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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바트로스 Oct 16. 2024

17. 174년 지혜로 쓴, 편지 위력!

카페 앞 강변에는 붉은 양귀비꽃이 바람에 나부낀다.

너무도 선명한 그 선홍빛은 볼 때마다, 울컥해지는 꽃! 

붉은 빛깔이 마치 닭 벼슬 같다고, 프랑스에서는 꼬꼬리꼬로 불린다.

꼬꼬닭이 목청 좋은 울음소리로 긴 밤을 일깨우는 것처럼, 때론 진홍빛인 꽃은 영혼의 심층 바닥에 짓눌린 이방인의 설움도 깨어나게 만들 만큼 곱다. 

울적할 때마다, 검붉게 멍든 상처를 꼬꼬리꼬에게 토로했을 정도로.     


꼬꼬리꼬가 핀 강변 산책길에 만난, 할머니 수녀 폴(Paul).   

강변도로 건너편, 카페에 인접한 성심수녀원에 주거하는 중이라고 했다. 

교황이 프랑스에 올 때마다 방문할 정도로 종교적 역사가 깊은 수녀원이지만, 가톨릭 전성기가 지난 지금은 은퇴 수녀님들만 거주한다고 했다. 

폴수녀와 처음 만난 뒤부터, 자주 강변에서 만났던 우리.

미리 약속을 정하지 않더라도, 창문을 통하여 산책하는 그녀 모습이 보인다. 바쁜 일이 없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산책 길벗이 되었다. 

소꿉동무처럼 속닥거리며 친숙해져 가던 어느 토요일, 

“내일 수녀원 주일미사에 올 수 있나요?”

“기꺼이, 가지요.”     


처음으로 방문하던 날, 수용 가능한 인원이 450명이라는 정문에 새겨진 글귀와 많은 할머니수녀들이 미사에 참석한 광경에 연이어 놀랐다.

미사 후에는, 수도원 뒤쪽의 넓은 정원에서 수녀님과 함께 철없는 아이들처럼 소곤거리고, 깔깔대며 놀았다.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정원에는 다양한 꽃들이 만발하고, 포도들은 단내를 풍기며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수녀님이 천진스러운 미소로 나를 보더니

“우리, 포도 따먹을까요?”

은근히 기다리고 있던 제안이다. 찜 해둔 포도를 따는 나를 보고,

“그렇게 큰 송이는 따면 안 돼요. 작은 것부터 따야 해요.”

“왜, 안 돼요?”

“큰 송이는 다른 사람이 먹도록, 남겨두어야 해요.” 

그 말에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구시렁거릴 정도로 이기적이었던 나. 

이렇게 생각도 나이도 생활도 다른데도, 소꿉동무처럼 함께 잘 노는 사이다.     


어느 일요일 미사 끝난 뒤에 귀가하려는, 내 귀에 소곤거리는 그녀,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어요. 함께, 내 방에 가요. 그런데, 외부인 출입금지구역이에요. 눈에 띄지 않으려면,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거실 복도를 재빨리 지나가야 해요.”

철없는 꼬맹이들처럼 반쯤 기듯이 꾸부린 채로, 거실에서 차 마시는 수녀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작은 독방에 들어서자마자,

“자, 지금, 보여 줄게요.”

갑자기 머릿수건을 벗으며, 

“내 머리 스타일 어때요? 거울 보며, 내가 커트했어요!” 

“대단한 솜씬데요. 헤어디자이너해도 되겠네요!”

한참이나 킥킥거리는 우리는, 그냥 철부지들이었다. 

뒤질세라 나도,

“아까 미사 때에, 내 옆에 수녀님이 계속 코를 킁킁거렸어요.

향수 뿌리고 왔다고, 못마땅한 눈초리로 노려봤어요.”

”평생 수도하는 수녀도 가장 못 버리는 것은, 자기 성깔이랍니다. “

동시에 큰 소리로 웃어댈 정도로, 서로 잘 통하는 사이다.     

  

강변으로 내가 산책가지 않는 날은 걱정된 폴 수녀가 카페로 찾아오면, 욜랑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욜랑이 그녀의 방문을 꺼리는 이유는 ‘나에게 수녀 돼라’고 꼬시려 온다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반기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눈치챈 수녀님도 욜랑을 무서워했다.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성실한 문지기처럼 차단하며, 수녀님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막아서던 욜랑.

그뿐만 아니라 일요일 성당 미사 가는 것도, 그다지 탐탁해하지 않았다.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바람직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 

대학 옆에 있는 중세시대에 건립된 웅장한 주교좌성당에서 매일 저녁 6시 미사전례에 참석한 뒤에 카페로 귀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녀다.      


욜랑의 남편이 20년 만에 귀가한 날, 다음날 곧바로 퇴거하는 바람에 수녀님과 작별인사도 못한 채로 떠나왔다. 카페 밖에서 서성댈 그녀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사라지지 않는 불편심.

당장 입을 옷과 책만 꺼내서 대충 정리한 뒤에 수녀원을 방문했다.

너무나도 반가워하던 수녀님은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들으며,

”세상에, 가엾어라!”를 연발했다.

미사 후에 그녀와 함께 방문한 홀로 사는 장애인 할머니도,

”그동안 왜 안 왔어요? “

”갑자기, 이사 갔어요. “     


두 분이 한참이나 서로 쏙닥쏙닥 하는 동안, TV를 보고 있던 나.

귀에 들리는 이야기는 전혀 현실성 없는 내용으로 ‘웃차사’ 수준이었지만. 

대놓고 소금뿌리는 말을 차마 못 하고, 못 알아들은 것처럼 잠자코 있었다.

마침내, 결론이 났나 보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내게로 다가온 수녀님,

”이 친구가 달필이에요. 시장님에게 편지를 보내자고 하는데요? “

”싫어요! “

”왜요? “

”그냥요. 편지 보내기 싫어요. “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2주 안에 숙소를 구할 대책은 있나요? “

”없어요. 그래도, 이 얘기는 더 이상하고 싶지 않아요! “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나날들이다.

귀국할 심산으로 짐을 다 풀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이유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눈 내리깔며 살고 싶은 마음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욜랑이 내린 퇴거 통보의 충격은 배신감으로 바뀌면서, 마음이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던 것이다. 

시간의 기차에 몸과 맘을 맡긴 채, ‘될 대로 돼라’는 자포자기 심정이었고. 

모든 사람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다 삐딱하게 내 눈에 비치던 시기였다. 

그 누구도 단죄할 권한이 내게는 없고, 또 누구도 나를 따뜻이 맞이해야 할 의무가 없는데도. 그냥 고슴도치처럼 뿔이 솟았던 것이다.

내가 언제 고단한 이방인을 따듯이 맞아들인 적이 있었나?

아무런 섭섭해야 할 이유가 없다. 사실은 궁색한 내 처지에 자꾸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없는 놈, 쳐다봐도 운다고 했던가? 

그 ‘없는 놈’은, 바로 나였다.  

수녀님의 안타까운 눈빛에도, 짜증이 났다.     


일주일 뒤 일요일 미사 후.

수녀님이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수도원 뒤쪽 정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수도복 주머니에서 꺼낸 편지 한 통을 내밀며, 읽어보라고 했다.

깨알 같은 필체의 꼬불꼬불한 손 편지다. 뭔 내용인지 알고 싶지도, 읽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었다. 그냥 편지를 되돌려 주는 나를 향해,

”지난번 그 친구가 시장님에게 쓴 편집니다. 동의만 해주면,  마드모와젤 이름으로 편지를 부치려고요? “

수녀님의 애원하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났다.

애원하고 매달려야 하는 장본인은 나인데,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다.

쥐뿔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대신에 오히려 고집스러운 고슴도치의 어깃장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알아서 하세요! “

퉁명스럽게 어투로,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러나 편지의 결과는 1%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프랑스에서 공공아파트 입주는 20년~30년 기다리는 현실이고,  따라서 기다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나.

프랑스에 거주하는 동안 아파트를 신축하는 광경을 본 적도, 이미 건축된 아파트를 본 기억도 없을 정도다. 

도시 전체가 아파트 숲인 한국과는 전혀 다른, 눈에 띄지 않는 아파트다. 

두 분의 할머니들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쓰는 따뜻한 마음, 특히나 수녀님이 내 손을 꼭 잡고 간곡히 부탁하는 것을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다.  

수녀님은 그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 충분히 감지하고 있던 나.

본인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값진 양피지 성서, 몽블랑 만년필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받은 50프랑까지도 스테이크 사 먹으라고 몽땅, 나에게 주신 분이다.

나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보다 정확히는 주변 사람을 걱정시키는 나의 곤궁한 처지가 싫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하니 와버렸다.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은 마음.

귀국할 결심을 확실히 굳힌 다음, 짐을 싸고 있었다.

내 눈에 꼭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물건들은 과감히 중인데도, 마음에 생긴 상처는 아무리 애를 써도 버려지지 않던 날들이다.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도서관의 쥐’라고 불릴 만큼, 매일 가던 도서관도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뒤죽박죽 엉켜있는 내면을 들킬까 봐서다.

더 정확히는 누군가 낯익은 얼굴을 보면, 꾹꾹 눌려놓은 서글픈 마음을 흙탕물처럼 쏟아 낼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꼭 가지고 갈 것들만 챙겨서, 짐 싸기를 마무리하던 날.      

수녀님과 헤어진 일주일 뒤에 걸려온 낯선 전화 목소리.

”시청 행정관입니다. 000 본인 맞으세요? “

”네, 그런데요. “

”다음 주부터, 편한 날짜에 00 공공 아파트에 입주하세요! “

두 분 할머니가 진심을 다하여 쓴 편지가 행정관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다.

87세 동갑내기인 두 할머니가 살아온 햇수를 합치면 174년.

174년 동안 축적된 지혜로 쓴, 편지 한 통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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