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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Y Sep 02. 2024

결혼식

엄마는 마음을 잡지 못하는 나를 전남편이 혼자 살고 있던 아파트로 결혼식 할 때까지 미리 들어가 살고 있으라며 짐까지 챙겨서 등 떠밀어 보냈다.

나는 전남편과 그 아파트에서 같이 지내면서 조금만 다투면 결혼을 안 하겠다고 트집을 잡아봤지만 정해진 날짜를 바꾸는 데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나를 데리고 갔다.


결혼식을 이틀 앞두고 전남편은 나를 친정집에 데려다주며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하루 푹 쉬고 있으면 결혼식날 새벽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4인방이 모였고, 친구들은 모레 있을 내결혼에 걱정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 중에 가장 처음으로 신부가 되는 내 체면을 생각해 신부 하객으로 무슨 옷을 입으면 좋을지를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내 결혼식에 들떠있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녀들이 난리를 치며 만류했지만 나는 그날 술을 들이켰다. 이틀뒤면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젊은이처럼 나의 동네에서 나의 친구들과 항상 함께 보내던 낯익은 공간과 시간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의 마음은 오빠에게까지 뻗어가고 있었다. 나는 참고 참다 결국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러 가겠다는 말을 했다. 오늘이 아니면 이제 시간이 없었다.






처음 어색하게 단 둘 만의 만남을 하던 그날처럼 우리는 마주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술잔에 찬 술보다 더 많은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서로 하염없이 울다 오빠가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울다가 결혼식날 예쁜 얼굴 안되면 어쩌려고 하냐며 너는 울지 말라고 우는 건 오빠가 하겠다고 했다.

.

웨딩드레스 입을 모습이 얼마나 예쁠지 매일 상상하고 있다고 했다.

.

만약 나중에라도 아프거나 힘들어서 돌아오고 싶을 때가 있으면 꼭 오빠에게만 돌아와 주면 된다고 했다.

.

평생 나만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잘 살아 달라고만 했다.

.

.


날 아프게 했던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나를 사랑해 주던 찬란했던 날들 속 오빠 얼굴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눈물에 가려 모든 사물이 흐릿했지만 오빠의 눈 속은 오직 나로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빨리 후해해 줬더라면 그리고 조금만 빨리 돌아와 줬더라면 이런 날은 우리에게 없었을 텐데.


해가 뜰 때까지 둘이 마주 보고 울기만 하는 우리에게 차마 말을 걸지 못하던 술집 사장님이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영업종료를 알렸고, 겨우 그 자리를 일어나 나왔을 땐 환한 아침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끔찍한 결혼식이었다.


우리의 눈앞에 덩그러니 있는 벤치가 보였다.

낙엽이 날리고 있는 그 쓸쓸해 보이는 자리는 작년 이맘때 오빠를 기다리며 화장을 고치고 앉아있던 그 자리였다. 말 없이 나란히 앉았다.


아주 오랜만에 그 단단하던 어깨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고, 오빠는 내 두 손을 잡은 채 기도라도 하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동안 잠시 꿈을 꾸었다.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재스민 생화의 달큼한 향기가 코끝에서 느껴졌다.


키 크고 멋진 특전사 군인 열명 정도가 군복을 차려입고 척척척 걸어와 예도를 준비한다. 

구령에 따라 신랑 신부가 나오는 길의 양쪽으로 갈라지고는 긴 칼을 높게 들어 올린다. 

들어 올린 칼날의 끝이 반짝하며 햇빛에 비춰 눈이 부신다. 

잠시 후 칼끝을 서로 맞대며 크게 외친다.


“축!!! ~ 복!!!”


그 사이로 오빠의 팔짱을 끼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의 얼굴을 하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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