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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예술에서 시작하는 교육혁신의 길

성희승 (예술가 / 문화·교육·공공예술 정책 전문가)

by 성희승

저는 오랜 시간, 예술과 교육, 그리고 정책의 현장을 넘나들며,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 속에서 수없이 부딪혀 왔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천적 감각을 길렀고, 인간발달과 문화교육이라는 융합적 시각, 그리고 정책을 설계하는 언어를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저는 뉴욕대학교 스턴하트 스쿨(Steinhardt School of Culture, Education, and Human Development)에서 인간의 성장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예술이 교육에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를 공부했습니다. 당시 뉴욕의 일상 속에서, ‘한국’은 그저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경험은 저로 하여금 한국 문화와 예술의 가능성, 그리고 세계무대에서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에서 ‘창의적 문화적 기업가정신(Creative & Cultural Entrepreneurship)’ 박사과정을 밟으며, 한국의 예술을 뉴욕을 넘어 런던까지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습니다. 전시와 기획을 병행하며, 교수진과 함께 ‘기초예술이 교육과 정책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도 시작했습니다. 당시 영국과 미국의 문화예술교육 시스템은 이미 수십 년간 정책과 교육 현장에서 통합되고 검증되어 왔으며, 저는 그 구조 속에서 기초예술의 공공적 가치가 어떻게 국가 전략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기반 위에, 저는 박사과정 중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아르떼) 등과 협업하며,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을 국제적 철학과 접목시키는 실험적 연구들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물은 예술과 교육, 사회적 가치와 경제성을 통합하는 새로운 정책 프레임워크였습니다. 예술은 단지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미래 사회를 설계하는 대안적 언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순간이었습니다.

예술가는 매일 새로운 세계를 탐색합니다. 실험을 반복하며, 현실과 미래를 잇는 감각을 훈련합니다. 이러한 감각과 통찰은 교육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산입니다. 저는 전시 경력, 연구 활동, 교수 경험, 정책 실무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왔고, 그 목소리가 이제는 제도와 정책의 언어로 전환될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대한민국 교육은 지금, 기초부터 고등, 입시부터 평생학습까지 교육 전 생애를 아우르는 총체적 전환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초·중등 공교육 혁신을 위해 예술·과학·인문 융합형 통합 교과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왔고, 고등교육과 직업교육에서는 창의인재 양성 정책, 문화복지와 평생학습이 연결된 시스템 설계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과 실천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소외 지역, 세대 간 격차, 그리고 다양한 학습자를 위한 맞춤형 교육 설계는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핵심 과제입니다. 교육은 국민의 삶 전체를 다루는 가장 근본적인 국가 기반입니다. 그리고 이 기반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는, 현장을 아는 손과 구조를 이해하는 눈이 함께 필요합니다.

또한, 교육은 일자리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말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교육이 삶과 일, 그리고 사회적 기회로 이어져야 합니다. 저는 기초예술을 포함한 감각 기반 교육이 창의적 진로와 일자리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를 위해 교육계 내부의 변화뿐 아니라, 지자체, 기업, 학교, 지역 문화기반기관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청년들이 배운 것을 실제 현장에서 써볼 수 있도록 돕는 인턴십, 공공예술 프로젝트, 지역 창업 실험실이 교육 안에 체계적으로 내장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제, 그간의 여정에서 길러온 감각과 통찰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교육의 전면적 전환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교육과 예술, 정책과 현장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로 엮이기를 바랍니다. 감각을 살리는 교육, 창의가 살아 숨 쉬는 정책, 문화가 삶이 되는 사회—그 비전이 멀지 않은 미래가 되도록, 저는 그 첫 단추를 함께 꿰어나가고 싶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을 다시 묻고, 그 답을 현장에서 찾아 제도화해야 할 때입니다. 예술이 삶을 바꾸듯, 교육도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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