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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Oct 17. 2024

상처가 잘 아물기 위한 과정

평온한 산책길에 생긴 상처

우리 동네엔 이제서야 만개한 가을의 꽃, 코스모스와 늘 만나는 강아지


남편과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나섰다.
기분 좋게 늘 만나는 산책길의 강아지들과 한참 놀다가 여기저기 자라나는 작물들을 구경하며 열매나 식물의 이름 맞추기도 해 보면서 부쩍 다가온 가을도 만끽하고 정말 행복했다.
며칠간 여행을 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에
모처럼 보낸 선물 같았던 평온한 시간이 참 감사했다.


 화천의 10월 풍경


며칠새에 부쩍 추워진 우리 동네.

정말 돌아온 게 실감이 났던 정겨운 시골의 풍경들을 보다 보니 나는 금세 들떴다.

신난 강아지처럼 늘 그렇듯 산책에서 돌아오던 길엔 남편과 서로 장난도 치며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을 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업히라고 하니 내가 다친다며 거부하기에 안 업히면 한 발자국도 가지 않겠다 선언하고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먼저 앞서나가며 내게 오라고 손짓하던 남편은 요지부동인 나를 보고 곧장 돌아와 가자고 잡아끌다가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마지못해 업혔다.



생각보다 남편을 업는 게 수월해서 씩씩하게 번쩍 들어서는 다섯 발자국쯤 가서,


'에이 뭐야 가볍네~ 내가 차까지 업고 갈게! 제대로 업혀봐!'

힘자랑을 하고 남편을 안정적인 자세로 고쳐업으려는데 그와 동시에 앞으로 고꾸라지듯 넘어졌다.
넘어짐과 동시에 이대로 넘어지면 남편의 머리가 바닥에 박을 것 같아서 그 순간 엄청난 순발력을 발휘해 내 몸이 지면에 닿는 비중을 더 넓게 하며 남편을 놔준 덕에 다행히 남편은 엎어지지 않았다.
다만 반팔 반바지를 입은 탓에 내 양팔과 다리는 다 까져서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산책길이 비포장도로였던지라 모래와 자갈에 더 쓸린 것 같았다.
너무 아픈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울먹거리는 나를 안아 일으켜 세우고 흙을 털어주며 양팔과 다리에서 피가 나는 걸 보던 남편은 한숨을 푹 쉬고 그럴 줄 알았다며 나무랐다.
아랑곳 않고 내가 못 걷겠다 우는소리를 하니 곧장 내 앞에 본인의 등을 내밀어 보인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 업으면 오빠 허리가 남아나질 않을지도 몰라- '

예의상 한마디 말을 건네고 잽싸게 업혔다.
차로 가는 짧은 시간 남편은 내가 너무 무겁다는 둥..
 다이어트를 하라는 둥..
 꽤 많이 투덜거리긴 했지만 생각보다 나를 잘 업었다.

곧장 집에 와서는 나를 부축해 화장실에서 물로 상처 위의 흙들을 씻어내고 소파에 앉혀두곤 주섬주섬 서랍에서 소독솜과 마데카솔과 반창고를 챙겨 와 약을 발라줬다.
그러고 보니 올 초 겨울에 이곳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도 빙판길에 엎어져서 남편이 약을 발라줬는데,
그때의 기억이 생각나 뭉클했다.
열심히 상처에 약을 바르던 남편에게 지난번에도 약을 발라준 게 기억이 나냐 운을 떼는데
아까부터 조금 생각에 잠겨있던 남편이 다른 말을 한다.

'너.. 아까 엎어질 때 좀 많이 웃기게 엎어졌어.
우악! 소리를 내면서..
마치.. 쌀자루가 쏟아지는 것처럼 철퍼덕 엎어졌잖아. '

그러곤 내가 엎어지는 장면이 생각났던 듯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을 하곤 혼자 웃기에 그 모습을 보다 나도 따라 웃었다.
문득 처음 넘어져 남편이 약을 발라주던 때의 나도, 이 자리에서 이렇게 웃고 있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도 상처를 치료해 주면서 지금처럼 한마디 툭 던져서 날 웃게 해 줬었던 것 같은데.
예나 지금이나 자주 다치는 날 치료해 줄 고마운 사람이 곁에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치료하고 난 후에도 다친 부위에 쓰라린 느낌이 들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조금은 아프지만 상처가 나을 때까지 오늘의 행복이 생각날 것 같았다.



원하지 않았어도 상처는 예견되지 않은 채 언제나 순식간에 생긴다.

행복한 순간에도 순식간에 상처가 생길 수 있다.
나 또한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처가 생기고, 낫고를 반복하면서 살아왔다.
상처가 지난 자리에 깊은 흉터가 남기도하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아물었더라도 흉터를 남기는 상처보다 더 아플 때도 많았다.
다만 어떤 상처든, 어떻게 생긴 상처든 잘 치유해야 한다.
잘 치유하지 못해 덧나는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선 상처가 난 자리에 끝없는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픈 건 아프다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상처에 따라 적당한 치료도 받아야 한다.
상처를 낫게 하는 건 결국 상처가 나을 수 있게 노력할 내 몫이다.
내 상처가 나을 수 있게 곁에서 지켜볼 따뜻한 마음까지 있다면 그건 정말이지 행운이다.
앞으로 살아가며 또다시 의도치 않은 상처를 받게 될 때마다
함께 내 상처를 살펴줄 사람이 곁에 있어 다행이다.
마음의 상처든 몸의 상처든
그간의 상처들이 덧나지 않게, 나도 나를 잘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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