니 교제 속도가 빠른 편이다. 놈도 나처럼 지난밤에 나를 다시 만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을까? 밝고 기쁜 표정이니 어쩌면 쥐도 나를 그리워했을 것 같다. 


  그와 나의 두 번째 만남은 어떤 기약도 없이 그렇게 정리되었다. 잠자리에 들어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저놈은 분명 삶의 끝자락에서 동료 쥐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대장쥐로 받들어 모셔야 할 위엄도 없어졌으며, 병든 몸이니 부하쥐에게 떠밀렸을 것이다. 이제 놈과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니까, 내일도 거기서 기다려 보자.


  다음 날 오전, 산수 문제를 풀다가 마당에 답사를 가보니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은 콩 타작을 마쳤으며 멍석을 치우고 주변을 정리하고 계셨다. 멍석의 빈자리를 보고는 원래도 무기력했던 나는 순간 축 늘어졌다. 분명 내 잘못은 조금도 없는데 그놈에게 왜 그리도 미안한 생각이 들까. 신장염 환자는 통증도 없지만, 아무런 의욕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도 저놈이 나타나서 이틀 동안 설렘이 생겨서 참 좋았는데 말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이리저리 재회할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일단은 부모님이 일을 마치고 마당을 뜨시면 멍석을 다시 펼쳐놓자.


  그렇게 하면 놈이 몸을 숨겨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잿간에서 두꺼비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박멸의 대상인 쥐에게 무슨 동정인지 눈물을 찔끔 흘렸다. 

  놈은 느릿느릿 딱 그 자리까지 와서 고개 들어 나를 본다.


  미리 따놓은 물렁물렁한 복숭아를 서둘러 놈 앞에 살짝 던져주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기쁨이나 감사의 표정은 비슷한 듯 보였다. 또한 막다른 상황에서는 천적이나 절대적 강자가 없는 듯했다. 미물인 쥐란 놈이 감히 사람에게 다가와서 밥을 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놈은 나를 올려다보면서 즐거운 식사에 충분한 만족감을 드러낸다. 개복숭아라서 크지도 않은데 어제만큼 적당히 먹고는 입을 씻는다. 앞발을 움직이다가 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슨 말을 하는 듯하다. ‘人生, 아니 서생(鼠生)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 빨리 건강이나 회복해라!’


  ‘인생? 서생? 삶? 건강? 네놈이 나에게 하려는 말이 대체 무엇이냐?’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 보는 중에 놈은 뒤돌아 잿간으로 가고 있었다. 5분, 길어야 10분인 짧은 시간인데, 이놈 덕분에 하루가 즐겁다. 한 달 넘게 어떤 일과도 없었던 나에게 놈이 크나큰 활력으로 다가온 것이다. 내일도 저놈을 만날 수 있겠지, 이번엔 무엇으로 밥을 주면 좋겠는가. 고구마? 치아가 부실한 놈인데, 그렇지! 구워주면 먹을 수 있을 거다. 통가리에서 자그마한 고구마 두 개를 가져다가 소여물 끓인 볏짚 재에 묻었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전에 없이 활발한 나의 움직임을 은밀히 관찰하고 계셨다.    


  멍석이 치워졌다. 오늘 또 멍석을 치면 의심을 받을 텐데 이를 어쩐다? 쭉정이를 까부르는 키를 갖다 놓고는 주위에 튄 콩을 주워 담는 척했다. 어머니의 관심을 돌리려고 콩을 주워가며 놈이 나타나길 기다리는데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다. 어제는 그나마도 두꺼비 걸음이더니 오늘은 기력이 더욱 쇠하여 이동이 버거워 보인다. 키를 들고 쥐에게 다가갔다. 놈이 오는 길은 빗물이 빠져나가는 마른 도랑이다. 추위에 떨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이불 덮어주듯 키로 놈을 덮어주었다. 밥그릇으로 준비한 사금파리를 놓고 그 위에 군고구마를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서(鼠)선생! 그는 어제처럼 눈인사를 마치고 먹다가 바라보다가를 반복한다. 서선생의 은신처는 헛간으로, 잿간에 잇대어 쟁기나 멍석을 두는 곳이다. 늦가을이니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다. 헛간에 볏짚을 넣어주었다. 서선생이 호사를 누린다면 그까짓 작은 수고쯤은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런 의욕도 없던 나에게 서선생을 위한 식사 준비는 즐거움이다.


  내일은 무엇을 먹일까, 개복숭아도 있고 홍시도 있고, 군고구마도 있단다. 옳거니! 내가 먹는 밥을 건네주자. 서선생은 치아도 안 좋은데 잘됐다. 나는 두 달 가까이 의사의 처방대로 바특하게 끓인 흰죽만을 먹고 있었다. 흰죽에 참기름 얹어서 백김치 국물을 의지해서 먹는 것이 고작이다. 평상시 점심은 할아버지가 계신 사랑방에서 먹는데, 그날은 밖에서 햇볕을 쬐며 먹겠다고 쟁반에 주섬주섬 담아 나왔다. 아무것도 못 하고 무기력하던 아들이 부산을 떨고 있으니 오히려 기특했는지, 어머니는 알고 계시지만 눈감아 주시는 눈치다. 세상 뜨기 전에 인간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 서선생은 복도 많은 녀석이다.


  헛간 바로 옆 햇볕이 드는 쪽에다 곡식이나 여물을 담아 나르는 삼태기를 가림판으로 삼았다. 깨진 종지 그릇에 흰죽을 두 숟가락 정도 떠 놓고는 서선생을 기다렸다. 나 혼자서 죽을 거의 다 먹었을 때, 서선생이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낸다. 반갑기는커녕 완전히 쇠진한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목이 뜨겁다.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자신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듯, 서선생의 모습은 태연스럽다. 이전처럼 눈으로 말한다. 고맙다는 말 이외는 달리 전할 말이 없단다. 그러고 나서는 죽을 먹기 시작했다. 흐르는 죽이라서 목구멍에 넣기 힘든데. 어찌어찌해서 반 숟가락 정도 달게 먹고는 돌아선다. 힘겹게 서너 발짝 옮기더니 고개를 살짝 돌려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느릿느릿 헛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내가 본 서선생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별인가 싶은 스산한 느낌이 뇌를 싸늘하게 적시지만, 

  어린 나로서는 애써 피하고 싶은 불길한 예감이 아니던가. 


  다음날도 나는 정오가 되면 늘 점심을 차려내시던 우리 어머니처럼, 서선생의 점심인 군고구마를 그 자리에 놓았다. 하지만 사라진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다음날 가보면 고구마는 보이지 않는다. ‘서선생이 저녁으로 먹었을 거야.’ 다른 쥐가 먹었음이 틀림없지만, 불길한 현실을 외면하는 해석이다. 며칠 동안이나 나는 서선생에게 그렇게 점심을 차려주었다. 맛있는 오찬을 즐긴 놈은 쥐새끼 같은 다른 쥐였지만 말이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그 짓도 그만뒀다. 당연히 무료함이 엄습한다. 벽에 세워둔 삽이 보인다. 그렇다! 시신이라도 수습해서 묻어주자. 


  헛간을 샅샅이 뒤져도 찾지 못했다. 서선생에게 죄를 지었다.

  하늘나라로 갔는지 열반에 들었는지 그는 끝내 세상을 떴고,

  무기력했던 나는 서선생과 교류하면서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복사뼈가 묻힐 정도로 심각했던 부기도 어느덧 쏙 빠져버렸다.


  서선생은 세상 떠나는 저승길에 매일 밥상을 차려준 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완치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떠났을 것이다.

  초가을부터 앓기 시작한 신장염은 그렇게 씻은 듯 나았다.

  죽을 맛이던 죽을 내려놓고 쌀밥을 씹어 먹으니 꿀맛이다.


  5일간의 우정을 정리하고

  내가 다시 학교에 가던 날은

  추수 끝난 들판의 허수아비가     

  조금은 추워 보이던 초겨울이었다.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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