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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 May 20. 2024

인조인간 우리 엄마

3화. 사소한 모든 것에 대한 의문


 요즘 엄마와 나는 텃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식물의 생명력은 신비로워서 심고 며칠만 지나면 작은 싹이 빼꼼 삐져나온다. 처음에는 저게 채소 싹인지 잡초인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렇게 심은 열무는 씨앗 뿌린 지 한 달 만에 뽑아 김치를 담았다. 뽑아낸 자리에 다시 씨앗을 심었더니 3일 만에 싹이 나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다시 열무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열무뿐 아니라 고추, 가지, 오이, 호박, 고구마, 옥수수, 당근도 매일 쑥쑥 자라고 있다.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텃밭을 한 바퀴 둘러보며 얼마나 자랐나, 어디 상한 곳은 없나 살피는 재미가 들기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는 혼자서는 앉거나 일어서지 못하지만, 땅에 앉혀 놓으면 팔에 의지해 옮겨 다니며 풀을 매고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는다. 나는 옆에서 비닐을 씌우고, 이랑도 만들고, 물을 주는 등 움직이며 하는 일들을 처리한다. 엄마가 방안에 누워만 있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뭔가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하며 오순도순 우리의 반찬거리를 기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텃밭 일을 할 때마다 난 엄마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한다.

 “엄마, 땅은 얼마나 깊이 파야 해?”

 “엄마, 씨앗은 몇 개씩 넣어?”

 “엄마, 비닐은 어떤 걸 씌워?”

 “엄마, 물은 얼마나 줘야 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생소한 것이기에 사소한 하나하나를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적당히 따라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직접 손을 대고 보니 한 걸음 뗄 때마다 이게 맞나 싶다.     


 엄마 수술 후 집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한 초기에도 그랬다. 엄마를 돌보는 모든 순간이 ‘이게 맞나?’싶은 의문투성이였다.      


 집에 와서 가장 먼저 맞닥트린 고민은 다리 고정 쿠션이었다. 병원에서 사용하던 다리 고정 쿠션과 비슷한 건 찾을 수가 없고, 집에서는 일반 쿠션을 이용하면 된다더니, 실제 생활해 보니 불편했다. 비슷한 쿠션을 찾아다니다 결국 동생이 직접 만들었다. 누워있다 자세를 바꿀 때 어느 정도까지 각도가 내려가도 되는지도 걱정이었다.     


 수술 부위 소독을 하러 가던 날.

동네 병원까지 5~10분 정도 휠체어를 타고 가야 하는데, 보도를 올라갔다 내려갈 때 휠체어가 덜컥해도 괜찮은 건지...... 고관절 수술 부위는 잘 빠질 수 있어 조심하라는 말을 들은 터라 움직이는 모든 순간이 걱정이었다. 휠체어에 방석을 두텁게 깔았지만 움직일 때 통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걱정이었다. 괜찮다고 했던 엄마는 한참 지난 후 ‘사실은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6주간 누워 있어야 하는 터라 가장 큰 걱정은 욕창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침대 위에서 팔다리를 움직이는 운동도 하고, 가능하면 자세도 자주 바꿔주고 땀이 차지 않게 하는 등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면서도 늘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를 닦아주던 중 엉덩이에 작은 뾰루지가 발견됐다.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데, 물컹하지만 물집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처 같지도 않은데...... 엄마는 살짝 쓰라린 것도 같고, 괜찮은 것도 같다는 애매한 답변이었다.

우린 덜컥 겁이 났다.

‘욕창이 생긴 걸까?’

 누워서 요양하는 환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가 욕창이라고 했다. 우린 놀라서 인터넷을 통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병원에 갈 수도 없어 약국으로 달려갔다. 욕창이 의심되는 부위에는 소독약이 아닌 식염수로 씻어야 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인터넷과 약국을 통해 얻은 팁을 가지고 열심히 약도 바르고 관리하며 수시로 확인했다. 엄마는 그 부위에 별다른 감각은 없다는데, 그 작은 물집 같지 않은 물집은 터지지도, 커지지도, 줄어들지도 않은 채 그 위치를 계속 고수하고 있었다. 처음엔 손을 대기 조심스러웠는데, 너무 그대로 있어서 나중엔 대담하게 눌러보기도 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고대로 존재하는 그건 쥐젖으로 결론 냈다.     


 또 어느 날은 엄마가 자다 말고 갑자기 숨이 갑갑하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119를 불러 병원에 가야 하나 싶었는데, 엄마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도 속이 답답하다며 괴로워했다. 동생과 둘이서 한 사람은 엄마를 안고, 한 사람은 팔다리를 주무르며 안정이 되기를 기다렸다. 특별한 통증은 없이, 온몸의 힘이 빠지고 숨이 갑갑하다는 엄마. 이전에도 저혈압 증상이 있었던 터라 다리를 올리고 둘이서 온몸을 주무르며 안정이 되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고지혈증으로 심혈관센터 진료도 병행하던 엄마였기에 병원에 가서 물어봤지만, 별다른 얘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검사 결과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저 우리끼리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휴대용 산소를 사다 놓기도 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병원에서도 그걸 사용할 정도면 응급실로 오는 게 낫다는 얘기뿐이었다. 혹시 공황 증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우리끼리 해 봤지만, 이후 수면장애 때문에 가게 된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그에 대한 진단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큼직한 의문 외에, 엄마가 침상을 벗어나게 된 이후에는 화장실 갈 때 엄마를 어떻게 잡아줘야 할지, 어떤 자세로 부축해야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지, 통증이 있을 때도 운동은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통증이어야 수술 부위가 빠진 걸로 봐야 하는지...... 등 생활하는 모든 순간,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 의문으로 시작해 경험으로 알아가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럴 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병원. 하지만 병원은 의문의 해결점이 아니라 또 다른 의문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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