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의 첫 해외여행

그때를 회상하며

by 임지훈

두 달간의 여행을 끝내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1년씩 여행하는 사람도 있는데 2개월이 뭐 얼마나 긴 여행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꽤나 보람찬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귀국 후 참 많은 것들을 했던 것 같다. 여행하면서 부족한 체력을 체감한 덕에 운동을 시작했고, 취미로 보컬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미국주식을 시작하며 소소하게나마 돈을 굴리기 시작했고, 또 오랜만에 응원하는 야구팀이 우승해 10번도 넘게 야구직관을 갔던 것 같다. 이직을 하기 위해 평소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쪽을 보완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나름 중견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나가봤고, 당연히도 많은 충격을 받았었다. '이 좋은걸 이제야 해보다니!' 하며

그 시절 부유했던 집이 얼마나 있었겠냐마는 어린 시절 우리 집도 마찬가지로 참 힘들었다. 당연히 해외여행은 꿈도 꿔볼 수 없었고, 가족끼리 변변한 국내여행조차도 없었다. 우리에게 휴가기간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에 가서 일손을 돕는 기간이었고, 그 덕에 학창 시절 방학=시골이라는 공식이 굳어졌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부모님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야간에 대리운전을 뛰는 식으로, 추가적으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어린 나와 동생에게 티를 내지 않고 묵묵히 해낸 게 참으로 존경스럽다.

이런 우리에게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조금 특이했다.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보통 사업하다 재산을 꼬라박고 가정이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많이 접하지만, 대운이 들었는지 아버지의 사업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서울에 상경 후 10년 넘게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던 우리는 드디어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해외여행을 시작한 게. 일본을 시작으로 대만, 중국,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베트남 등 주변에 있는 국가를 폭주하듯(?) 여행했다. 그러다 해외여행에 제동이 걸린 시기가 있었으니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시기' 3년 정도 해외여행이 ALL STOP 된 시절. 그 덕에 해외여행에 대한 욕망은 더더 커져갔다.


3년 정도 지나 어느 정도 해외를 나갈 수 있게 될 무렵. 나는 회사에 한 달간의 무급휴가가 가능한지 의뢰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부탁인걸 알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회사에서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사실 그전에 한 달 휴식을 했던 사람이 있었기에, 이런 부탁을 한 것이긴 하다.)

아무튼 그 덕에 만 30세가 되기 전 유럽을 가보자 하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었다. 한 달간의 해외여행을 마치고 나니 장시간 해외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는 더 여행을 좋아하는구나.'


1년 정도 회사를 더 다닌 후, 퇴사하고 남미여행을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때 생긴 경험과 자신감 덕분일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견문이 넓어졌다느니, 보는 눈이 달라졌다느니, 나의 새로운 자아를 찾았다느니' 하는 거창한 결과물은 적어도 내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올라갔고,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가진 그들에 대한 편견을 부숴주었다. 중국인들은 생각보다 친절했고, 프랑스인들은 생각보다 도도하지 않았으며, 튀르키예와 같은 개방적인 이슬람 국가도 많았다. 매일같이 총알이 날아다닐 것 같은 남미는 적어도 내가 여행하는 동안에는 전혀 총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사람들 역시 친절했다. 내가 가진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던지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장기간의 여행은 헛된 경험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때와 같은 장기여행을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은퇴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려나? 하지만 40대가 되고 50대가 되어도 이때의 경험은 평생 못 잊겠지 싶다. 언젠가 다시 장기간 여행에 나설 그날을 위해 돈이나 계속 모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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