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숙소 없이 떠돌기
[쿠스코를 떠나 와라즈로]
쿠스코를 떠나 리마로 떠나는 날. 쿠스코에서는 한창 축제가 진행 중이었다. 시민들에게 "피에스타?(축제?)" 인지 물었더니 "크리스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독교 관련 행사인 거 같은데 뭔지 몰라 찾아보니 부활절을 일주일 앞두고 진행되는 행사라고 한다. 마지막 날까지 특별한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쿠스코였다.
오늘의 행선지는 '와라즈'라는 곳이다. 69호수와 파론호수 등을 트래킹 하는 동네로 트래킹을 위한 거점도시 느낌인 곳이다. 리마에 도착해 와라즈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한 시간의 짧은 비행과 함께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 후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사실상 온전히 하루를 이동에만 써야 하는 날이다.
현재 와라즈에서 파론호수를 방문하는 투어는 공식적으로 막힌 상태였다. 이곳 주민들과 지자체의 갈등이라는 말도 있고, 외지인 입장으로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현재는 오직 한 개의 투어사를 통해서만 파론호수를 방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8시간의 버스이동을 거쳐 와라즈에 도착한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간단히 세수를 한 후, 투어사의 픽업을 기다렸다.
한 20분쯤 기다렸을까? 밴 한대가 터미널 앞으로 오며 나를 픽업하러 왔다. "히훈?" 이제는 남미에서 불리는 이 히훈이라는 이름도 익숙해진 듯하다. 긍정의 표시와 함께 차량에 탑승한 나는 구석에 짐을 실어놓고는 차량의 빈자리에 착석했다.
1시간 반 정도의 차량이동을 거쳐 어느 식당에 들렀다. 지금 바로 밥을 먹는 건 아니었고 파론호수 트래킹 후 먹을 메뉴를 미리 시켜놓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쿠스코에서 자주 먹었던 '로모 살타도'를 주문하고는 트래킹을 시작했다.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아]
트래킹을 시작하자 한 페루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혼자 여행 왔니?" "어디 나라 사람이야?" "페루는 처음이야? 전에 있던 도시는 어디였어?" 등등의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덕분에 트래킹을 하면서도 심심하지 않았던 듯하다.
어느 정도 걷자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 나타났다. 흐르는 강물 위로 나무판자 몇 개가 다리 역할을 하며 놓여 있었다. 안전을 위해 우리는 한 번에 한 명씩 다리를 건너며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론호수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여기서 카약을 타며 호수를 즐길 수도 있지만, 가이드는 멋진 풍경을 감상하려면 좀 더 트래킹을 해서 올라가는 게 더 좋다고 권해주었다.
파론호수의 전망대로 이동하는 길은 꽤나 험난했다. 사실상 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돌무더기를 지나야 만 전망대에 도달할 수 있다. 잘못 디디게 되면 발이 돌 사이로 빠질 수도 있는 길이었기에 속담 그대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며 조심스레 이동했다.
험준한 길을 지나 전망대에 도착하자 파론호수의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파워에이드를 물에 섞은 듯한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이런 곳을 방문하면 '인스타의 보정 떡칠된 사진에 속았구나!'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곳은 사진에서 본모습 그대로였다.
물결조차 없는 평화로운 호수의 모습은 마치 호수 그대로 한 덩어리로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파론호수의 멋진 풍경에 감탄하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페루친구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줄까?" 물었다. 사진을 남기기 힘든 혼자 여행객들에게는 이런 호의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그녀의 디렉팅대로 나는 자세를 취하며 피사체로서 최선을 다했다.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가이드는 내려갈 시간이라고 우리를 재촉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하산을 시작하는데.... 돌길을 내려가는 거 이거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정해진 길이 아니라 돌을 짚으면서 내려가다 보니 올라왔던 루트와는 다른 루트로 올라오는 경우도 계속 생겼다. 나는 발을 헛디디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천천히 내려갔다. 등반보다 훨씬 힘들었던 하산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아침에 방문했던 식당을 다시 찾았다. 아까 주문했던 음식을 먹기 위해 의자에 착석했다. 나와 페루 여성 그리고 그녀의 친구가 한 테이블을 이뤄 식사를 진행했다. 종업원은 음료를 주문할 거냐고 물었고 나는 콜라를 달라고 했다. 종업원은 "잉카콜라? 코카콜라?"라고 물었고 나는 잉카콜라라고 대답했다.
한 친구가 내게 "잉카콜라? 너 완전 페루비안이구나" "응 먹다 보니까 이게 더 맛있어" 이러자 또 다른 친구가 고개를 지우며 "나는 코카콜라가 훨씬 낫더라"라고 부정했다. 이 말을 들은 페루 친구는 나와 그녀의 친구를 차례대로 가리키며 "리얼 페루비안, 노 페루비안"이라며 웃었다.
[다시 리마로]
식사를 끝마치고 밴은 와라즈로 이동했다. 와라즈에 도착했더니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급한 대로 저렴한 숙소에 들려 잠깐만 이용이 가능한지 물었다. 숙소 사장님은 이유를 물었고 나는 "오늘 저녁 리마로 가는 버스를 탈 건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샤워만 하고 나가려고 한다."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친절한 사장님은 12시 전까지만 퇴실하면 5천 원 정도의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연신 "그라시아스"를 외치며 감사를 표했다.
방에서 간단하게 샤워와 핸드폰 충전을 끝내고는 퇴실 후 숙소밖으로 나섰다. 아까까지 무섭게 쏟아지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져 있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을까 하고 근처의 식당에 들러 카드 사용이 가능한지 물었는데 "NO"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 군데의 식당을 들렀지만 모두 같은 대답이 돌아왔고 이는 수중에 얼마 남지 않은 현금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나오는 건 5 솔(=당시 1,800원)
'뭐 못 먹으면 굶고 리마에서 밥 먹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한 노상 피자가게가 보였다. 우리나라의 붕어빵 가게처럼 천막을 치고 장사하는 형태였는데, 피자 한 조각과 콜라 한잔을 3 솔에 판매하고 있었다. 다행히 간단하게나마 끼니를 해결하고는 버스터미널로 걸음을 계속했다.
저녁 10시 30분. 오늘 하루에만 두 번째 버스탑승이다. 쿠스코에서 체크아웃하고 36시간 정도 떠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런 처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안락해서 금방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이후 쿠스코 숙소에서 체크아웃한 지 정확히 48시간 되는 시간. 리마의 숙소에 체크인하며 홈리스 생활이 끝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