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EP05. 무지개산 비니쿤카

지구온난화가 만든 이질적인 풍경

by 임지훈

[지구온난화가 만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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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에 온 이후로 며칠간 새벽기상을 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여기서 즐길 수 있는 투어가 그만큼 많다는 거겠지. 오늘 방문할 곳은 무지개산으로 알려진 '비니쿤카'이다. 발견된 지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관광지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는 눈으로 덮인 설산이었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에 눈이 녹아 사라지면서 자신의 민낯을 대중에게 드러낸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그저께 비니쿤카를 방문하려 했던 사람들은 눈이 갑자기 내려서 투어가 취소됐다고 하는데 오늘은 다행히 투어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오늘은 리우에서 동행했던 친구와 일정이 겹쳐 함께 투어를 이용하게 되었다. (사실 글로는 담지 않았지만 이과수에서도, 엘칼라파테에서도 한 번씩 더 만났다.)


새벽 4시부터 기상을 해서 그런지 차 안에서 그대로 잠에 들었다. 쿠스코에서 출발한 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중간에 차가 멈춰 섰다. 생각보다 아침밥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다. 기본적인 호텔 조식 정도의 퀄리티? 식빵과 토스트에 넣어먹는 다른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고산병을 예방해 줄 코카잎도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을 너무 배부르게 먹으면 고산병이 올 수 있다는 글을 읽었기에 적당히 등산에 도움이 될 정도로만 가볍게 먹고 각오를 다졌다.



[숨이 자꾸 멎는다]

20240323_095123.jpg 등산 시작!

아침식사 후 차량은 다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자 어느덧 등산로 초입에 정차했다. 정상은 해발 5천 미터에 달했고, 이미 현재 위치도 4천 미터가 넘는 곳이었기 때문에 고산병에 예민한 사람은 깜짝 놀랄만한 높이였다.


엊그제 눈이 내려 투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후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길은 순탄했다. '이 정도면 굳이 말을 타지 않고도 올라갈 수 있겠는데?'

여행을 하면서 언제나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었다. 남들이 등산 장비를 풀로 세팅하고 올라가는 피츠로이도 운동화와 나무 막대기 하나로 등정했고, 우유니에서 처음 고산지대를 맛보았을 때도 숨이 조금 차는 것 말고는 고산병 증세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20240323_095751.jpg 라마 알파카 비쿠냐 좀 많다...

등산로 주변에는 수많은 알파카와 라마, 비쿠냐들이 떼 지어 있었다. 어제 마추픽추에서는 고작 몇 마리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했는데, 확실히 해발 4천 미터 이상이 주 서식지라고 하더니 엄청난 수가 떼 지어 모여 있었다. 푸른 풀밭 위로 남미에서만 볼 수 있는 녀석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 조차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20240323_100819.jpg 말을 끌고 내려오는 마

하지만 이런 마음속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산병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고 생각했지만 5천 미터에 달하는 고도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10분을 걷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위를 살펴보자 말을 끌고 내려오는 마부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말을 타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2만 원이 넘는 금액을 태우기에는 아직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20240323_102644.jpg 산에 오르는 중간 잠시 한 컷

잠시 숨 고르기를 끝내고 다시 정상을 향해 발을 옮겼다. 어느덧 앞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무지개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지만 정상에 다다를수록 숨찬 정도는 더더욱 심해졌다. 정상에 거의 다 와가자 모두들 무릎을 붙잡고 등산을 이어갔다.


심장이 멎을 정도로 뛰는 탓에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에 다다르자 이런 고통도 잊을 만큼 멋진 풍경에 넋을 잃었다.


20240323_105752.jpg 비니쿤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고무찰흙을 겹겹이 쌓아 놓은 듯한 모습은 각 색깔이 파도치는 것처럼 일렁거리는 듯했다.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검은색 등등 각자 자신을 뽐내려는 듯 색을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야 장관이다 장관" 자연이 만든 이질적인 풍경에 감탄을 하며 나도 모르게 쏟아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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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올라왔으니 사진은 남겨야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곳일 수도 있기에 나는 사진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사진으로만 보면 뒷산에 오른듯한 가벼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마치 '비니쿤카 별거 아니네!' 하는 표정으로


30분 정도 풍경을 둘러봤을까? 가이드는 이제 내려갈 시간이라고 우리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집은 가야지.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훨씬 수월했다. 급격하게 뛰어가지 않고 페이스대로 천천히 걷기만 했더니 어느새 차량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올라왔던 곳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느낌이었다.


비니쿤카에서의 일정이 끝난 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한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식사의 장소는 아침식사를 했던 장소와 동일한 곳이었다. 이제는 고산병의 위험도 없었기에 만족스러울 정도로 밥을 먹고 배를 두드렸다.



[쿠스코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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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을 끝낸 우리는 5시가 되어서야 쿠스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함께 동행했던 친구에게 "저녁을 함께 먹을까?" 하는 제안을 했지만 이미 저녁 동행을 구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구먼' 이런 생각을 하고 누구랑 먹는지에 대해 물었는데, 여자 동생이고 어제 마추픽추를 다녀온 사람이라고 했다. '응? 뭔가 내가 아는 사람일 것 같은데?' 나는 카톡을 보여주며 혹시 이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역시나 어제 함께 마추픽추를 올라갔던 그 친구였다. 쿠스코 참 좁다 좁아.


그 결과 나도 저녁에 함께하게 되었다. 우리는 쿠스코 야경을 보고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택시를 이용해 쿠스코의 예수상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쿠스코의 정상에서 바라본 야경은 역시나 노란 조명이 수놓은 듯이 아름다웠다. 며칠 전 언덕에서 본 야경도 아름다웠지만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역시 또 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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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을 본 후 우리는 아이리쉬펍에 들려 간단하게 저녁을 먹기로 했다. 원래 방문하려고 했던 식당이 만석이라 대체재로 방문한 곳이지만 꽤 괜찮은 편이었다. 펍 안에는 요란한 음악이 함께 제공돼 대화를 하는 데는 조금 지장이 있긴 했지만 안주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우린 페루의 유명 칵테일인 피스코 사워를 주문하고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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