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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EP01. 불안과 기대 사이

첫 목적지는 로스앤젤레스

by 임지훈


첫 목적지는 로스앤젤레스


이번 여행의 메인은 중남미였다. 하지만 멀리 아메리카를 왔는데 미국을 안 갈 수는 없지. LA에서 2박 3일간 맛보기를 한 후 다음 여행지로 떠나기로 했다.


LA국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성조기. 미국의 입국심사는 빡새기로 유명하다.


눈을 비빈 채 내린 LA국제공항.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큰 성조기는 내가 미국에 왔음을 실감하게 했다.

'미국 입국심사에서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 '한 시간 동안 붙잡혔다.' '일부러 트집을 잡고 안 보내준다.' 등등 운이 안 좋으면 미국 입국심사가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후기를 많이 봤다. 최악의 경우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후기까지. 내 여행이 입국심사 때문에 시작도 전에 끝날 수는 없다는 긴장감과 함께 천천히 몸을 이끌었다.


다행히 아침이라 얼마 기다리지 않고 입국심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동양계로 보이는 입국심사관 앞에서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선량한 여행객임을 어필했다.

"어떤 목적으로 왔니?" "여행하러 왔어."

"그래 LA에서 가고 싶은 곳 있어?" "할리우드 사인 보려고. 너무 기대돼."

"며칠간 머물다 가니?" "사흘간 머물 거야." "왜?"

응? 왜라니? 어떻게 LA에 3일밖에 안 머물 수 있냐는 항의인 건가? 순간 식은땀이 등뒤로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여기서 당황해서 말이 꼬이면 안 보내줄 거라는 불길한 예상과 함께 어색한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3일 뒤에 멕시코로 멕시코로 가려고. 티켓도 있어." 잠시 침묵을 유지한 심사관은 "오케이. 즐거운 여행해."라는 대답으로 입국심사를 통과시켜 주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회색 빛 하늘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험상궂게 내리는 비까지.

시내를 가려고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어느새 내 뒤로 몇 명이 줄을 섰다. 내 뒤에 있던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안녕 어느 나라 사람이야?" "나 한국인이야." "오 나 한국여행하다 왔는데."

자신을 멕시코인이라 소개한 그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 다음 일본을 갔는데 차선이 반대라 너무 헷갈리더라." "다음에 한국 가면 제주도를 가보려고." "나중에 멕시코 방문하면 칸쿤을 꼭 가봐"

유창한 영어를 쏟아낸 그녀였지만 나는 폭풍 같은 영어에 당황을 한 탓인지, 아니면 아침 7시라 뇌가 굳은 상태인 건지. 원활한 대화에 실패한 채 대답만 열심히 했다. "응 꼭 가볼게." 이 대답을 마지막으로 그녀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지 차라리 영어가 그리워질 줄은...


멕시코 그녀의 뒤로 한국 여성분이 있었다. 같은 에어프레미아 비행기를 타고 온 그녀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남미에서 두 달 정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하니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의사이신 건 아니죠?" (이때가 의사파업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ㅎㅎ"




지하철: 음침함의 초상

20240220_094035.jpg 공항버스에서 내려 도착한 유니온 스테이션역

공항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유니온 스테이션이라는 곳이었다. 구글맵은 이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구글맵의 친절함에 꼬장이라도 부리듯 지하철 내부는 밖의 하늘보다도 더 어두운 분위기였다.

약에 취한 채 비틀거리고 있는 흑인, 병약한 아시아계 노인, 눈에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홈리스까지 영화 조커에 나온 지하철이 연상될 정도로 어둡고 음침했다. 지하철 내부는 흰색의 조명이 있긴 했지만 어둠을 걷어내기에는 턱 없이 모자랐다. 대마초 냄새와 꿉꿉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내 위험센서는 빨리 내려야 한다는 신호를 주었다. 최대한 벽에 기댄 채 저들을 자극하지 않게 눈을 감고 청각에 의지한 채 내릴 타이밍만 기다렸다.




작은 한국 코리아타운

20240220_11033222.png 외국에서 보는 한글은 감회가 남다르다

역에서 내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BTS와 블랙핑크 유럽여행하면서도 K-POP이 내 생각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인기라는 걸 느꼈지만 미국에서도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런데 주변을 쓰윽 둘러보니 너무나도 익숙한 한국어들이 길가에서 보였다. 그리고 이곳이 어디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LA 코리아타운에 온 것이다.


여행하면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여권? 여권이야 재발급받으면 되지만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인터넷. 아직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유심칩을 구입하기 위해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눈앞에 보이는 T-모바일. 누가 봐도 통신사였고 망설임 없이 들어섰다.

"유심칩 사려고 왔는데요." "며칠짜리가 필요해?" "미국은 3일 정도 있을 거예요." "3일? 최소가 1주일인데 "

"아 그럼 혹시 멕시코에서도 사용가능한 유심칩이 있을까요? 제가 3일 뒤 멕시코로 가거든요." "멕시코에서도 쓸 수 있는 유심? 있지. 근데 더 비싸. 괜찮아?" 어차피 미국에서만 쓰는 유심도 그리 저렴하지는 않았고, 멕시코에 도착하면 저녁이기 때문에 치안도 걱정됐기 때문에 흔쾌히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그걸로 주세요." (그리고 이 유심은 멕시코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아직 숙소도 도착하지 않았지만 유심을 구매한 덕택인지 긴장이 확 풀렸다. 긴장감을 놓아서인지, 몇 시간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인지 허기가 크게 느껴졌다.

나영석 PD님의 '채널 십오야' 채널에서 진행한 '이서진의 뉴욕뉴욕'에서 이서진 님이 했던 말이 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시차적응하는 데는 딤섬이 짱이라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코리아타운. 역시 시차적응에는 아시안음식 그중에서도 한국음식이 최고 아니겠는가. 코리아타운이라 그런지 수많은 한식당들이 있었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국밥집이었다.


20240220_102726.jpg 선농단에서 먹은 도가니탕

사실 난 한국에서 그리 국밥을 즐겨 먹지 않는 편이다. 근데 비가 와서일까 아니면 미국에 왔기 때문일까. 미국에서 먹는 첫끼를 국물과 밥 한 톨 없이 남김없이 해치웠다. 깍두기도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시원 달달했고 국물은 도가니탕 특유의 고소함이 느껴졌다. 외국에서 먹는 한식은 언제나 감동이다. 거기에 가격도 팁과 세금 포함 20달러 정도였으니 미국에서 먹는 한식치고 가격도 저렴했으니 감동은 두 배.




배를 채웠음에도 시간은 아침 9시쯤. 체크인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호스텔 직원은 지금 마침 빈자리가 있다며 흔쾌히 체크인을 해주었고, 숙소이용에 대한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짐을 정리한 후 침대에 몸을 뉘었다. 아직 밤이 되려면 아주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침의 피로가 밀려온 덕에 나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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