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을 받아들였다면 그다음 순서는 상대에 대한 감정을 저 멀리 동구밖에 던져 버리는 일이다.
사랑, 애정, 감사, 연민, 실망, 미움, 서운함.. 그런 감정들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O월 O일 점심시간에 은행을 갔더랬지’라고 기억하듯 그와 한때 함께 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무감각한 기억만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
기껏 진흙을 물밑으로 가라앉혀놓고 맑은 물만 보이길 기다렸는데, 순간 삐끗한 감정에 휩쓸려 그 평온을 휙 건드리기라도 하면 다시 흙탕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미련하게도 아주 대단한 일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우연히 듣게 된 노래가사나 SNS의 광고인지 아닌지 모를 글 따위에 말이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더 이별에 힘들어한다.
라는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글 귀에 갸우뚱했다.
- 정신적인 미성숙이라는 게 과연 상대를 향한 숭고한 믿음, 진심을 다하는 마음에 비례한다는 뜻인가?
- 그러므로 미성숙한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한다는 뜻인가?
- 그렇다면 성숙한 사람일수록 덜 사랑하고 이별 앞에 덤덤하다는 말인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짧은 글에 나는 관대하지 못하고 괜시리 마음이 쓰였다.
그는 나보다 언제나 훨씬 성숙한 사람이었기에.
또다시 봄을 타고 사랑이라는 향기가 불어왔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긋지긋할 만도 한데
그 봄 이라는 녀석이 이리저리 오래도록 나를 살피다가
”너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
한마디 말을 건네었을 때
너무 지쳐서 안쓰러웠던 내 마음을 당장이라도 꺼내놓고 쓰다듬어 달라고 떼쓰고 싶었다.
오래도록 사랑에서 고립된 나를 구원시켜 주길 바랬다.
언젠가 유기견보호소에서 보았던 강아지들의 눈빛처럼 제발 나를 택해 달라 듯 바라봤고, 그 간절했던 눈빛을 읽었던 그 새로운 봄은 나에게 따스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구원자의 손을 잡은 건 너무 성급했다.
봄에게서 차가웠던 겨울의 모습을 찾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봄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겨울이 되어 나를 떠나고 말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졌다.
난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달콤한 봄비를 기다렸다.
최소한 지난 감정을 어느 구석에 쑤셔 넣고 꺼내보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아직 다른 이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사랑을 주지 못하면서 받기만을 바라는 후안무치한 여자이고 싶지 않다.
다만, 나를 돌아보고 지난 사랑을 온전히 보내기까지 애도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천진난만한 봄에게 미안했다.
봄이 주는 따스함은 아직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헤어짐을 머리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감정을 던지는 과정 앞에서 나는 고장 난 채 멈춰있다.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전화번호를 지웠다가 다시 저장을 해보고
카톡에서 숨김을 해놨다가 다시 해제를 하고
혼자 쉐도우복싱을 하며 삐그덕 삐그덕 거린다.
그런 부족한 내가, 오늘도 성숙한 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한다.
요즘은 일에 지치진 않는지.. 저녁은 잘 챙겨 먹는지.. 그때 고민하던 일들은 잘 해결되었는지.. 지금 네 맘을 괴롭히는 일이 있지는 않은지..
잔잔하던 기억의 모퉁이를 또 쓸데없이 휘저어 내 마음은 오늘도 진흙탕으로 만들어 놓은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