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심에서 마주친 배롱나무, 찬란하게 빛나는 진분홍빛 향연에 더위도 잊고 꽃들을 마주칠 때마다 환호하며 다가갔다. 살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을 이날 낯선 곳에서 제일 많이 봤다. 골목 곳곳에, 카페 앞 주차장에, 아파트 단지 안에 진분홍색의 옹골지게 피어난 꽃잎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 마음속에도 진분홍빛 꽃이 피어나는 듯하다. 한 여름의 폭염에 그 빛을 더 밝게 발하던 배롱나무.
배롱나무의 다른 이름은 '목(木) 백일홍'이다. 한여름에 피어나 100일 동안 진분홍색의 꽃을 피우기 때문이라고. 배롱나무가 100일 동안 필 수 있는 이유는 한 송이 꽃의 수명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꽃이 지면 바로 다음 꽃을 피워내며 무더운 여름 내내 줄기차게 꽃이 핀다고 한다. 백 일간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궂은 날씨를 이겨내고 예쁜 다음 꽃을 피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배롱나무는, 보는 이들에게 화사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자신이 얼마나 예쁘게 빛나는 존재인지 알고 있을까.
제일 더울 계절에 계속 피어나는 배롱나무의 꽃말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로는 화려한 자태와 어울리는 '부귀', 두 번째는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이다. 배롱나무의 꽃을 처음 봤을 때 두 번째 꽃말이 금세 이해되었다. 떠나간 벗이 혹시라도 돌아올 때 길을 잃지 않고 진분홍빛 빛을 따라 돌아올 수 있게 자신이 낼 수 있는 제일 예쁜 색을 계속해서 내는 게 아닐까 하고. 배롱나무의 색은 한번 보면 지울 수 없는, 진하지만 따뜻한 여운을 가져다주는 색이다.
나도 제일 무더운 계절에 빛나는 배롱나무 같은 사람이고 싶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사람이고 싶다. 설령 멀어져 내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날 기억하는 이의 추억 속에 진분홍빛 밝은 빛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