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 화천은 지금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물가에 갈대들이 정말 예뻐서 동네를 산책할 때면 감탄하며 곳곳의 사진을 찍고 다닌다. 물길을 따라 햇빛을 받은 억새밭은 그야말로 반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우리 동네 풍경을 보면서 나는 여행을 가지 않을 때도 동네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산책하곤 한다. 조금은 무료하다- 싶은 일상이지만 자연이 금세 변하는 걸 보다 보면 일 년도 금방 지나간다. 외롭던 이곳의 일상에 제일 큰 힘이 되어준 건 내 곁에 늘 머무른 자연이었다.
이곳의 여기저기엔 묶여있는 강아지들이 많다. 햇볕이 따사로운 낮에는 매일같이 강아지들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 물론 지나가기만 해도 매섭게 짖어서 내가 무서워하는 강아지도 있고,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강아지도 있다. 처음엔 경계하다가 자주 가니 알아보고 이제는 반겨주는 강아지도 있다. 강아지마다 성격이 달라서 매번 강아지들 보러 갈 때마다 다른 친구들을 보러 나가는 기분이다. 성격도 다르고, 매력도 다른 내 소중한 친구들.
토실이는 체육공원 옆길로 산책하며 늘 보는 강아지다.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빙글빙글 돌면서 반겨주는 탓에 얘를 보러 갈 때면 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간다. 내가 옆으로 다가가면 쓰다듬어달라고 배를 뒤집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쓰다듬다 온다.
역시나 늘 나를 반겨주는 체육공원 옆의 강아지, 내가 이곳에서 제일 아끼는 친구이다. 이 강아지는 우리 집에선 먼 곳에 있어서 늘 차를 끌고 가는데, 이제는 차도 알아보고 반겨준다. 이곳에 처음 와서 얘를 봤을 땐 꼬리도 흔들지 않고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 체념한 듯 시무룩하게 허공만 바라보던 얼굴이 눈에 밟혀서 자꾸만 찾아오게 됐다. 어쩐지 그 모습이 시골 생활을 시작하며 모든 걸 체념하고 시들어가는 나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찾아갈 때마다 눈길을 주기 시작하고, 그다음엔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오고, 나중엔 꼬리도 조금 흔들기 시작하다가 이젠 내가 보이면 철망에 매달려 반긴다. 나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어준 그 사랑이 정말 감사하다.
매일 찾아오니 점점 더 밝게 웃는 것도 보인다. 나도 같이 한참을 웃으며 종종 놀다 온다. 시골에서의 외로운 일상에 웃을 일이 없는데 늘 내게 웃음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존재. 내일을 기다리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늘 곁에 머물다 떠날 때면 '내일 또 올게-' 얘기하고 한참을 돌아보다 떠난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또 찾게 된다. 정말 오늘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꼭 보고 오게 되는데, 나를 보자마자 달려오는걸 보면 나도 웃으며 달려갈 수 밖에 없다.
얼마 전엔 이 근처 도로 공사를 하는 탓에 시끄러워서인지 내가 찾았을 때 집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늘 나와서 반기던 애가 보이질 않으니 나는 너무 놀라서 찾았었다. 목소리를 들으니 금세 뛰어나오던 강아지를 보고 마음이 놓이는 걸 보니 내가 얘한테 알게 모르게 그동안 참 많이 기대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동네 산책을 하던 중에는 내 옆을 조용히 걷던 삽살개도 봤다. 내가 얘의 걸음을 따라 천천히 걸으니 한번 슥 옆을 보고는 가던 길을 간다. 목적지도 없이, 이날은 한낮에 얘를 따라 읍내 곳곳을 누볐다. 익숙한 듯 한동안 동네를 걷던 강아지는 근방의 상가로 쏙 들어갔다. 행색을 보아 길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상가에서 키우는 강아지라고 한다. 한동안 주인분과 이 강아지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나는 또다시 산책을 이어갔다.
그렇게 산책하며 마주친, 한낮의 햇살을 즐기고 있던 고양이도 너무 귀여웠다. 인기척을 느끼고 실눈을 뜨다가 또다시 잠들어버렸다.
언제나 내 곁에 언제나 함께하는 자연에, 곳곳의 자연 속 친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외로움으로 점철되었던 이곳의 생활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료한 내 삶에 내일을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 내 일상 속 사랑의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