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항상 눈이 많이 내리는 시골에 고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요즘의 나는 종종 인근 지역들을 여행 중이다.
매일 집에 있지 않고, 겨울에 쫓기며 여행을 다니느라 바쁘다.
여느 때처럼 아침부터 바쁘게 여기저기를 누비며 혼자 여행을 다니던 어느 날 오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하루 종일 왜 연락이 되질 않냐는 말에 순간 아차 싶었다. 여행을 하면서 '일어났다' 정도의 연락은 보내놓고 여행을 시작하는데, 일정상 아침 일찍 퇴실을 한 뒤 이날의 여행 일정이 빠듯해서 연락할 생각도 못 했었다. 전화를 받았을 땐 한창 용문사까지 경보로 등산 아닌 등산을 하던 중이었던지라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침부터 너무 바빴던 하루에 대해 읊었다.
오전에 계획했던 카페도 갔다가 책방도 갔다가 여행지에 오느라 시간이 빠듯했다는 내게 남편은 뭐가 그렇게 바쁘냐고, 밥은 먹고 여행을 하는 거냐 묻는다. 이날 일정상 갈 곳이 많아 오후까지 커피 한잔만 마시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로 여행을 이어가고 있던지라 오늘은 아무래도 밥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의아해하며 여행하는데 왜 밥 먹을 시간이 없냐는 남편의 말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보고 가야 한다고, 밥 먹을 시간에 뭘 하나라도 더 보는 게 낫다고. 더 보려면 더 서둘러야 한다는 답을 했다. 남편은 그럴 거면 며칠 더 놀다 오라는 말을 했지만 오늘의 계획은 올라가는 길에 내 차의 스노우 타이어 교환을 예약해 둔 터라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거여서, 다음날 다시 떠나더라도 오늘은 집에 갈 거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자마자 또다시 씩씩하게 가파른 산길을 서둘러 걸어올라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용문사 은행나무도 보고, 양 떼목장도 갔다가 가려했던 공방까지 다녀온 뒤 계획했던 여행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 밥도 먹지 않고 뛰며 여행한 덕에 마주친 찰나의 순간들.
만개한 용문사의 은행나무
나무 공방에서 만든 나의 나무 책갈피
양떼목장에서 만난 귀여운 동물들과 보낸 한낮의 시간
여행지에서 올라오던 길에는 마침 남편이 모처럼 여덟 시쯤이면 퇴근을 할 수 있다기에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마트를 들려서 모처럼 장도 보고, 남편이 좋아하는 빵집의 빵도 샀다. 때맞춰 이날이 빼빼로데이라 곳곳에서 빼빼로를 팔고 있어서 남편 줄 빼빼로도 사들고 예약시간에 이날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타이어 가게로 갈 수 있었다.
스노우 타이어를 교환하는 동안 타이어 가게에서 오늘이 빼빼로데이여서 준비했다고 말씀하시며 빼빼로를 건네주셨다. 처음 와본 가게였는데, 예상치 못하게 받은 빼빼로도 너무 좋았고 직원분들 모두가 정말 친절해서 나도 같이 웃으며 나왔다. 오늘 하루 동안 장거리 운전으로 조금 지쳐있었는데 힘들었던 모든 순간이 무마되는 친절이었다. 이런 작은 타인의 친절에, 나는 또다시 며칠을 살아가곤 한다.
모든 일정을 마치니 여섯 시가 넘어 어느덧 깜깜해진 시간이었다.
또다시 밤길을 한 시간을 운전해 화천에 도착하자마자 모처럼 바쁘게 음식을 하고 있던 중 남편이 들어왔다. 현관 비밀번호 소리를 듣고 등 뒤에 빼빼로를 숨기고 문 앞으로 나서서 빼빼로를 내밀었다. 근데 웬걸, 남편의 손에도 빼빼로들이 들려있었다. 오늘이 빼빼로데이라서 날 주려고 사 왔다고 한다. 우린 함께 손에 들린 빼빼로를 보면서 '생각하는 것도 닮았나 봐-' 하고 웃었다. 물론 여행을 하며 보는 풍경들도 모든 게 참 눈부시고 행복했지만 나는 이 순간, 내 삶이 제법 행복한 삶이라 느꼈다. 떠나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떠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내겐 얼마든지 있었다. 오늘의 나를 살게 해 준 순간, 내 하루에 함께하는 작은 행복의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