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사건은 살리고 작품과 인물을 특정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않기 위해 작품과 인물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삼갑니다.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은 전국 어디든 떠돌아다니며 촬영을 한다. 영화와 드라마를 찍는 사람들이 교통을 통제하면서 막말을 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우리는 전국의 어디를 떠돌아다니든 다른 사람의 생활권으로 들어간 손님이다. 우리가 촬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생활권에 있는 사람의 일상도 그만큼 중요하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스트레스받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즐거운지 따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촬영을 하는 동안 협조를 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해하고 친절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촬영을 하게 될 때도 좋은 협조를 받을 수가 있다. 다음에 안 오면 그만이야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최대한 조용히 촬영분량을 마치고 잘 정리해서 나오는 것은 좋은 촬영문화를 만드는 방법 일 것이다.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을 것>
배우와 스텝들은 준비하는 작품을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다음 일이 잘 보장되지도 않는다. 영화과로 대학원을 나온 형은 자신이 다닌 학교를 백수 양성소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스텝과 배우로 일을 하려면 육체적인 건강만큼 정신적인 건강도 중요하다. 위대한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남긴 적이 있다.
1972년 2월 15일
나는 지쳤다. 4월이면 마흔 살이 된다. 이 나이에 접어들면서도 내 인생에는 안정과 평화가 없다. 푸시킨은 자유는 누리지 못했어도 그 대신 최소한 유토피아와 내적인 평화는 누렸었는데 나에게는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1979년 10월 22일
외로워서 미칠 지경이다. 슬픔과 역겨움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온다. 고독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이 고독감은 더욱더 기승을 부린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배반했거나 지금도 배신하고 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내 영혼의 모든 숨구멍들은 열려 있고 저항력과 보호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죽음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롭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타르코프스키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영화감독으로 일을 한 기간은 고작 수년에 불과했다. 배우가 좋은 연기력을 가졌다고 해도 좋은 작품을 만나기 전에는 빛을 발하기 힘들다. 스텝들과 배우들이 느끼는 무기력감 또는 우울감은 상당하다. 나 또한 매해 감기처럼 무기력감을 앓아왔다.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 너무 비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 스스로 "좋은 음식은 뭐 하러 먹어 자격이나 있어?" 이런 말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마음이 아픈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좋은 음식도 먹고 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아껴주고 믿어주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 좋다. 영화가 끝이 나도 삶은 계속된다.
<뒤돌아 보는 자세>
우리는 항상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내가 시원한 음료를 마시기 전에 다른 사람을 살피는 것, 먹을 것이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내 손에 따뜻한 핫팩을 손에 쥐고 있을 때 추위에 떠는 사람은 없는지, 너무 힘든 표정을 하거나 다친 사람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나만 준비가 되었다고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에게 무신경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가는 길만 바쁘게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뒤에서 넘어진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모두가 한 팀이다. 특히 윗사람이 될수록 아랫사람들을 살뜰하게 살펴야 한다. 내가 윗사람이라고 손에는 따뜻한 커피를 들고 조수들을 부리기만 한다면 팀원들은 큰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새끼발가락이 다쳤을 때 걸음이 얼마나 힘든지 잊어서는 안 된다. 배려는 거래가 아니니 보상은 바라지 말고 잊어버리자. 배려를 받은 사람은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행동이 바뀌기 위해서 의식이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목소리를 내는 스텝을 싫어한다. 돈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쉽다. 그리고 스텝들의 경우는 돈만 많이 주면 무엇이든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돈만큼 중요한 것은 노동환경이다. 오랜 기간 돈으로 극악한 노동환경을 긍정해 온 것이 사실이다. 현장에는 튼튼한 사람도 있지만 약한 사람들도 섞여있다. 우리 모두 한 팀이다. 같이 이인삼각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걸음이 느린 사람의 발에 맞추어야 한다. 제작과 스텝은 서로를 배려하는 한 팀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같이 건강한 촬영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기준과 법적인 틀이 없다면 이런 문화는 만들어지는 것은 어려워도 허물어지기는 쉬운 일이다. 옷을 잘 입으려면 옷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안목이 바뀌어야 한다. 기득권은 사람들이 깨어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먹고사는 일에 바빠 다른 일에는 눈을 돌릴 틈이 없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의 이슈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것도 흔하게 쓰이는 방법이다. 순응하기는 쉽고 깨어있기는 힘들다. 밤을 새우며 일하는 노동환경이 당연시 되어서는 안 된다. 후배들에게 꼭 <전태일 평전>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책에서 공감했던 부분을 기록한다.
<1>
아니, 즈이들이 무슨 통뼈라고 충나게 나서서 노동운동이니 뭐니 하고 설쳐? 그런다고 뭐가 될 줄 아나. 결국 신세 조지고 피 보는 건 즈이들뿐이라고, 어리석은 것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말할지도 모른다.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사회는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돼찾으려고 일어서는 사람들을 향하여 조소를 던지고 그들을 바보라고 낙인찍는다. 노예사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으로 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비정상적으로 취급한다. 세상사람들은 전태일과 그의 친구들을 바보'라고 한다. 왜 바보인가? 고난의 길을 자초하니 바보이다. 타협할 줄 모르고 순응할 줄 모르니 바보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2>
기성세대는 이러한 비굴한 처세 철학을 뺏속까지 익힌 '현명한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세상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잘난 사람'이 될 것까지는 기대할 수 없어도 최소한 이러한 '약은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가르친다. 그뿐인가? 강자들이 판을 치는 모든 사회기구가 한결같이 새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적응, 타협, 겸손, 순종, 온전 등등의 '미덕'이다. 적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 당연한 삶의 요결(토함), 전혀 의심할 여지없는 공리처럼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부모, 선배, 교사, 라디오. TV, 영화, 고명한 학자, 승려, 정치인 등등의 모든 권위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해 들어온, 이 그럴듯한 추상적 명제를 한 꺼풀만 벗겨놓고 보면 그것은 곧 어떠한 현실에 건 저항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쓸개를 빼놓고 살아야 한다는, 거세된 노예가 되기를 강요하는 실로 무서운 주문인 것이다.
<3>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사회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에 '순응! 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 한 무모한 짓으로 되며, 따라서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정신의 싹이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령, 모든 가치관, 모든 선전을 무조건 받아들여 순한 양'이 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 노예로 길들여진다. 등 어루만지고 간 떼어먹는다는 말이 있다. 강한 자들은 이 길들여진 양들에게 착실, 온전, 성실, 적용성 있다' 하는 등의 온갖 아름다운 천사를 퍼부으며 환영하고 칭찬하면서 최대한으로 그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털을 뽑는다. 고통받는 인간은 한동안은 얼떨떨하여 그가 고통을 당하는지 털을 뽑히는지 모른다. 설사 어렴풋이 그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는 다만 생존하기 위하여 현실의 부당한 행태와 그로부터 오는 자신의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때때로 무언가 '부당하다' 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나, 역시 자신은 '무력'하며 그것은 시정될 길이 없으므로 머리를 흔들며 그런 건방진 생각을 털어버린다. 인내는 그의 영원한 금과옥조가 된다.
<전태일 평전>
나는 오래전에 쓰인 책이지만 <전태일 평전>에 많은 부분 공감했다. 나 또한 밤을 새우는 촬영환경에 순응하며 부당한 환경을 오랜 시간을 지내왔기에 먼저 미안함을 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염려하고, 관심을 가지는 세상에서 벗어나 갈등과 혐오 경쟁, 불안을 부추기고 자신의 이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전세사기, 음주운전, 사기꾼들에 솜방망이 처벌하면서 악인들을 긍정하고 선하게 노동으로 일을 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건 부자들은 추앙받고 성실하게 노동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을 미련한 바보로 취급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옛날 진시황이 통일한 진나라는 가혹한 형벌이 멸망의 원인 중에 하나로 꼽힌다. 균형이 무너진 사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무게가 치우쳐져 있는가. 건강한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망치는 데는 몇 명의 노력만으로 충분하다. 진나라는 조고라는 간신에 의해서 나라를 망치고 조고 스스로도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나라를 불태우면서 자기 곳간만 쳐다보고 있다. 이런 일들은 꽤나 참고해 볼만하다. 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더라도 인간의 욕망은 전혀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배를 갈라서는 안된다. 촬영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무너지기가 쉽다. 단기적으로 이익을 위해서 촬영문화를 불태우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전태일 열사님과 꿈꾸는 세상에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돌아볼 일이다.