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쯤 괜찮아질 수 있을까
아기를 안은 관세음보살상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강원도 영월 여행을 하던 중에는
근처에 사찰이 있기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법흥사는 계곡으로 더 유명한 곳이라,
단순히 여름 한 철 유원지로만 생각한 나는 영월 옆의 제천에 살 때도 법흥사를 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는데 어쩐지 이번 혼자 떠나온 여행에서는 이곳을 꼭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향한 법흥사였다.
고즈넉하고 푸르렀던 법흥사는 바로 앞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기 좋았던 곳이다.
내가 다닌 절들 중에 제일 좋았다.
곳곳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소원들도 쌓여있었다.
나도 작은 돌을 집어서 하나 쌓고,
천천히 이곳을 걸었다.
돌아보며 시선이 닿은 곳에 소담하게 피어있던 연꽃도 너무나 평화로워서
이곳에 머무르며 산책한 순간,
비로소 내가 숨을 쉬고 있다 느꼈다.
언제나 인자하게 웃고 계시는
포대화상의 배를 가만히 쓰다듬고 옆을 돌아봤을 때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멈춰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관세음보살상이 있었는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작은 아기를 안고 있었다.
수도 없이 절을 다니면서도
아기를 안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은 처음 봤다.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치 내게 괜찮다고 웃으며 위로해 주는 느낌이라
그 순간엔 온전히 그 느낌을 느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절을 하면서는 나도 소원을 빌었다.
부디 나를 떠난 아기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좋은 곳에 있게 해달라고.
벅차오르는 마음에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다시 관세음보살상을 올려다봤을 땐
여전히 인자한 미소로 아기를 안고 있었다.
허탈하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동안 그저 바라봤다.
그제야 어쩐지 이 절에 와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나를 부르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세음보살상이 아기를 안은 건 처음 본 지라 내려오는 길에 이곳의 상가에 들어가 여쭈니 저출생 때문에 세운 거라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내게도 의미 있던 관세음보살상이었다.
관세음보살상을 보고 난 이후에는 늘 가슴속을 묵직하게 짓누르던 돌덩이 하나가 덜어진 듯했다.
나오기 전에는 공양미를 사서 극락전에
사람들이 쌀을 모아둔 곳에 두고 왔다.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해 주셔서 감사하단 인사와 함께.
사실 마음의 짐을 덜려는 내 모든 행위에
지금도 죄책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조금은 평온해지고 싶다.
영영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늘 괴롭고,
이 모든 일이 내 탓인 것 같아 눈 뜨는 매일이 지옥이었다.
아직도 아기의 우렁차던 심장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계속 살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매일을 괴로워하며 살아갈 내가 너무 불쌍하다.
나는 이제 그만 울고 싶다.
이제 그만, 조금이라도 덜 괴롭고 싶은데
끝을 모를 고통은 자꾸만 내게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채찍질한다.
나는 언제쯤이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 괴롭고 아픈 상처가 과연 아물 수는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