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페루] 쿠스코로 향하는 길

24시간 여정의 시작

by 임지훈

[24시간 여정의 시작]

KakaoTalk_20241114_195710227.png 살타-우유니보다 더 길어진 우유니-쿠스코 루트

우유니에서의 마지막 투어가 끝이 났다. 데이투어를 함께한 사람들은 서로의 남은 여행에 안녕을 빌어주며 다시 각자의 여행에 돌아갔다. 현재시간 오후 8시, 버스시간까지 약 한 시간 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아침에 미리 아리엘투어 사무실에 맡겨놓았던 가방을 메고 근처의 식당을 찾아 나섰다.


마침 근처에 햄버거를 판매하는 식당이 있었다.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그런 프랜차이즈 버거집은 아니고, 피자와 버거 등 이것저것 취급하는 식당에 가까운 형태였다. 물론 우유니의 식당들이 그러하듯 맛은 큰 기대를 하면 안 됐다. 하지만 오늘은 9시간 동안 라파즈로 이동 후 15시간 동안 다시 쿠스코로 이동하는 장거리 일정. 배를 든든히 채워놓아야만 했다.


20240317_210700.jpg 경고! 소지품 주의!

배를 채우고 버스터미널에 가니 거의 버스출발시간에 근접해 있었다. 버스에 올라서니 도둑을 조심하라는 듯한 경고문이 크게 붙어있었다. 아직까지 여행 중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아 긴장이 풀어진 게 없지 않아 있었는데 경고문을 보니 정신을 다시 한번 다잡게 되었다.


남미에서는 버스회사마다 버스의 컨디션이 제각각이라 운이 안 좋으면 상태가 꽝인 버스에 당첨될 수 있었지만, 다행히 오늘의 버스는 남미에서 탄 어떤 버스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덕분에 의자를 힘껏 제친 후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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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시간보다 라파즈에 살짝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다음 쿠스코행 버스를 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만약 길이 막혀 쿠스코 버스를 타지 못하게 되면 라파즈에서 1박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이런 플랜 B를 가동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라파즈는 최대 4,100m(!)에 달하는 높은 고도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였다. 그 명성에 걸맞게 라파즈의 아침풍경은 구름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구름을 사이로 주항색 건물들이 얼굴을 내비치고 있는 풍경이 상당히 인상적인 곳이었다.

KakaoTalk_20241118_153056684.jpg 밑에서 바라본 케이블카

라파즈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바로 케이블카였다. 지하철을 건설하기에는 라파즈의 지반 상태 그리고 볼리비아의 경제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했기에 케이블카를 건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라파즈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를 보고 있다 보면 어지럼증이 생기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라파즈에 대한 짧은 감상을 뒤로하고, 쿠스코행 버스 티켓을 끊기 위해 터미널 안으로 들어섰다. 터미널 안에서는 티켓을 판매하는 직원들이 "산타크루즈", "수크레"등 도시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쿠스코!"하고 외쳤다. 이를 들은 직원 한 명이 "쿠스코?"하고 묻더니, 나를 자신의 티켓 창구 쪽으로 데려가더니 티켓 결제를 도와줬다. 조금만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여행이 배는 쉬워지더라.

KakaoTalk_20241118_153056684_02.jpg 라파즈 전경

버스에 탑승하니 창밖으로 라파즈의 풍경이 더욱 잘 보였다. 태양도 어느 정도 고도가 올라와서 그런지 구름도 걷히고 풍경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몇몇 회색 건물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오렌지빛의 건물들이 언덕을 수놓고 있었다. 마치 리우에서 보았던 파벨라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KakaoTalk_20241118_153056684_01.jpg 창밖으로 바라본 라파즈 도로

어느덧 버스는 출발하고 라파즈의 시내를 가로질렀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분노가 가득 찼는지 경적소리를 울려대기 바빴다. 사진에서의 풍경은 그다지 많은 차량이 있어 보이진 않지만 실제론 트래픽젬이 극심했고 그 앞을 가로질러가는 사람들까지 상당히 정신없는 풍경이었다. 사실 내가 상상하던 남미의 모습을 이제야 보았기 때문에 살짝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국경 넘기 그리고 티티카카호수]

20240318_093723.jpg 볼리비아와 페루의 국경

얼마 달리지 않아 볼리비아와 페루의 국경에 도달했다. 나라마다 국경을 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일단 모든 승객이 내려야 했다. 각자의 짐을 모두 들고 내린 후 차례로 입국심사대 앞에 줄을 섰다. 입국 심사 질문자체는 크게 어려운 건 없었지만 승객들이 많다 보니, 짐검사와 입국심사에 시간이 꽤 소요됐다. 질문은 기껏해야 "며칠간 페루에 머물거니?" 정도였고 "10일 정도"라는 대답에 바로 심사는 끝이 나는 수준이었다.


모든 인원이 문제없이 입국심사가 끝나자 다시 버스에 짐을 싣고 올라탔다. 드디어 남미 여행의 마지막 국가 페루에 입국하는 순간이었다.

20240318_112212.jpg 티티카카호

버스에 올라타고 창밖을 바라보니 거대한 호수가 눈에 보였다. 배가 지나다니는 호수 중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하는 호수인 '티티카카'호수였다. 남미여행자 중에는 이곳 티티카카호 주변의 '푸노'라는 도시에서 숙박을 하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꽤나 유명한 곳이다. 나는 내심 이곳에 잠깐 정차해 식사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했지만 안타깝게도 버스는 빠른 속도로 이곳을 통과했다. 여기 송어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휴게소?]

KakaoTalk_20241118_162412116.jpg 라파즈와 비슷한 푸노의 주황색 집들

오후 3시. 버스에서 자체적으로 나눠주는 빵과 음료가 있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챈 듯 버스는 잠시 정차한 후 20분 뒤 출발한다고 했다. "Veinte(20)" 이 말만 알아먹었지만 실제로도 20분 뒤 출발했으니 내가 이해한 게 맞긴 했다.


이곳에선 식당과 환전을 겸해서 해주고 있었다. 주머니에 있던 300 볼리비아노. 약 5천 원 정도를 탈탈 털어 페루 돈으로 환전하고, 곧바로 식당을 이용했다. 이 식당에서 파는 메뉴는 몇 개 있었지만 '치킨파스타'라고 써진 메뉴가 눈에 띄었다. 아주머니는 10솔(3600원)정도의 돈을 받고는 곧바로 파스타 제조에 돌입했다. 스테인리스 뚜껑을 열더니 접시에 파스타면을 담고 닭도리탕 같은걸 위에 끼얹었다. 치킨이 있긴 했으니 치킨파스타이긴 한데 내가 상상한 비주얼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날 깨달았다. 이건 먹지 말았어야 했음을


식사 이후로도 지루한 드라이브는 계속되었다. 오프라인 저장해 놓은 유튜브도 보고, 음악도 감상하고,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몇 번이고 둘러보았지만 그래도 목적지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자 시간은 더욱 천천히 흘러가고 그것도 모자라 거꾸로 흐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군대에서 전역일수를 계산하는 것처럼!


굳은 몸을 풀어줄 겸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유니에서 버스를 탄게 저녁 9시, 페루와 볼리비아의 시차 1시간을 고려한다면 24시간의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길가에 차량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뒤척대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도를 열었더니 위치는 쿠스코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장 24시간의 여정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잉카의 나라 페루. 이곳에선 어떤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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